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52호 (2023년 12월호)
코너 : DUGOUT Inside The Park
인터뷰이 : KBSN SPORTS 권성욱 캐스터
일자 : 2023년 11월 13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가 되기도,
각자가 좇고자 하는 미래가 되기도 합니다.
꿈을 이룬 사람을 보며 꿈을 꾸는 이와
꿈을 이뤄 그의 꿈이 된 이의 만남.
오늘 이들의 미묘한 간극에서 어떤 시너지가 일어날까요?
<DUGOUT Behind> 열네 번째 주인공,
자신의 목소리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KBSN SPORTS 권성욱 캐스터다.
내가 대화를 즐기는 타입이라, 인터뷰이에 상관없이 인터뷰 날은 전날 밤부터 두근거리곤 한다. 인터뷰이들이 TV 속에서만 보던 프로선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하지만 이날의 두근거림은 평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권 캐스터님이 경력이 오래된 '레전드 캐스터'이기도 했지만, 나 역시 10대 초반부터 중계 속에서 캐스터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역사와 함께한 목소리를 직접 마주한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그리고 인터뷰 당일, 캐스터님이 스튜디오에 도착하시고 나서 인사를 드리는데, 캐스터님은 아주 짧고 간결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권성욱입니다.
중계에서만 듣던 목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으니 이미 심장 멎기 직전. 다행히 인터뷰와 화보 촬영을 진행하기 전까지 몇 분의 짬이 있었기에 간신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나름 프로페셔널함(?)을 잃지 않기 위해 티를 안 내려고 했다만, 신남+두근거림+환희+감격+설렘이 지배한 감정선을 억누르는 데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캐스터님과의 대화가 실린 코너 이름은 '더그아웃 Inside The Park(a.k.a 인사팍)'. 전현직 야구선수의 인터뷰가 담기는 다른 코너완 달리, 인사팍은 우리 잡지에서 유일하게 비(非) 야구선수가 출연하는 고정 코너다. 물론 인사팍에도 야구와 관련된 인물이 출연하는 만큼 야구 얘기가 메인이 되지만, 본질적으로 '비야구인'인 경우도 있어서 질문의 종류가 선수들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에 인사팍은 경우에 따라 준비하기 정말 어렵다.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인데다, 질문지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사전 조사 역시 다른 코너의 몇 배가 소요되기 때문. (그리고 보통은 야구선수가 아닌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도 있다.) 특히 권성욱 캐스터님은 연차가 적지 않은 데다 이미 한 차례가 우리 잡지에 출연한 적이 있었으니, 과거 인터뷰와 겹치지 않게 질문을 뽑는 과정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에너지를 쏟은 만큼, 이날의 인터뷰는 상당히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일단 인사팍 자체가 전현직 선수들과의 인터뷰와는 '다르기 때문에' 평소보다 풍성한 대화가 오가는 것도 있고, 권성욱 캐스터님 또한 방송인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수려한 말재간(?)으로 인터뷰를 채워주셨다. 인터뷰가 50분 가까이 이어진 탓에 대화 내용을 원고에 다 담을 수 없어, 뭘 빼야할지 고뇌에 빠졌을 정도였다. 물론 기어코 원고에 다 우겨넣긴 했지만.
권성욱 캐스터는 특유의 말버릇으로 흔히 '좌담(좌측담장)선생'으로 불리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를 대표하는 건 바로 '오프닝 멘트'다. 중계를 시작할 때마다 간단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오프닝 멘트를 준비해오시는데, 그 멘트들이 하나같이 걸작이다. 일일히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멘트를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캐스터님의 이름을 알린 건 바로 이거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한 달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그 끝은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입니다.
그 끝이 창대할지 그 마지막이 미약할지 알 순 없지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갑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기대감은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오늘 걸어가는 이 길은 가고자 했던 길의 어디쯤일까요?
- 2021/10/07 창원 삼성 vs NC 경기 전 오프닝 멘트
멘트 자체만으론 그리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문구가 화제가 된 이유는 경기 날짜가 수능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치열한 순위싸움을 이어가던 삼성과 NC를 위한 구절이기도 했지만, 수능이라는 관문을 앞둔 수험생들을 위한 멘트가 된 셈이다. 이렇게 워낙 참신하고 가슴을 울리는 멘트가 많다 보니, 캐스터님이 멘트를 준비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듣고 싶었다.
"야구 캐스터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는 야구가 가진 역사성과 서사성을 잃지 않는 거예요. (중략) 지금의 팀이 옛날엔 어떤 과거를 겪었고, 그 이후로 어떤 과정을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이런 서사성을 잃지 않아야겠죠. 그걸 강조하면서 중계를 준비하다 보니 그런 오프닝까지 만들게 됐어요."
이 이야기가 내겐 크게 다가온 것이, 일전에 광작가님 역시 인터뷰에서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광작가님은 아무리 잘 그렸더라도 '서사가 없는 그림'은 나쁜 그림이라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권성욱 캐스터님 역시 당신의 멘트 속에 '서사성'을 담아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위 멘트만 하더라도 수능이라는 스토리가 더해져 더욱 울림을 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러한 캐스터님의 답을 듣고 나서, 문득 조그마한 욕심이 하나 생겼다. 바로 이날의 인터뷰의 스토리를 담은 즉석 오프닝 멘트를 요청하고 싶었던 것. 쉽지 않은 부탁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캐스터님은 그리 오래지 않아 간결하고 인상적인 멘트를 남겨주셨다.
10년 만에 돌아온 자리.
난 1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일 거로 생각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과연 난 10년 후에도
다시 이 자리에서 인터뷰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 권 캐스터님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15년 넘게 야구를 봐오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에도 캐스터님의 목소리가 남아있고, 이건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구 에디터로서 일을 시작한 데다 언젠가 더 훌륭한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는 지금, 캐스터님은 앞으로 내가 나아갈 이정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내 진로가 아나운서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야구계에서 권 캐스터님처럼 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SNS를 보면 성공에 관한 구절이나 얘기가 많아요. 그중에서 제일 공감된 건 “그냥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해봐라”라는 거였어요. 만약 본인이 진짜 재능이 있다고 믿고,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면 쉽게 포기하지 말고 최소 10년은 꾸준히 해보길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10년을 해서 뭔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한 10년 동안은 꼭 야구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목에 걸쳐서 후회 없이, 꾸준히 해봤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중 캐스터님이 스포츠 캐스터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남긴 말이지만, 이런 상황에 빈번하게 과몰입하는 내게도 이 말은 적잖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내 진로에 있어 올해가 가장 중요할 것 같은 느낌인데, 캐스터님이 얘기한 것처럼 내 할 일을 10년 동안 꾸준히 지속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전에 내 스스로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리고 잡지가 발간된 후 캐스터님께 온 카톡 하나. 인터뷰를 마치고 원본 사진을 보내드리기 위해 연락처를 교환했는데, 그걸 인연으로 이렇게 인터뷰 후기를 보내주신 거였다. 평소 내가 해낸 것으로부터 오는 보람을 갈구하는 스타일이라 하루종일 어깨가 한껏 높아진 것은 덤. 내가 에디터 생활을 못 끊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10년 만에 다시 인터뷰하게 돼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절 인터뷰하겠다고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지난 10년 동안 '내가 야구 캐스터로서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기분도 들고요. 또 10년 후에 다시 인터뷰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캐스터님이 얘기한 10년 후. 그때가 되면 나 역시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될 테고, 아마 지금이랑은 많은 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다. 작은 욕심이지만, 10년 후에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 다시 한번 캐스터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낭만을 찾는다는 미명 아래 꽤 변태스러운(?) 목표이긴 한데, 이게 현실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그건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방증일 테니까.
캐스터님! 앞으로도 멋진 중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더 큰 사람이 돼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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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오늘 비하인드를 위해 오프닝 멘트를 기증(?)해주신 YJ 에디터님께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