<누구한테 뭐래, 나부터 잘해야지> 시리즈 (4)
13시간 이상의 비행을 마친 후 낯선 땅, 프랑스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30분을 더 달려서 도착한, 노트르담 대성당 건너편의 한 호텔. 로비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동생이 마중을 나왔다. 알게 된 시점이 2003년이니, 이제 20년 지기가 된 이 동생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날 반겨주었다. 몇 년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었을까. 인사를 나누면서 짐을 방에 올려다 놓고 내려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나를 데리고 나가는 길에 동생이 내게 했던 말이 있다.
"형, 프랑스 애들이요 운전이 얌전하지 않아요. 여기도 엄청 심해요~"
응??? 갑자기??? 무슨 말인지 신경도 쓰지 못한 채 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전에, 잠깐만~~ 파리의 엘리베이터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기사분께서 파리의 건물들은 오래되었기 때문에 다시 짓지는 않고 내부를 최대한 현대식으로 고쳐서 사용하는데, 엘리베이터를 보면 많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계단이 나선형태로 동그랗게 생겼는데, 그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설명에 도저히 머리 속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는데, 실제 그 엘리베이터를 마주하고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성인 2명이 타면... 끝!!!
* 잡음이 심한 점 양해 바랍니다 ^^;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동생은 나를 데리고 에펠탑 근처에 있는 프랑스식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고, 막 도착해서 정신없는 나에게 달팽이 요리를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메인 요리로는 와인과 함께 소고기 육회와 비슷한 비프 타르타르를 먹었는데, 이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식사 후 좀 걷자는 동생을 따라 도착한 곳은 영화 <존윅4>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최종 대결을 위한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장면이 촬영된 에펠탑이 보이는 광장이었다. 동생이랑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게 수다를 떨던 나는 에펠탑을 보고서야 새삼스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세상에 유럽 여행이라니. 프랑스 파리에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아마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변명을 만들어 가며 여행을 포기했었을지도 모른다.
- ‘프랑스인들은 영어로 말을 해도 프랑스어로 대답을 한다는데, 난 프랑스어 할 줄 모르잖아.’
- ‘해외 여행을 혼자 하는 건 무섭지 않을까? 소매치기도 많다는데.’
- ‘혼자 프랑스까지 가서 뭘 하겠어. 패키지도 아니고, 힘들지 않겠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프랑스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동생이 있었고, 파리에 오면 같이 다니자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긴 고민 끝에 작년 연말에 파리행 항공권을 구매했고 놀라울 정도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파리 시내의 호텔까지 예약을 마쳤다. 이렇게 돌이킬 수 없게 모든 것을 준비한 나는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고,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동생과 야경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점점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로 가득 차 활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첫날은 간단하게 야경을 구경했고, 다음날 근교에 있는 성에 구경을 가자며 동생은 나를 다시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였지만 북반구의 특성 상 해가 빨리도 떠올랐다. 덕분에 알람을 듣기도 전, 햇살에 눈을 떴고 동생이 오기 전에 외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호텔로 데리러 온 동생 차에 올라타서 파리 외곽으로의 드라이브가 시작되었을 때, 동생이 한 말이었다.
"형, 프랑스 애들이 운전은 얌전하지 않은데, 하나 확실한게 있어요. 얘네들은요, 도로에선 사람이 무조건 먼저예요!"
동생도 처음에 적응이 어려웠었다며 프랑스 사람들의 운전 습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시차도 그렇고, 바뀐 환경도 그렇고 아직 적응이 안된 상황이었기에 당시에는 동생이 해준 말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파리에 머무는 기간 동안 도로에서 마주한 장면들은 동생이 했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이 말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로 위에서는 사람이 무조건 먼저다>
물론 보름 동안의 경험으로 프랑스 운전 습관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동생은 벌써 4년이 넘도록 살면서 지켜봐 왔고, 본인도 이제는 그렇게 운전을 하고 있다고 하니, 파리에 오는 사람들은 내가 경험했던 장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두번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한결같던 프랑스인들의 운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경험 1. 신호등이 없던 도로에서의 횡단. 엄마와 아이 두 명이 무단횡단을 하다.
어느 날 오전, 신호등이 없는 좁은 도로에서 길 건너편 카페에 가기 위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한 엄마를 보았다. 건널목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에 아마도 그 엄마는 길을 그곳에서 건너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당시 오른쪽에서는 차량이 오고 있지 않았고, 왼쪽에서는 3대의 차량이 오고 있었다.
‘음, 저 3대만 지나가면 바로 건널 수 있겠군’
그 상황을 빠르게 스캔을 한 내 머리 속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반대차선에는 차가 오고 있지 않았으니, 당연히 3대만 지나면 가면 도로에는 차가 없어질테고, 가장 안전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왼쪽에서 오던 3대 중 첫 번째 차량이 자연스럽게 멈춰 서는 게 아닌가. 그 운전자는 아이들과 엄마가 길을 건너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호, 착한 사람이네. 그런데 뒤에 오던 차들이 뭐라 하겠는데?’
그 광경을 본 나의 첫번째 생각이었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2대의 차량도 역시 멈추었고, 그들도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이들이 길을 건너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 순간, 그 도로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엄마와 아이 2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거리에는 그 흔한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너무나 평온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들녘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운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 길을 건너갔고, 길을 건너가자 3대의 자동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럴수가. 저런 무단횡단이 가능하다고? 운이 좋게도 착한 운전자들이 아니었을까?’
그 운전자들이 특별히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은 다른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 경험 2.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그런데 건너는 중간에 빨간불이 되었다.
머물던 호텔에서 걸어 나오면 바로 앞에 세느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넘어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었다. 2019년 화재가 있었기에 지금은 건물을 재건 중이라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파리에 온 이상 꼭 가봐야 하는 명소였기에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왕복 4차선 도로의 보행자 신호등이 곧 빨간불로 변하려고 했기에 나는 당연이 멈추었다. 그런데, 두 명의 사람이 멈추어 선 나를 지나쳐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고, 당연히 건너던 중에 신호등은 빨간색이 되었다.
‘아이고, 난리 나겠는데?’
내 머리 속에서는 빵빵거리는 차들과 급히 뛰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실제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전혀 달랐다. 운전자들은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게다가 이미 신호등은 빨간불이 되었건만 길을 건너던 두 사람은 뛰지 않았고 무사히 길을 건너고 있었다.
이번에도 거리에는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는 없었고 길을 건너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 도로의 시간은 또 멈추어 섰다. 놀라운 것은 자전거 전용 도로 위의 자전거들도 함께 멈추어 서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장면이 실화인가? 우리 나라였다면, 아니 나라를 들먹이기 전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빨리 건너가라고 눈치를 주거나 빨간불에 건너는 사람들을 향해 빵빵거리며 뭐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너무나 우연히 몇 번 발생하지 않는 신기한 장면을 본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멈춘 도로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 경험 3.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그런데 이번 보행자 신호는 아예 빨간불이다.
파리 여행을 오기 전에 본 영화 중 하나가 <존윅4>였다.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촬영이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상당히 어색한 CG로 아쉬움을 남겼던 장면은 개선문에서의 액션 장면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로터리, 회전형 도로. 이 정도 규모가 만일 한국에 어려 곳에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태지옥이었것이다. 차선 위반을 서로 주장하며 빵빵거리는 차량들과 접촉 사고들. 그러나 이곳 유럽에는 이러한 로터리가 흔한 구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운전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먼저 오면 먼저 간다는 가장 흔한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
※ 파리 시내의 이 독특한 도로는 어떤 이유에서 설계가 되었는지, 왜 이런 빙글빙글 돌아가는 로터리가 많은 구조인지 궁금했는데, 뜻밖에 오르세 미술관을 투어하면서 이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설명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때하는 걸로~!
개선문은 <존윅4> 영화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가 의미있는 역사적인 건물이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로터리 도로 가운데 서 있는 개선문을 보기 위해서 아침부터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개선문 부근은 교통량이 많은 곳이라 차량 속도가 높은 곳은 아니지만, 이른 오전 시간에는 꽤 속도가 빠른 곳이기도 했고, 돌고 도는 로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차가 빠져나갈지 보행자인 우리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때로는 무섭게 돌진하는 차량도 있어서 나는 바짝 긴장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개선문을 저마다 좋은 각도에서 촬영을 하고 싶어 했기에 도로의 안쪽까지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일행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보행자 신호등과 무관하게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길을 막 건너고 있었다.
나는 개선문 근처의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서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 반대편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빨간색 신호등이었는데도 길을 건너고 있었다.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도로 중앙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빠르게 로터리를 돌아서 내가 기다리는 건널목 쪽 도로로 진입하던 차들은 도로에 난입한 사람들을 발견했고, 급하게 차를 세우거나 피해서 운전을 해야 했다. 신호등의 보행자 신호 색이 무슨 색인지 상관없이 그냥 막 건너고 있으니, 솔직히 내 눈에 너무하다 싶었다.
‘이야, 이건 욕 좀 먹겠는데?’
BUT, 급하게 차를 세우던 사람들은 이번에도,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때문에 놀랬을 법도 한데, 앞유리를 통해서 본 프랑스 운전자들의 표정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이번에도 그들은 사람들이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내가 운전을 하는 도로에 저렇게 위험하게 뛰어드는데도 화를 안낸다고? 이게 정말 말이 되는 것인가?
※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같이 썬팅(틴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에서 운전자의 표정을 볼 수 있다.
나는 외국의 특정한 상황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외국이 엄청 좋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세상 어디 곳보다 대한민국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믿고 우리 나라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외국과 비교하면서 우리 나라를 낮게 말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프랑스 파리에 대한 어떤 로망이나 동경을 갖고서,
‘프랑스 사람들은 매너가 좋고 문화를 사랑하는 선진 국민들이니, 역시 파리는 인간미가 넘치는 곳이야.’
라는 특정한 ‘선’을 긋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코 이 ‘선’을 이용해서 내가 목격한 상황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앞선 사례들은 실제로 내가 본 상황이었고, 도로의 시간이 멈추는 상황은 이후 몇 일 동안 계속 관찰이 되었는데 매번 정말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그러자 머리 속에서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저렇게 해도, 결과가 같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본 그 상황을 그대로 따라해 보기로 했다.
- 건널목이 없는 길에서 차가 올 때 건너려고 해보기.
- 빨간불로 변하려는 건널목 걸어서 건너보기.
- 빨간불인 보행자 신호에서 길 건너보기.
파리에서의 나의 무모해 보일 수 있는 다양한 나의 시도의 결과는 어땠을까?
<To be continued>
글로 적다 보니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나의 다양한 시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으로 넘겨야 할 듯하다. 일단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음 시간에는 내가 경험한 바에 근거해서 프랑스 운전자들의 일관된 행동을 보면서 내가 떠올렸던 삶의 ‘멋’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무엇이라고 콕 찍어서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가 그리워하던 그 옛날 우리나라의 멋을 파리에서 느낀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주의!>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하기에 이 말을 꼭 해야겠다. 프랑스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통 질서를 잘 지키며 생활을 한다. 내가 본 것은 아주 일부의 상황이지만, 그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위협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혹시나 프랑스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 모두 무질서하게 길을 건넌다는 의미는 아니니, 이점을 확실하게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