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옥동과 동석이 부러운 이유
어젯밤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눈가가 짓무르도록 울었다. 암에 걸린 옥동과 아들 동석의 이별이 주는 여운이 길다. 옥동의 맺힌 한이 조금씩 풀려나가고 아들의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이 아름다웠고 가슴 시렸다.
남보다 못한 사이로 엄마만 보면 화를 내던 동석이 온 동네 사람들의 회유에도 엄마의 목포 나들이에 동행하지 않겠다더니, 동석의 연인인 선아가 엄마한테 다 물어봐라 하는 한 마디에 마음을 돌릴 때부터 이 결말은 예견된 것이었다. 새벽에 목포를 향해 출발할 때는 툴툴대던 동석이 의붓 형과 싸우자 옥동은 처음으로 동석 편을 든다. 그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살아있는 게 장하다고 한다.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을 그 자리에서 확 쏟아붓는다.
동석이 달라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엄마에게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엄마의 고향 마을 자리를 같이 가고, 발목 부은 엄마를 업고, 한라산도 같이 간다.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들이 녹음해 온 동영상을 자꾸만 보는 옥동을 보면서 진짜 많이 울었네. 아들이 사는 곳도 갔고 아들의 연인 선아도 만난다. 아침에 일어나 행복한 얼굴로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여 놓고 옥동은 죽었다.
아! 그래 옥동은 암이구나. 삶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는 암이구나. 죽는다 하니 처음으로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 요구도 하고, 없던 용기가 나서 아들 편도 들 수 있었구나.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행복하게 죽은 옥동이 부러워서, 엄마를 따뜻하게 보낸 동석이 부러워서 또 울었다.
고혈압이었던 우리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진 지 3일 만에 마지막 인사도 없이 돌아가셨다, 만으로 쉰이 조금 안 되는 나이에. 큰딸인 내가 스물다섯, 4남매 중 막내는 중학생이었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2~3년 전부터 혈압약을 드셨다. 낮에 쓰러질 뻔했다는 날, 저녁에 약방을 운영하는 아버지 친구분이 오셨다. 그분은 또 이런 일이 있으면 큰일 난다며 약을 더 센 것으로 주시면서 걱정을 했다. 결국 엄마는 진짜로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나는 엄마의 가혹한 운명을 슬퍼했다. 혼자서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고,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와 싸우면서 늘 걱정 속에 살다가 가신 엄마는 내게 숙제였다. 큰딸 하나 교사 만들어놓았고, 제대 후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아들, 막 대학생이 되려는 딸과 중학교 삼 학년 막내를 놓고 가는 걸음이 천근만근일 터다. 생전 한 번도 편안해 보이지 않던 엄마의 삶은 내가 알아내야 하는 그러나 이해하기 싫은 숙제였다.
옥동처럼 삶을 정리할 시간이 우리 엄마에게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본인의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고달팠지만 행복할 때도 있었지. 아직 다 독립시키진 못했지만 살림 밑천 맏딸 하나 다 키웠으니 어떻게든 살겠지. 맏딸아 네가 힘들겠지만 여기까지만 좀 해다오. 그런 포용과 이해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고통은 옆에서 지켜보기가 더 힘들다고 했다. 엄마의 삶을 본인이 아닌 내가 그 의미를 정리하려니 더 힘들고 더 억울한 모습이었던 거다. 청년 가장으로서 온갖 어려움을 겪어내는 와중이었으니 더 비극적으로 다가왔겠지. 미움은 나날이 커졌고 그 미움만큼 내가 고통스러웠던 거구나.
나는 암보다 고혈압이 더 무섭다. 아니, 갑자기 죽는 건 다 무섭다. 옥동처럼 쓰던 짐도 버리고, 맛난 떡을 해라 친구에게 부탁도 하고, 평생 가슴속에 있던 말도 쏟아내고, 아들과 화해도 하고 나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올해부터는 매해 유언장을 쓰기로 결심을 한다. 남겨질 내 아이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