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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한없이 작아지는 날이 있습니다.

by 아생

한주 안녕하셨나요? 그런 날 있지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하나로 수렴돼 폭발해 버린 날 말입니다. 제 한주가 그랬습니다. 제 쓸모를 인정받고 싶다는 쪽으로 분출했습니다. 그게 원인인지 결과인지 분간 못하겠습니다만. 은퇴한 지 3년인데도 삼십여 년 일하던 몸이 그때의 긴장감을 기억해서일까요. 무의식 중에 여전히 뭔가를 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무얼 한들 30여 년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레벨업 했던 성취감에 비견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새로 시작한 지 고작 3년인데.

다만, 살아있음에 감사하니 더 무얼 바라겠나 쓸모를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던 생활은 30년이면 족하다. 이제 존재이유를 쓸모에서 찾는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리라. 그래서 내 노동력을 돈과 거래하지 않으리라, 일을 하고 싶다면 밭을 일구고 봉사하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이나마 4년째 지역사회 실천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환경, 평화, 평등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하는데 지난주 평등 활동으로 베트남 결혼 이민자를 방문했습니다. 몇몇이 모여 먹을 거, 입을 거, 신을 거를 챙겨 어린이날 깜짝 이벤트를 하고, 모임 홈페이지에 활동상황을 글로 정리해서 올리자 했습니다.


그녀는 20대 초반에 나이 많은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남매를 낳았고, 지금은 알코올중독자인 남편과 이혼소송 중입니다. 6평 남짓 원룸에서 남매를 홀로 양육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버거울 수 있는데 아이들과 있으니 행복하답니다. 통역 앱을 사용해도 소통이 잘 안 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저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베트남에 가고 싶다 합니다. ‘거기에 엄마 아빠가 있다’고 웃으며 또박또박 내놓은 말이 ‘내게도 엄마 아빠가 있다는 말’로 들려 먹먹해졌습니다.


그녀의 신산한 삶이 안쓰러웠을까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드디어 쓸모를 증명할 때가 왔다였을까요. 잘 전달하고 싶어서 공들여 기사를 썼습니다.


기대와 달리 편집자가 보내온 수정본은 개인정보노출이 우려된다며 일부분이 삭제되고, 글의 구조도 바뀌었습니다. 나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전문가의 노련함으로 수정했을 텐데 제 눈에는 글 흐름의 중심축을 끊어내고, 필요 이상 단문으로 바꾸고 상투적인 감정표현이 덧칠해진 것으로 보이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편집자와 제 시선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감정일겁니다. 온종일 뜨개질을 하고 집안 대청소를 하며 예민해진 몸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편집자의 작은 실수들을 하나하나 짚어내 수정을 요청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는데 꼬박 하루를 썼습니다.


사실, 그 일 하나로 모아져 표출된 것뿐이지 원인은 다양하겠지요.


얼마 전 손목이 다쳐 2년째 이어오던 운동을 멈추고 명상도 한동안 뜸해서 예전 마음을 쓰던 습관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겼던 고무줄을 놓아버린 것처럼.

호강에 겨워 요강 깬다고 중심이 서지 않으니 이래저래 잔바람에 휘청댄 한 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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