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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덮는다

by 아생


은퇴하면서 아쉬웠던 점 하나. 매일 같은 시간 일터가 있는 목동으로 가는 길입니다. 주택가를 나와 반듯하게 쭉 뻗은 자유로에 진입하며 그날 수업할 학생들 얼굴을 떠올리고 지난 시간에 부족했던 부분을 무엇으로 채울지, 진도를 어떻게 나가면 좋을지를 구상했습니다. 양재천변을 끼고 돌 때,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개나리꽃잎이 봄바람에 꽃비를 내리던 길, 간혹 한두 잎 차창을 넘어 들어와 조수석에 내려앉기도, 가을에 곱게 물든 벚나무 단풍, 겨울 전면 유리로 축복처럼 쏟아지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그날 일을 계획하며 긴장했던 어깨를 누그러뜨렸습니다.


퇴근길에는 장맛비로 자유로에 물이 차올라 바퀴 4개가 간간히 공중부양 하던 길을, 눈길에 엉금엉금 평소 30분 거리를 자정 지나 2시간 만에 집에 도착해서 안도의 숨을 쉬던 길, 바로 앞차 꽁무니만 따라가게 하던 짙은 안개를 뚫고 돌아온 길, 가끔은 낙조를 보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돌아온 길,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긴장과 몰입, 이완을 오가던 몇 시간의 뿌듯함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편안함과 다른 전달방식은 없었을까라는 아쉬움을 안고 돌아오던 길도 은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 공간은 내 삶의 스토리를 고스란히 입고 있습니다.

은퇴를 한 지금은 다른 길을 걷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반려견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돕니다. 마당에 자리한 개는 여지없이 온몸으로 묶인 줄을 튕기며 짖고, 집집이 있는 밭에 작물과 꽃들은 하루만큼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줍니다.

흙을 밟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산책로라 유심히 보고 들으며 걷는데요. 이 시간만은 2족 보행을 하는 사람과 4족 보행을 하는 사람의 가족이 있을 뿐, 휴대폰을 잠시 꺼두는 시간입니다.


그래도 걸음을 재촉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마주치는 주민에게 인사를 하는 편이라 이날도 풀을 뽑고 있는 그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건만 따짜고짜 소리부터 지릅니다. 분노를 씹어 뱉어내는 식이라 두서가 없어 재차 묻고 나서야 이해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개를 데리고 다니려면 똥을 꼭 치워라. 길 중간에 싸놓고 그냥 가면 어쩌자는 거냐’는 말입니다. 저는 손잡이 있는 냄비를 들고 다닌다. 개가 똥을 싸면 땅에 닿기 전에 여기에 받아서 집으로 가져간다. 파놓은 구덩이에 묻는다고 또박또박 말해줘도 제 말을 치고 들어와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그리곤 이 자리라며 와서 보랍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저와 그곳을 빠른 속도로 번갈아 봅니다. 그의 눈은 아직도 그 똥이 생생한 듯 손가락과 눈에 힘이 실려있습니다. 눈에 실핏줄이 터질 것처럼.


기어이 제가 안 치우고 갔다고 말하는 그가 괘씸했는데 얼마 안 가 개를 기르는 사람 중에 누군가는 들었어야 할 말이라고 여기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를 또 마주치기는 불편해서 긴장하게 되는데 어제는 그 집 맞은편 2층에서 중년 여성이 저를 부릅니다. ‘집에 호박 있어요? 없으면 따가세요. 거기 보이죠?’ 하는 게 아닌가. 올려다보니 그의 딸입니다. 마늘을 해지기 전에 거둬야 했는데 안 했느니 외출했다 이제 왔는데 어쩌라는 거냐 하는 말을 그와 싸우듯 하는 걸 몇 번 봤기 때문에 딸일거라 짐작합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이젠 똥이 아니라 호박이 떠올라 호박덩굴길이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지나가는 길이 가볍습니다.


기억도 살아있는 유기체인 게죠. 반려견을 훈련할 때 나쁜 기억이 있다면 그 지점에서 간식으로 좋은 기억을 심어준다 하더니 딱 제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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