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방영한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는 최첨단 시설이 구비된 천국을 중심 배경으로 80세의 해숙과 30대로 젊어진 남편 낙준이 재회하면서 50년의 나이차로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이 코믹하게 전개됩니다.
넓은 대지에 정원과 동화 같은 단독주택, 맑은 공기에 시원하게 탁 트인 들판, 시종일관 밝은 배경의 천국에서는 마냥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습니다. 내 집 마련, 취직, 육아, 생활비 걱정 없이 세상 편한 곳인데 젊어진 남편을 바라보는 해숙의 마음만은 지옥인 곳입니다.
그 부분이 웃음 포인트로 잔잔한 재미를 주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꽁꽁 싸매두었던 인물들의 묵은 갈등을 풀어냅니다.
내가 지은 원인이 결과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는 인연과보를 연상케 하는데요. 현생에서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전생인연을 돌아보니 정작 내가 가해자였더라 그렇게 인연은 돌고 돌아 억울할 것 없는 내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니 현생에서의 가해자를 용서하시고 응어리진 것이 있다면 풀고 가시라. 그리고 인간만이 아니라 반려견과의 관계로 확장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여기까지 천국보다 아름다운 것은 관계 속에서 생긴 원망, 분노, 미움을 털어 내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모호한 캐릭터 솜이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됩니다.
기억을 찾아가는 솜이를 따르다 보면 그녀가 아들을 잃고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던 젊은 시절 해숙의 슬픔 감정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과거 슬픔의 에너지가 솜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 현재의 해숙을 잡아먹으려 할 때, 목사가 된 아들과의 재회로 자신을 용서하며 슬픈 감정체를 놓아버립니다.
솜이라는 인물을 통해 천국보다 아름다운 것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나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봤는데요. 그래야 나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 테지요.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의 저자 가타다 다마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밤길에 만난 강도가 가방을 뺏고 칼로 찌르고 도망갔다. 이때 당신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다. 그러니 당신의 상처를 드러내서 치료받아야 한다. 그래서 상처받은 기억이 내 인생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매듭짓는 것이다. 용서는 강도를 도망가게 하거나 강도가 병원에 데려다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슬픔과 죄책감을 독립적인 인물로 설정하고 소멸시키는 과정이 신선합니다.
이참에 용서일기를 써보고 싶어 지는데요. 초3 때 반 아이들과 나란히 엎드려 복도를 청소하다가 옆반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십 원짜리 동전 세 개를 떨어뜨렸는데요. 그 아이가 돌아왔을 때 돈이 없어진 겁니다. 한바탕 삼십 원의 행방을 쫓았습니다. 그때 당시 구슬을 10개 내지는 라면땅을 2개, 또는 받아쓰기 공책 1권을 살 수 있는 돈이었죠.
순간 욕심에 내주머니에 들어있다는 말을 끝내하지 못하고 들킬까 불안에 떨던, 비겁했지만 그때는 몰랐던, 어린 시절 두고두고 걸려 넘어지게 하던 기억인데요. 이제 풀어줘야지 싶습니다.
미숙한 어느 시절에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