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35호 (2022년 7월호)
코너 : DUGOUT Story
인터뷰이 : LG 트윈스 이정용
인터뷰어 : 김세연 아나운서
일자 : 2022년 6월 16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잠실야구장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남긴 이 말은,
어쩌면 인생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린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는데,
간단하게는 오늘 점심을 뭐 먹을지에 대한 선택부터
크게는 인생을 바꿀 만큼 큰 규모의 선택까지,
삶은 매순간 선택으로 가득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 늘 옳진 않다는 거다.
예상을 빗나간 비극적인 결과가 나오게 된다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좌절할 뿐 아니라
과거 잘못된 선택을 한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가 당장은 아름답지 않더라도
크게 후회하고, 스스로를 미워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우린 그 순간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고른 걸 테니까.
또 어쩌면, 지금의 선택으로 나중에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DUGOUT Behind> 열세 번째 주인공,
자신이 내린 선택을 당당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 이정용이다.
"개인적으로 작년(2021년)보다 홀드를 더 많이 올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20홀드도 하고 싶고요. 물론 아쉬운 장면이 몇 개 있었지만, 남은 시즌은 더 잘해서 작년보다 좋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사실 인터뷰 당시와 지금의 이정용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2022년 여름만 하더라도 그는 필승조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2020시즌 데뷔 후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비록 풀타임 2년 차였던 2021시즌에 비해 세부 지표가 살짝 떨어졌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스스로 목표라고 말했던 첫 20홀드 달성을 포함해 '불펜 투수'로서 준수한 기록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2022시즌을 마친 후, 그의 인생을 바꿀 첫 번째 선택을 내린다. 바로 상무야구단 지원을 철회한 것. 이미 1차 합격자 명단에 들었지만, 한 시즌을 더 함께하자는 구단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잠시 멈췄어야 할 그의 야구 시계가, 2023년에도 '연장 운행'되기로 한 것이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2023시즌. 그리고 이정용은 시즌 초 고우석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 마무리'로 낙점됐다. 예정대로 입대했더라면 마무리 공백이 더 컸을 것이기에 그의 선택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웬걸. 시즌 첫 등판이었던 4월 2일 개막시리즈에서의 블론세이브를 시작으로, 이정용은 4월 한 달간 무려 5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만다.
여기까지만 해도 입대를 미룬 것이 '악수'였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상황. 더군다나 LG가 우승에 도전하는 상황이라 그의 부진은 더욱 뼈아팠다. 그렇게 개막 후 두 달 반이 지난 6월 말, 이정용은 다시 한번 중대한 선택을 내린다. 그건 다름아닌 '선발 전환'이었다.
상무야구단 지원 철회에 이은 두 번째 선택. 하지만 이 선택에 희망적인 전망을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프로 데뷔 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보직인데다, 시즌 초반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LG 선발진의 사정이 워낙 나빴기에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순 있더라도, 이것이 판도를 바꿀 만큼 유의미한 성적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정용은 놀라운 반전을 이뤄낸다. 첫 선발 등판이었던 6월 25일 롯데전에서 2이닝 1실점으로 무난한 기록을 남긴 걸 시작으로, 14경기 동안 65.2이닝을 소화하며 4승 2패 ERA 3.70으로 호투했다.
특히 첫 10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LG는 무려 9승 1패의 성적을 올리며 '승리요정'으로 자리매김한 건 덤. 그야말로 모두가 '악수'라고 생각한 선택으로 시작한 2023시즌의 운명을 바꾸는 '신의 한 수'였다.
이정용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가을의 가장 높은 무대였던 한국시리즈에서는 마당쇠로서 4경기에 등판, ERA 0.0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특히 그의 활약이 돋보인 건 단연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오지환의 역전 스리런으로 경기를 뒤집은 직후인 9회말, LG는 1사 1,2루의 위기를 맞았다. 이때 마운드에 오른 게 바로 이정용. 그는 폭투와 고의4구로 1사 만루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지만, 후속타자 김상수를 1-2-3 병살로 잡아내며 1점 차의 리드를 지켜낸다.
1년 전, 그는 가을에서 악몽 같은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정용은 다시 한번 마주한 가을에서 그 악몽을 지워내는 결정적인 세이브를 올렸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억까를 스스로 극복해냈다. 유독 극적이었던 이날의 경기. 그 강렬한 마지막 순간 한가운데에 이정용은 당당한 주연으로 서 있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책임감도 생기고,
그만큼 제가 느끼는 무게를 이겨내고 싶어요.
혹자는 그의 선택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시즌 초 그의 부진에 그 예상이 맞았을 거라 생각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건 다름 아닌 이정용 본인이었다.
만약 처음 계획대로 2022시즌 후 군대에 갔다면, 자칫 입대 전 마지막 가을이 쓰라리게 기억됐을 테다. 그러나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을 우승으로 장식한 그에게 입대 전 마지막 가을은, 그 무엇보다 달콤한 계절로 남지 않았을까.
"얼마 전 인터뷰에서 말한 건데, '긍정으로 생각하면 성공으로 불러온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저도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라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거든요."
2022년, 이정용은 당시 팀 선배였던 채은성과 힘이 되는 명언이나 문구를 주고받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선수는 포지션이 다른 데다, 연차도 차이가 많이 난다. (입단 연도 채은성 2009년, 이정용 2019년) 게다가 대외적으로 우직하고 진중한 이미지를 가진 채은성에 비해 이정용은 상대적으로 쾌활하고 장난기 넘치는 인상을 가진 선수였으니, 둘이 그 정도로 정서적인 접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였다.
그러나 그가 답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모든 게 납득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답변처럼 이정용은 상당히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진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원고를 읽다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의 답변엔 특유의 장난기와 끼가 잔뜩 묻어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우직하고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평소 그가 부지런히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만 유튜브에 공개된 인터뷰 영상에 이런 댓글이 달린 걸 보면, 평소보다 얌전해보인다고 느낀 게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긴 하다. 엘튜브에서 활약할 때에 비하면 일부러 텐션을 자제(?)한 걸 수도 있겠다는 게 합리적인 의심.
이번 비하인드는 역대급으로 인터뷰 당일의 기억이 희미한 에피소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재작년 여름에 진행한 것인데다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이때와 지금의 이정용은 많은 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1년 반 사이에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 흥미로웠던 건, 이때 원고에 남긴 내 감상이 썩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엘튜브 '지분 대주주' 다운 밝은 모습과는 달리,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이정용은 늘 진지하고 진심인 모습을 이어갔다. 수많은 성공을 거두고, 때론 쓰라린 아픔을 겪으면서 그가 맺어내는 열매들은 하나같이 속이 꽉 차있었고, 끝내 소속팀의 우승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작년 초반만 해도 유례없는 슬럼프를 겪었다. 처음으로 찾아온 시련의 시기. 어쩌면 시즌을 앞두고 입대를 미룬 결정이 옳지 않은 건 아니었을지 고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중요한 선택을 결행했고, 그 결과 모든 걸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정용이 내린 선택의 존재감은 상당히 묵직했다. 그 자체만으로 옳은 결정이었을 뿐 아니라, 자칫 '잘못된 선택'으로 남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선택의 결과마저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신의 한수는 오히려 첫 번째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첫 번째 선택이 있었기에 두 번째 선택이 있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사 참 아이러니하다는 걸 또 다시 느끼는 순간.
인터뷰를 했던 2022년 6월 19일. 이날로부터 약 19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참 많은 게 변했고, 이정용은 유의미한 성장을 이뤄냈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19일에 훈련소에 들어간 이정용이 전역일은 2025년 6월 17일로, 앞으로 약 17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인터뷰 이후 지금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듯이, 전역 날까지 그는 다시금 큰 변화를 만들어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난 1년 반 동안 만든 것만큼이나 충분히 가치있고 것일 거다. 짧지 않은 기간 이정용이 1군에서 공을 던지는 걸 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그가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내년 여름을 기대해보려 한다.
인터뷰 현장에서 본 이정용은 누구보다 알차게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성숙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것 이상으로 몇 단계는 더 나아가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추운 겨울에 열심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이정용에게,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나오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오늘의 비하인드를 마친다. 더하여 안에서 배우고 싶은 걸 마음껏 배우고,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