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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Sep 17. 2023

치매 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개구진 하루 [16]

돌아온 오백만 원

 치매 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미자야 오랜만이다. 몇 년만이냐 10년 만이니? 20년 만이니? 계좌번호 알려줘”

“오오 ~ 순덕 언니 반가워 그런데 왜? 응?”

“내가 40년 전에  외숙모에게 빌린 거 있어  오백만 원”

“아니야 잊고 살던 거고  엄마는 기억도 못할 걸 됐어. 서로 잘살고 있으면 됐어. 엄마랑 통화나 해봐 반가워하실 거야”          


 40년 전 엄마에게 빌려간 돈을 갚겠다고 언니에게 뜬금없이 걸려온 사촌언니의 전화다.

사실 빌려간 건 아니고 잠적했었다. 엄마는 그때 계주였고 사촌언니는 이른 번호를 가진 계회원이었는데 곗돈을 타고 20번은 더 불입해야 하는데  어디론가 말없이 떠났다. 곗돈은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끼리 신용으로  하는 거라  문제가 생겨도 보상받을 길이 없어 계주가  이른 번호를  타고 날랐다는 뉴스보도가 많을 때인데 이 언니가 날랐다. 허망하게도. 목돈계는 25명의 계원이 돈을 돌아가며 몰아주기 방식이다.     


엄마는 한없이 낙심했을 거고  사촌언니 몫까지 채워 넣느라 잔업을 마다하지 않았을 테고  그럴 때마다  이를 갈았을 수도. “내가 어떻게 해줬는데. 시골에서 올라와  직장 잡을 때까지, 직장을 잡고도 월세방을 얻을 때까지 데리고 있었는데 나한테 이럴 순 없다. 형편이  어려운 거 뻔히 알면서 이년이 만나기만 해 봐라”

친척을 만나면 하소연도 했을 거고, 소문은 천리를  갔을 테고.

그 후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멀리서 들었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는데 직접 만난 건  25년 전쯤 집안 행사에서였다. 뒤통수에 하나로 묶은 검은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말하는 그 언니가 건강해 보일수록 미운 감정이 내게 올라왔었다.

나는 아직도 그 감정인데 어제 전화가 온 거다.  


기억력 박약하시고 사람 좋은 언니는 여전히 해맑게 투명한 웃음을 짓고 전화를 받았을 게 뻔하다.      

폰을 건네받은 엄마는 의외로 사촌언니를 알아봤고 예전에 함께했던 시간들을, 사촌언니 어렸을 때  시골집에서 엄마가 감을 따먹고 며칠 변비로 고생한 얘기까지 어제 일처럼 말하더라고. 말끝에 돈을 갚겠다 하니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그 돈 내가 준거야 순덕아 너 잘살라고. 그 걸 지금 갚겠다고? 근데 미자가 안 받겠다고 그래? 네(나의 언니)가 받아 써 네가 곗돈 받으러 다니느라고 윗동네 아랫동네 애쓰고 다녔다. 네가 받아 써”      

전화 끊자마자 언니 통장으로 오백만 원이 송금된 모양이다.

언니가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돈 받았다고. 나는 40년 물가 상승이 얼만데 원금만 주냐. 그 언니도 참 속없다고 하려는데 언니가 또 말한다.

안 받으려 했는데 엄마가 나(나의 언니) 보고  애썼으니 받으라 했다고 울먹인다. 

엄마가 “애썼다”라고 했다고. 

나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언니의 울먹임을 진동으로 느끼고 있었다.        


‘첫 딸은 살림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첫 딸은 집안 살림을 맡아하게 되니 큰 밑천이나 다름없다고 생긴 속담인데 첫 딸에게는 출생부터 가혹하다. 

언니가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모두 했으니까 나는 언니 심부름하는 정도로 거들었고 책임은 언니에게 있었다. 

그걸 당연하다 생각해서인지 엄마는 해가 갈수록 언니에게 살림을 더 의지했고 언니의 애씀은 혼자만 하는  노고가 아니라 그 시대 장녀의 몫이었다.

대학 합격통보를  슬그머니 휴지통으로 넣어 버리는 것도 장녀의 몫. 

바로 위 오빠와 동생인 내가 줄줄이 대학생이 될 판이니 아무 소리 없이 혼자 진학의 꿈을 접은 게 언니다.


언니를 유독 챙겨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가슴 한편에 담아두고 살아온 언니였는데 치매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엄마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들은 거다

 “네가 많이 애썼다. 네가 받아 써라”

집에서 양보하는 것이 익숙했던 언니에게 치매인 엄마가 챙겨주는 순간이다.

애정표현에 인색했던 엄마의 밑마음을 알아 버리는 순간이고,

바쁜 엄마 대신 종종거리며 때론 어른처럼 집안 살림을 했던 어린 날의 언니가 엄마의 자식으로 챙김을 받는 순간이다.           


엄마는 여전히 때때로 자식들을 감동시킨다.


* 사진출처; Money vector creat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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