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e Key Dec 19. 2023

이야기꾼에게는 힘이 있다.

소중한 한 해를 정리하는 이야


여행이라는 것을 다녀보지 않아서, 올해는 나름 용기를 내어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혼자서. 

그런데, 올해 여행하려던 국가 중 혼자 다닐 자신이 없는 곳이 있었는데, 인도였다. 그래서 인도는 패키지 여행 상품을 통해서 다녀왔다. 나를 포함하여 총 9명이 한 팀이 되어 가이드 1명과 함께 여행을 했는데, 이 여행 기간 동안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업무에서 한발 빠져나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직업병인지 일상이 되어버린 것인지 내가 하는 일의 관점을 적용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여행을 하는 내내 가이드를 보면서, "좋은 가이드의 조건은 무엇일까"라고 계속해서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예전에 첫번째 책을 집필한 것이 있는데,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면 좋을지에 대한 나의 경험을 정리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때의 기억이 교차하면서 가이드라는 직업과 강사라는 직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되면서 좋은 가이드의 조건을 떠올려 보게 된 것이다. 


★ 불만족스러웠던 여행에서 가이드의 조건을 떠올려 보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당시 가이드의 방식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24시간 중 거의 16시간을 붙어 지내는데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을까? 투어를 마치고서 3일 간 인도에 혼자 더 머물렀었는데, 그 3일 동안에도 인도 여행에 대해서 남들에게 소개해줄 새로운 무엇인가를 떠올리기 쉽지 않았을만큼 여행 상품과 가이드에 대해서 만족감이 높지 않았다. 물론 친절함과 같은 인성이나 지역 간의 이동 등에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여행 코스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속이 시원한 느낌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가이드가 인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배운 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언어로 인한 제약은 분명히 있었고, 그러기 때문에 전달할 수 있는 내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서울대학교 어학원에서 한국말을 공부하고, 6개월 후 인도로 돌아와서 가이드 생활을 했다고 하니 사실 실제 배운 기간에 비해서는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여행객이 줄어들어 몇 년 동안 일을 쉬었다고 하니, 어학 능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케이 인정한다. 그렇지만, 여행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것을 인정해주고 감수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여행하면서 한국음식 맛있다, 홍대 재미있다 등 인도 가이드가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 보다는 인도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던 1인이기에 아마도 같은 팀의 다른 분들하고는 피드백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그러다 5월,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면서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투어를 하며 만난 한 여행사의 가이드를 만나면서 4월 인도에서 고민하던 좋은 가이드의 조건이 조금씩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


프랑스의 경우 워낙 인기가 있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이 정말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충분히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면 굳이 여행사와 함께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박물관/미술관 입장을 보다 쉽고 빠르게 하고,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원한다면 투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미술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는 편이라 투어팀을 선택을 했고, 운이 좋게도 한 여행사를 만났다. 이런 건 자랑을 좀 해줘야 한다. <가이드랩>이었다. 


<가이드랩>을 만나 만족스러웠던 것은 4월 인도 여행에서의 만족스럽지 않았던 일부 경험이 비교가 되면서 무언가 막힌 것이 뚫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여행사의 투어 만족감은 파리의 다른 여행사와 비교를 해도 월등히 좋았다. 루브르 박물관은 <가이드랩>을 포함해서 다른 투어 프로그램으로 2번, 오르세는 <가이드랩>과 1번, 개인으로 1번, 총 4번을 경험했었는데, ‘가이드를 통한 투어라면 이런 것이어야 했구나’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무엇이었을까?


★ 특별한 이야기꾼과 함께 한 박물관 투어


인도에서의 경험을 한 후,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가이드는 스토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을 2번째 투어했을 때 만난 가이드 역시 스토리의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스토리의 힘을 얼만큼 이해하고 기획하고 구성을 했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으나, 두 명의 다른 가이드와 보낸 같은 3시간 30분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고대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 여행의 깊이와 재미는 어째서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달랐을까? 그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었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만 놓고 본다면 2번째 가이드가 어쩌면 더 우수했을지도 모른다. 경력도 좋고 학위도 박사학위이고. 그러나 많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하는 능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소위 말하는 ‘말빨’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작품을 소개하더라도 투어의 핵심 경험을 무엇으로 정의하는지, 그에 따라 작품들을 어떤 스토리로 연결하는지, 얼만큼 더 쉽게 설명할 것인지 등 작품 설명회가 아닌 투어로서의 스토리를 갖춘 시간으로 완전히 달라질 테니 말이다. 개별 작품에 대한 설명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로 작품을 엮어낸다면 그것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닌 것이 된다. 나는, 내가 그토록 바랬던 ‘이야기꾼’을 만난 것이다.




★ "작품 속에서 성모 마리아를 구분할 수 있습니까?"


루브르 박물관 투어 중 가이드가 우리에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솔직히 난 어떻게 구분하는지 몰랐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스토리가 있는 여행은 무엇이 다른지 예를 들어보자. 루브르 박물관은 여러 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층별로도 다른 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미로처럼 헷갈리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같은 3시간 30분이더라도 어떠한 동선을 만들어 내는지에 따라서 실제 접하는 작품의 수도 달라지고, 그 내용도 달라진다. 대부분의 한국의 투어팀은 비슷한 동선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차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유물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전시실에서 투어를 시작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인 에비일 상>

가장 인상에 남는 조각상들을 만나게 되는데, 교과서에서도 많이 봤던 ‘에비일 상’이다. 조각상이 온전한 형태에 가깝게 잘 보존된 53cm의 이 조각상은 등에 문자가 새겨져 있어 누구인지와 당시 사람들의 의복형태 등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고, 관람객인 나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 오래 전에 문자가 존재하였으며, 사람들이 어떠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기록으로 남겼는지 등 다른 두 명의 가이드 설명은 동일했다. 그러나 첫번째 가이드는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 조각상이 더욱 유명해진 이유는 눈동자라는 것이다. 비슷한 유물들은 보존 상태가 약간 훼손되어 있기도 했으나, 공통적으로 눈이 모두 파여져 있었다. 그런데 이 조각상만이 눈이 보존된 것이다. 그것이 이 작품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라고 한다. 



<청금석, 출처 : Pixabay.com>


왜 눈들이 모두 훼손되었을까? 이 눈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해 온 청금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청금석은 당시에도 구하기 어려운 광물로, 청색을 만들기 위해 귀하게 대접받았기에 도굴하는 사람들이 귀한 재료를 얻기 위해 파내어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 조각상만이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으니 특별하게 느껴질 수 밖에. 그런데 당시 귀한 광물이자 소중한 재료였던 청금석에 대한 이야기는 두번째 가이드에게서는 듣지 못했다. 이야기꾼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능력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된 청금석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값비싼 광물이어서 도굴 당한 것이라는 설명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후 종교가 생겨나고 성인과 매우 고귀한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들은 어떤 색으로 표현할지를 고민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고귀한 성인은 당시 성모 마리아였고 어느 작품에서나 동일한 색으로 그렸다고 한다. 무슨 색일까? 그것은 당시 구하기 어려워 가치가 높았던 청금석으로 만든 색, 바로 청록색이다. 칠레의 안데스 산맥이나 아프가니스탄 동부에만 있기에 유럽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청금석. 구하기 어려운 만큼 귀한 색.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우리가 이동한 곳은 성경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표현한 그림이 많은 전시관이었고 각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찾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청색만 찾으면 되었으니까.


만일, “성모 마리아는 당시 구하기 어려워서 가치가 높았던 청색으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에서 청색을 찾으면 성모 마리아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라고 설명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내가 그 이야기를 이토록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미술작품 감상의 재미와 깊이를 가질 수 있었을까? 


★ 이야기꾼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 낸 변화


이야기꾼의 자질이 넘쳐 흐르던 가이드는

- ‘에바일 상’과 다른 조각상의 차이점이 눈의 보존 상태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 눈에 사용된 청금석은 당시 높은 가치를 가진 광석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 구하기 어려운 광석에서 색을 만들었기에 청색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 이 이야기가 끝날 때 우리는 종교적인 그림이 전시된 곳에 도착해 있었다.

- 그림을 통해서 청색으로 표현된 성인, 즉 성모 마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전시된 작품을 동선의 흐름에 맞추어 큰 스토리를 만들어서 작품을 소개하였으니, 관람 시간 내내 가이드의 스토리텔링은 나의 호기심을 유발했고, 나는 그 투어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투어가 끝난 후 나는 박물관에 남아서 작품을 홀로 다시 관람하기에 이르렀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던 내가 말이다. 이 모든 변화는 루브르의 첫번째 전시실에서 만났던 조각상과 청금석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고, 몇 개월이 흐른 뒤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다른 미술 작품을 관람할 때, 성모 마리아를 찾아내며 미소지을 수 있었다. 이것이 설명과 스토리가 담긴 이야기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인도에서는 세계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이 된 아름다운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했었다.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움, 그리고 세계적인 종교와 그 색채가 한 장소에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 그렇게 압도된 마음으로 투어 차량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또 다음 장소를 위해 이동을 했다. 이러한 형태의 여행이 반복되었다. 이동하는 차량에서 인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다음 방문하는 곳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비슷한 이유로 루브르 박물관을 두번째 가이드와 방문했을 때도 무엇인가 갈증이 있었다. 작품별로 어떠한 의미인지 충분한 설명을 들었지만 동선 간 어떠한 연결도 없었다.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흥미로움과 거리가 먼 상태로 풀어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머리 속에 계속해서 그 질문이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좋은 가이드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 Connecting the dots과 만유인력의 법칙


'Connecting the dots' 이말은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는 표현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비슷한 개념 하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만유인력의 법칙. 질량을 가지고 있는 두 물질 사이에 서로 끌어 단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 온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 중력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영향을 서로 미치는지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스토리텔링은 보이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 무엇인가를 눈에 보이게 해주는 매력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못보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면 그 이야기는 힘을 갖게 된다. 좋은 가이드에게 스토리텔링에 대한 능력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비단 가이드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도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몹시 중요하지 않을까? 나의 경험과 기억이 어떻게든 연결되는 Connecting the dots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의 스토리텔링. 

우리가 스토리텔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눈처럼 둥글둥글 불어나고 부풀려지는 이야기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