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노력만으로 자식이 잘 된 건 아니다.
알콜 중독자는 자신의 직업에 성실할 수 없다. 그리고 대체로 술에 취해 있으므로 가족들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웃도 알콜 중독자로 인한 피해를 알콜 중독자의 가족에게 말을 한다. 그 자식들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제대로 자라나기 어려운 환경 속에 놓인다.
그렇더라도 그 자식들은 잘 자라날 수 있다, 알콜 중독자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받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알콜 중독자가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 받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무관심 혹은 거리두기까지 한다면.
아버지는 한량이셨다. 본래 한량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양반계층에서 일없이 노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울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늘 쪼들렸으며 할 일을 내팽개치고 놀러 다니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5일에 한 번 새벽에 물건 떼러 진주에 다녀오면 그뿐이었다. 술과 노름이 아버지의 주종목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게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나를 ‘사과 집 큰딸’이라고 불렀다. 그 말은 ‘사과 가게 주인인 술주정뱅이 아래에서 자라나는 불쌍하고 하찮은 여자아이’라고 나에게 인식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집 근처로 발령 신청을 할까 하다가, 집 근처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불면증에 시달리더니, 일시적인 착각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 때 의사가 아버지는 오랜 알콜 섭취로 뇌의 반 이상이 작동이 안된다고 했다. 이후, 아버지의 어리석은 결정들을 볼 때면 나는 술병이라 그렇구나 했다.
엄마 돌아가신 10년쯤 후에 아버지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의사는 사회부적응이라 했고, 어떤 치료를 해봐도 효과가 거의 없다고 했다. 처음에 우리 형제들은 시간만 나면 면회를 갔다. 내가 사는 곳은 그 병원으로부터 3시간 거리라 면담을 하고 싶어도 의사의 근무 시간에 맞출 수가 없었다. 방학 1달 전에 면담 예약을 해 놓고 방학이 되자마자 의사를 만났다. 그 때 의사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여기서 병원을 운영한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이 시골에서 우리 아버지 같은 알콜 환자들을 수없이 만났는데, 자신이 만난 알콜 환자들의 자식들 중에서 우리 형제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했다. ‘의사, 교사, 회사원’으로 직업도 좋고, 멀리 살면서도 자주 찾아오고, 또 아버지의 바람을 이루어드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놀랍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힘이 무엇인지 나에게 질문했다. ‘어머니의 노력이다.’고 했더니 의사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했다.
그 힘이 무엇인지 10년쯤 더 지나고 나서 알았다. 내가 알아낸 게 아니고 딸아이와 같은 반 친구였던 **엄마의 관찰과 해석으로 그 비밀을 알아냈다.
내가 **엄마를 만나면 우리 아버지 험담을 많이도 했나보다. **엄마는 참 곱게 자란 분이라 내 이야기가 놀라웠다고 한다. 알콜 중독이고 불성실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가 교사도 되고 성품도 좋은?-좋게 봐 주신 까닭이다- 어른으로 자란 게 대단하다 했다. **엄마의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했고, 2인실인데 맞은편 환자가 알콜 중독자였단다. **엄마는 말로만 듣던 알콜 중독자를 보고 나를 떠올리며 그 가족을 관찰했단다. 알콜 중독자의 부인과 딸이 번갈아 가며 병실을 지키는데, 그 딸이 욕도 잘하고 화를 자주 내고 좀 무서웠단다.
‘어라, 저 사람은 내가 아는 OO이 엄마와는 많이 다르네. 저 사람과 OO이 엄마는 어떤 요인으로 차이가 나는 걸까?’
하고 며칠을 지켜봤단다. 그 환자는 수시로 가족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고함을 지르는 등 갖가지 행패를 부리더란다.
**엄마는 남편이 퇴원하고 난 후, 나를 만나고 호젓한 시간이 되자 나에게 질문을 먼저 했다.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네, 뭔데요?”
“전에 OO엄마가 친정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다고 했잖아요. 그 때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나서 집에 와서 어떻게 하셨어요?”
“으잉?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시죠?”
“먼저 말씀을 해주시고 나면 내가 이야기를 할게요.”
“네, 우리 아버지는 집에 오셔서 주로 잠을 잤어요. 밥을 달라하기도 하고. 식사 후에는 걍 조용히 잤어요.”
“엄마랑 싸우고 그랬다고 들었는데, 싸움을 어떻게 했나요?” “엄마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죠. 엄마가 화가 나니까 울면서 제발 술 좀 먹지 말아라 등의 말을 했고 아주 가끔 두 분이 큰소리를 내기도 했어요.”
**엄마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을 반짝이며 자기가 관찰한 그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했고, 우리 형제들이 잘 자라난 데에는 성품이 나쁘지 않은 아버지의 역할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우리들을 직접적으로 언어적 학대를 하거나 신체적 학대를 했다면 아무리 엄마가 열심히 키워도 우리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했을 거라 했다. 그 환자의 딸처럼 그리 찌그러진 인품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너무 미워하지 말고, 최악의 아버지를 안 만난 것만 해도 다행인 것 같다고도 했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남편과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다 나쁜 놈 취급하던 그 당시의 나도 그 ‘썰’에 찬성했고, 우리 가족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해 준 관찰력과 판단력에 감사했다.
아! 이거였구나. 우리 아버지가 그래도 우리에게 숨 쉴 여유를 주셨구나. 경제적으로 쪼들렸지만 그렇다고 학대를 하지는 않았구나. 세상에 그런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세상은 천층만층이네.
우리 형제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한 그 의사에게 이 답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