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담당한 선수를 다시 인터뷰한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요즘은 한 차례 잡지에 나온 선수가 1년도 되지 않아서 다시 나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최소 1년 이상은 쿨타임이 돌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다양한 선수를 만나는 걸 지향하기도 했고, 어지간히 큰 이야깃거리가 있지 않고서는 인터뷰 때 나눌 얘기의 소재가 떨어지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예전보다 동일 선수와의 재회가 이뤄질 가능성이 늘긴 했지만, 과거에 맡은 선수가 나온다고 해서 그 코너를 다시 담당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이미 한 번 만났으니 도의적으로 새로운 에디터에게 양보하는 게 맞기도 하고. 하지만 2022년 가을. 정말 어렵다고 여겼던 모든 경우의 수가 완성됐고, 그렇게 내 첫 인터뷰와의 두 번째 인터뷰가 성사됐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DUGOUT Behind> 스무 번째(이지만 사실 열아홉 번째) 주인공,
한층 깊어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LG 트윈스 이재원이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이재원과의 두 번째 인터뷰가 실린 코너는 바로 '더그아웃 팬터뷰'. 에디터가 혼자서 질문지를 완성해야 하는 다른 코너와는 달리, 팬터뷰의 질문지는 팬들이 보내준 질문들로 완성된다. 간혹 팬들의 참여가 저조할 땐 에디터의 역량으로 새롭게 채워야 하는 비극(?)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이재원이 워낙 LG 팬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던 시점이라 그 부분에 대해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딱히 내가 추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넉넉한 분량의 질문이 도착했다.
게다가 팬터뷰는 질문들의 분위기 역시 다른 코너에 비해 꽤 특별하다. 다른 코너는 에디터들이 어떤 서사를 담느냐에 따라 그 흐름이 다양하게 전개되지만, 팬터뷰는 기본적으로 '팬심이 담긴' 질문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흐름의 편차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에디터의 입을 빌려서 하는 팬미팅 같다고나 할까. 가끔 질문이라기보단 응원, 고백, 때로는 주접(...)에 가까운 내용을 전해야 할 때도 있어서 팬터뷰만의 아찔한 매력도 상당한 편이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웃음) 잘 모르겠어요. (귀여운 게 나은지, 멋있는 게 나은지는) 팬분들께서 말씀해주시는 거에 달린 거지, 제가 판단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 항상 멋있고 싶다는 마음이 큰데... (반문하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서인지 두 번째 인터뷰에 임하는 이재원의 텐션 역시 첫 번째와는 사뭇 달랐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코너의 성격을 미리 알려준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재원 역시 저번보다 확실히 편한 분위기 속에서 답변을 이어나갔다. 거기다 시즌 중에도 경기 후 퇴근길에 종종 사인 요청을 하면서 연락을 이어가기도 했기에, 인터뷰 내내 어색함보다는 익숙함이 지배적이었다.
언뜻 들으면 인터뷰라기보다는 그냥 수다 떠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고, 나나 이재원이나 한껏 뚝딱거렸던 첫 만남과는 말 그대로 정반대의 기류에서 대화를 나눴다. 한 번 인터뷰했던 선수를 다시 만났을 때의 장점이 백분 발휘된 것.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게임이든 뭐든 짧게 여러 번 하지 않고 한 번 할 때 진짜 오랫동안 해요. 애매하게 2~3시간만 하고 일어나기보다는 진짜 5시간 정도 하는 거죠. 전 항상 뭔가를 시작하면 진심으로 임해요. 진심으로 하지 않을 거면 아예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날 이재원은 자신의 답변에서 유독 "진심"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벌크업을 할 때도, 드라마를 볼 때도, 본인 취향의 노래를 고를 때도, 심지어는 쉬는 날 게임을 할 때를 묘사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사실 원고를 쓰면서 하나의 큰 키워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곤 하지만, 이렇게 인터뷰 도중에 명백하게 키워드가 등장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서문에 쓴 것처럼 전화가 채 끊어지기도 전에 '이번 원고의 키워드는 <진심>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만약 그 단어를 의식하면서 사용한 게 아니라면, 이재원은 늘 진심을 다하는 태도가 매순간 탑재되어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인터뷰 도중 그의 입에서 세 번째로 '진심'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을 때, 문득 난 이재원이 자신이 이러한 성향을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난 그에게 "이 정도면 모든 거에 진심인가 보네요?"라고 슬쩍 떠봤고, 그에 대한 이재원의 답변을 곱씹을수록 웃음이 절로 나온다.
"생각해보니 그런 부분이 있긴 하네요. (평소에) 잘 안 풀리더라도 풀릴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긴 하거든요."
(중략)
"제가 소고기에 진심이어가지고. 한번 먹으면 진짜 많이 먹을 자신 있어요!"
(중략)
"붕어빵은 슈크림이요. 전 완전 슈크림파에요. 팥도 좋긴 하지만 슈크림에 진심이어서요."
과연 이 남자의 진심이 닿지 않는 곳은 어디인 건지... 괜시리 그의 일상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저희에게도 머지않아 좋은 기회가 올 거고, 그 기회를 잡아서 꼭 우승 한번 해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2022시즌을 마친 시점에서 진행된 인터뷰라, 이재원은 새로운 시즌에 대한 각오를 밝히며 통화를 마쳤다. 거기다 당초 2023시즌 전 상무 피닉스에 입대할 거로 예상한 걸 뒤집고 다시 한번 LG의 우승 도전에 '올인'하기로 결정했으니, 다가올 시즌을 준비하는 이재원의 마음는 그 누구보다 결연하고 남달랐을 터였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새 주전 1루수로 낙점되며 착실히 시즌을 준비한 이재원. 그러나 그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캠프 도중 담 증세가 생겼고, 시범경기 막판엔 부상을 당하며 개막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다행히 부상 회복 후 5월 한 달 동안 15경기 타율 0.270 3홈런 OPS 0.925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페이스를 찾나 싶었지만, 불행히도 부상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한창 타격감이 타오르던 시점이라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이후 첫 부상과는 달리 빠르게 복귀했으나, 그의 기세는 두 번째 부상을 입기 전과는 사뭇 달랐다. 뜨거웠던 그의 방망이는 식어있었고, 그럴수록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이재원의 스윙은 더욱 조급해져갔다.
23시즌 전 애리조나 캠프에서 훈련에 임하던 이재원
결국 2023년 정규 시즌에서의 이재원의 성적은 타율 0.214, OPS 0.661 4홈런 18타점. 그리고 얄궂게도, 그는 정규 시즌 종료 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LG가 페넌트 레이스를 1위로 마무리한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4승 1패로 통합 우승을 차지한 터라, 그 현장에 있지 못했다는 게 실로 아쉬웠던 순간. 지난 몇 년간 LG의 우승 도전기를 함께했고, 팀을 위해 본인의 입대까지 미루며 어려운 결정을 내렸던 이재원이었기에, 그의 2023시즌은 내게도 속상하고 마음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2023시즌이 LG의 해피엔딩으로 끝난 뒤 새롭게 시작한 2024시즌도 어느덧 반환점을 돌기 직전이고, 여러 팀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이재원의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6월 10일, 그는 한 차례 연기했던 군 복무를 위해 상무 피닉스로 떠났다. 미필치곤 1999년생이라는 적잖은 나이이니 더는 병역 이슈를 미룰 수가 없었을 테다. 이때 워낙 서사가 만만치 않은 그이기에, 엘튜브에서도 입대 기념 영상을 꽤나 긴 분량으로 만들어 팬들에게 선물했다. 혹자가 보면 은퇴 영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련한 분위기가 백미.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잊지 말고, 기다려주시고, 기억해주세요.
더 성장해서 오겠습니다.
아마 부침을 겪는 동안 가장 속상하고 애가 탔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이재원 본인이었을 테다. 입대 전 팬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인사에서 '잊지 말고, 기억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어찌나 가슴 시리게 다가오던지. 그래도 1년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이 생겼으니, 그동안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한결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그의 바람대로 난 그를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이재원이 보여준 '진심'을 기억할 테니까.
출처 - 더그아웃 매거진
1군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2021년, 엘튜브에서 이재원이 본인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뽑은 건 '크다', '착하다', '순수'였다. 그리고 더그아웃 매거진에서의 첫 인터뷰에서 새로운 키워드를 뽑아달라는 내 요청에 그는 '야구 잘한다', '성실하다', '꾸준하다'라는 단어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 후로 한 시즌이 지났을 때, 이재원은 '후회하지 않기', '야구 잘하기', '각인시키기' 라는 키워드로 업데이트했다. 팀이 우승에 도전하는 시즌에 어떤 역할을 해내고 싶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 키워드를 듣고 난 후 난 "다음 인터뷰에서는 또 새로운 키워드로 얘기해주세요!"라는 기약을 남겼으나, 그 이후로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로운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그를 처음 만난 이후로 그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나로서는 언젠가 다시 그와 긴 대화를 나눌 자리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날의 통화 이후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른 이 시점에서 그의 마음가짐과 키워드를 듣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되겠습니다.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돼서, 앞으로는 저희 팀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게 노력할게요. 팬분들께서도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지금처럼 응원해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잊지 못할 내 첫 인터뷰이. 그리고 여전히 두 번이나 얘기를 나눠본 유일무이한 선수. 그 어떤 이도 소중하지 않은 인터뷰이가 없었지만, 유독 이재원만큼은 더욱 애착이 가고 관심을 쏟게 되곤 한다. 잠시 그와의 안녕을 고해야겠지만, 그의 바람대로 난 결코 그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재원이 다시 잠실의 빅보이로 타석에 들어설 그 순간, 이별의 기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열렬한 응원을 보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