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가 제일 쉬웠어요
썰렁한 날씨였다. 여름을 막 지나 가을의 절정기를 향하는 날이었지만 기온이나 체감온도 같은 게 아닌 뭔가 한기가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코로나가 이렇게 심각하게 그리고 길게 우리 생활을 뒤흔들고 사회적인 움직임을 막을 수도 있구나라고 인지되고 있는 시기에 중국을 간다는 게 (주변에 파병을 간 친구는 없지만) 왠지 파병 가는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재원으로서 임무는 명확하고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되는 업무적인, 개인적인 베네핏은 분명히 있겠지만 막상 떠나는 날이 다가오니까 과연 저울질을 잘하고 결정한 것일까 라는 의문도 다시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망설임을 생각하기에는 부질없는 일이라 코로나 시국이라 만나 뵙고 인사를 못한 분들께 천천히 연락을 드리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을 도착했을 때 인천공항이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은 한산한 풍경을 보고 군데군데 막혀있는 모습에 썰렁함과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조용히 수속을 진행했다. 이전과는 다른 코로나 검사내역과 중국 내 입국을 위한 자료들을 이것저것 챙기고 함께 타고 가는 동기들 간에 마지막으로 잊은 건 없는지 지금이라도 더 할 게 없는지 이야기하면서 차분하게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흥분돼서 떠들썩하고 새로운 기회를 잡아 생활하게 되는 기대감으로 들떠있을 분위기를 생각했건만 배웅 나온 가족들도 동기들도 다들 중국에서의 숙제와 한국에서 남은 사람들의 할 일에 대해서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중이었다. 가족들의 입국일도 정해지지 않았고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부부가 먼저 중국에 와서 살집도 함께 보고 며칠간 주변을 둘러본 다음에 한국에 들어가서 집정리를 하고 각자의 스케줄에 맞게 정해진 일자에 이삿짐을 보내고 가족들도 들어오는 일정이지만 다 틀어진 지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해지지 않은 가족 입국일이 있다 보니 혼란스럽고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보니 저절로 한 번씩 한숨이 쉬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비행기는 떴다.
전세기로 운행되었지만, 가운데 자리는 비워두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이야기도 금지한 터라 조용했다. 잔잔한 진동과 함께 조용하니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
기내 안내방송과 함께 착륙을 하고 도착을 했지만 엄숙(?)한 분위기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한참을 대기하다가 드디어 앞줄부터 한 줄씩 차례로 빠져나가서 전신을 흰색 방호복을 입은 중국 공무원과 공안을 통과하고 검사줄에 섰다. 전세기라서 다들 같은 목적의 인원이 온 거지만 일일이 물어보고 대답하고 그리고 검사하고.
분위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딱딱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그 모든 절차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우리를 바이러스로 보는듯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된 버스에 탑승해서 (그 당시에는) 어딘지 모를 호텔에 내려주었다. 하루 숙박 후에 정식 격리 호텔에 다시 이동한다고 했다.
비행기를 탄 이후부터 강압적인 분위기를 계속 겪고 보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엄청났다.
동기들을 서로 간에 얼굴은 못 보지만 카카오톡과 위챗(중국의 카카오톡)으로 호텔이 지저분하다던가 여기가 어디라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냥 잠들었다. 상세한 디테일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꿈속에서 계속 말했던 것 같다.
아… 나는 지금 중국에 왔구나.. 여긴 중국이구나. 아 뭔가 모르게 그냥 피곤하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다른 호텔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2주간의 격리가 된다고 안내를 받았다. 버스 창밖으로 짐들이 내던져지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보는 내 처지도 그럴 거 같았다. 이게 참 입장이 이상한 게 검사도 다 받고 문제없음으로 왔으면 우리가 그들을 좀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 조심해야지 이런 느낌이었다면 피해의식 혹은 다른 체제의 국가에서 받은 낯선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는 바이러스로 보는듯했고 우리가 가져온 짐들도 손에 묻을까 방호복에 혹여라도 닿을까 조심하면서 던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정말 시작인가?
이런 환경에서, 말로만 듣던 격리라니 걱정스럽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어쩌면 좋지.
정말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한숨이 비슷한 타이밍에 몇 명이서 함께 나오니 키득키득거릴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관리대상 외국인 전용 통로를 통해서 드디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호텔에서 회사와 함께 준비해 준 세심한 배려의 물품에 살짜쿵 감동을 받았다. 2주면 봉지커피는 하루에 한 개씩만 아껴 먹으면 될 거 같고 박카스는 일주일 기념으로 마실까?
그리고 ‘짐에게는 아직 한 달 치 먹거리가 있습니다’.
캐리어 한가득 담아 온 먹거리가 있어 배급 음식이 맘에 안 들면 언제든지 MSG가 첨가되어 있는 간편식으로 먹을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래도 행운인 것은 나름 오션뷰에 높은 층을 배정받아서 뷰가 멋졌다. 2주 후의 자유를 갈구하는 격리자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을 거 같은 만족감이랄까.
매일매일 지정된 시간에 코로나 검사와 급식을 받고 피검사를 받는 루틴이 되니 힘들어하는 동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밖으로 보이는 자유에 상대적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동기들이 많았지만 난 괜찮았다.
평소 활동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내 성격이 의외로 방구석스타일인 것을 이번에 재발견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격리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의 한국인들의 격리의 경험을 보면 정말 운이 좋게 시작한다고 생각이 들어서 어느 정도의 불편은 웃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 처해봐야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새로운 나의 성격도 보았고, 더불어 앞으로는 없을 이 경험은 몇 년 후 술자리에서 나올 소중한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았다.
암튼 이제 주재원으로 중국에서의 생활이 진짜 시작임을 머리로만이 아닌 몸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