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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Key Aug 07. 2023

나는 언제
안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1/3)

<누구한테 뭐래, 나부터 잘해야지> 시리즈 (5)


얼만큼 알아야 우리는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The surveillance tape helped Lee County sheriff’s deputies arrest 45-year-old Thomas Hinton on Sunday, the day after the burglary.

어학 연수에서 법에 관련된 주제로 수업을 하고 있던 때, 선생님이 나누어 준 신문 기사가 이렇게 시작했다.

‘음. Surveillance가 뭐였지? 들어 본 단어인데 아 뭐였더라?’


제일 첫 문장부터 아리송한 단어가 나왔기 때문에 적잖게 당황을 했었다. 분명 저 단어는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라 예전에 찾아본 기억이 나는데, 단어의 의미도 대략 알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엇인지 딱 떠오르지 않았다. 전체적인 문장의 의미는 대략 뭐 도둑을 잡았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앞에 앉아 있던 멕시코에서 온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What is Surveillance?”


'아놔, 그냥 넘어가려고 한건데, 왜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설명하기 난처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선생님이 내 표정을 보고서는 

<보통 범죄 사건이 발생할 것이 예상되어 어떤 사람이나 장소 등을 감시하는 행동>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 의미라며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그러면서도 난 그 단어의 의미를 메모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 기존의 기억이 되살아 났었고 그 단어를 나는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 정말 <surveillance>를 아는 거 맞는 걸까?


“내가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것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안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애매하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가장 흔한 방법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있는데, 시험에서 맞았다고 해서 나는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나? 혹은 내가 시험에서 틀렸다고 해서 나는 그것을 모르는 거일까? 아리송하지만 찍었는데 맞았을 수도 있고, 안타까운 실수로 틀렸을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어떻게 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일까?

 - 무엇을 보고 알아 맞추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 어떤 이야기를 들어서 이해가 가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평소 많이 사용을 하고 있으면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1. 보고 나서야 안다면, 나는 아는 것일까?


'아, 내가 이거 보면 딱 아는데!’


3월에 일본을 다녀온 이후, 일본어를 배우고 싶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것도 아니고, 일을 하는데 일본어가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학원에서 배우기 보다는 간단한 대화를 위한 공부면 충분할 듯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투브>에서 일본어 회화 관련된 영상을 보면서 흥얼거리듯 따라했었다. 그런데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니 이렇게 흥얼거려서는 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우연히 <듀오링고>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데, 일단 단어를 하나씩 배우고 계속해서 무한 반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매일 꾸준히 공부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하루하루 일본 단어를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게 하고 있다. 이렇게 단어의 발음 중심으로 학습이 진행되다가 문자 학습이 시작하는 단계가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단어의 소리만 듣고 그것이 무슨 단어인지만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자라니, 귀찮아진 셈이다.


<듀오링고 학습 화면 캡쳐>



히라가나 문자를 한번에 4개씩 배우기 시작했다. 어플리케이션이다 보니 직접 써보는 기회는 많지 않고 대부분 화면에 보이는 문자와 소리를 찾아 매칭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때때로 긴가민가 싶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눈에 익으니 문자와 소리를 제법 잘 알아맞췄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본 단어를 안다고 생각했었다.

<듀오링고>는 퀴즈를 통해 학습을 하게 되는데, 단계가 올라갈수록 화면에 문자를 써보는 퀴즈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써보는 퀴즈가 나왔을 때는 정말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어? 어떻게 쓰는 거였지? 써본 적이 없으니 원.'


퀴즈 형태로 맞추면 점수가 오르는 터라 써보는 문제만 나오면 족족 틀리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때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 내가 이거 보면 딱 아는데!"

이렇게 써보라는 문제는 틀리고, 다시 소리를 듣고 문자를 매칭하는 문제가 나오면 잘 골라서 맞출 수 있었다.

‘거봐, 내가 이거 안다니까!!’


그런데, 나는 일본어 문자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쓰지는 못하고, 문자를 봐야 알 수 있다고 하는 수준이라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2. 들어서 무슨 말인지 안다면, 나는 아는 것일까?


“내가 리스닝은 다 해. 스피킹을 못해서 그렇지. 나는 다 알아들어.”


20년 전 어학 연수에서 만났던 형이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머물 아파트를 구하러 다닐 때, 몇몇이 함께 다닌 적이 있었다. 나는 그 형이 영어를 잘한다고 들었기에 영어 초급자로서 엄청 부러워했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궁금해서 따라 다녔던 것인데, 뭔가 이상했다. 집을 구하는 동안 그 형은 대화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았고, 필요한 내용은 영어를 잘하는 다른 형에게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면서 중계인과 함께 아파트 몇 개를 보러 다녔다. 뭔가 조금 이상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형한테 물어봤다.

“형 영어 잘하지 않아요? 직접 말하면 되지 않아요?” 

“내가 리스닝은 다 해. 스피킹을 못해서 그렇지. 나는 다 알아들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미국에서 수년 동안 살았고 대학원 졸업을 앞둔 다른 형과 저녁을 먹을 때 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그 형이 나한테 해준 말이 있다.

“아니야, 다 알아듣지만 말을 못한다는 건, 그건 영어 잘하는 게 아니야. 영어는 자기가 알아들은 만큼만 할 수 있는거야.”

다시 말해서, 말을 못한다는 것은 영어를 완전히 알아듣지 못해서라는 것이 그 형의 설명이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었다. 말은 할 수 없어도 알아들을 수는 있는 것이 이상한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 영어는 알아들은 만큼만 말할 수 있고, 말하는 정도가 곧 영어 실력이라는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수업 시간에 <surveillance> 단어를 친구에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대충 의미를 추측하는 상태에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그래, 그거지’라며 안다고 생각한 것처럼 들어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때 추측이 틀렸더라도, 설명을 들었을 때 '아 맞아, 그거였어'라고 아는 것처럼 넘어갔을 것이다. 누군가의 설명을 들었다고해서 다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충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착각은 나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자기합리화의 형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은 몹시 불쾌한 일이다. 내가 모른다는 상황은 불쾌하고 불안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감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존감이 낮아지지지 않게 하거나, 모른다는 무지로 인한 불쾌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일수도 혹은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들어서 아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들으면 안다고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3. 평소 많이 사용하고 있다면, 나는 아는 것일까?


“너, 행사가 시작되면 어떤 순서로 무엇이 진행되는지 시간대별로 영화를 보듯이 설명해봐.”


몇 년 전, 나는 회사에서 임원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담당자로서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행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나의 상사에게 보고를 하러 갔을 때, 무지하게 (예상치도 못하게) 깨졌던 것이 기억이 난다. 땀을 한 바가지를 흘렸을 정도로 당황했었는데, 심각하게 당황한 이유는 내가 그 행사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행사의 내용은 보고서 몇 페이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양이 아니었고, 그 행사는 우리 부서에서수 년간 해오던 행사였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직접적인 행사 담당자는 아니었지만 진행 요원으로서 몇 년간 현장에서 지원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메인으로서 담당자가 된 이후로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수정하기를 수십번이었고, 관련 부서와의 회의를 거듭하면서 행사를 A부터 Z까지 다 알고 있었다. 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단 하나의 질문으로 인해 내가 잘 알고 있다는 내 생각이 박살이 난 것이다.

“너, 행사가 시작되면 어떤 순서로 무엇이 진행되는지 시간대별로 영화를 보듯이 설명해봐.”


수십번에 걸친 보고서 수정과 늘 해오던 보고하는 방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했기에 모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보고서를 덮고서 이야기 하듯 보고하라고 요구받자 머리 속이 갑자기 꼬인 것이다. 나름 적절하게 대응을 한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보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궁금한 것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추가적인 질문이 계속되자, 결국 나는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날의 부끄러운 경험을 통해서 아무리 평소에 해오던 것이더라도, 내가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아야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겠다. 


무엇인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가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업무와 관심 분야가 강의를 하는 것인만큼, 이를 기반으로 구분을 해보자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고,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나는 비로소 내가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난 그렇게 믿는다.


가끔 보면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가끔은 그 반대를 느끼기도 하지만, 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경험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안다는 것에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내가 학습을 해야 할까?

 

늦은 나이에 영어를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럽게 해보려는 목적으로 어학 연수를 받고 있는데,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들, 매일 매일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을 나는 '알고 있는 상태가 될만큼 공부하고 있는 것인가?'

뭔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아서 참 내 입으로 말하기 창피스럽지만, 다음 시간에는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아는 게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어 보았으면 한다.


당신의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습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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