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뻐근한 등허리가 오후가 되니 덜덜거리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순수한 아픔을 느꼈다. '아뿔사, 이거 감기 근육통이구나!, 이런, 감기에 걸렸구나!'
병원에는 이미 각종의 환자들로 북적거렸다. 코너 한 쪽 덜덜거리는 통증을 온몸으로 느끼며 주사라도 한 번 맞아볼까하고 기다렸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 겨우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일면하고 약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본격적인 통증은 밤에 시작되었다. 끙끙대며 뒤척이는 긴긴 밤이었다. 아침이 되니 몸은 땀으로 흠뻑젖었다. 하루 쉬고 싶었으나 출근이라는 루틴을 깨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밥 한그릇 뜨끈한 국물과 먹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는 한겨울 감기가 들었을라치면 종종 콩나물국으로 승부를 봤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약봉지는 언감생심이었다. 그저 많이 먹으면, 밥만 먹으면 나을 것이라는 신념이 엄마에게는 있었다. 콩나물국으로 삼시세끼 겨울의 신 김치와 한 사나흘을 줄창 먹을라치면 그게 더 이상 먹기 싫어서라도 감기는 나아야 했다. 아니 나은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질리도록 먹은 콩나물국!이 먹고 싶었다. 이런 젠장! 살아보니 엄마 말은 대부분은 진리였다.
뜨끈한 국물을 보기만 해도 등 한쪽에 땀이 흐르는 듯 했다. 밤새 욱씬거렸던 척추가 이제 한 숨을 돌리고 풀릴 것만 같았다. 곱게 차려진 아침 한 상을 받아들고 나는 인생 뭐 별거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참을 호로록 거리며 콩나물국을 욱여 넣었다.
일주일은 먹일 요량으로 큰 양은냄비에 한가득 콩나물국을 끓이며 아픈 딸을 애처롭게 쳐다보던 엄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먼 곳에 아내를 보내 놓고 오지 못해 안타까워할 것 같은(내 추측이다) 남편의 얼굴도 겹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년을 지치는 줄도 모르고 쉼없이 달려온 내가 생각났다. 이제야 마주한 콩나물국 한 뚝배기.
장학사가 되면 뭔가 많은 것들을 학교를 위해 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청운의 꿈이 바스라지는 데에는 몇 달 걸리지 않았다. 그 많은 주무관님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데 말이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거대한 조직속에서 대충 눈치보며 숨죽이며 살아가라는 타인의 요구를 외면하려 노력했다. 쉼없는 내면의 갈등이 감기 몸살의 오랜 근원이랄까...(좀 포장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에취!~ 그래도 내가 앉은 자리에서 부끄럽지는 않게 살려했 에취~!!
열정 가득 고군분투했던 나의 2024년을 미련없이 보내야한다. 가슴은 뜨거워지고 눈은 흐려진다. 콩나물국밥때문일테다.
이제 딱 1년 남은 장학사 의무 근무 기한. 너 2025년! 딱 걸렸어! ^^ (에효,, 타이레놀이나 먹으러 가자,,아직 열이,, 미열인가?,, 고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