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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Dec 12. 2023

한국에서 사라진 경영 컨설팅 회사 - 베어링포인트

한 시절을 풍미한 베어링포인트

한때 한국 컨설팅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다가 사라진 컨설팅사인 베어링포인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0년대에 커리어를 시작해서 연식이 있는 컨설턴트만 기억 할 베어링포인트가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한 기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글로벌 인수 합병의 일환으로 한국 컨설팅 시장에 2002년에 등장했고, 베어링포인트 미국이 2009년에 파산한 이후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는 2010년에 KPMG에 인수되며 자취를 감췄습니다.


추억의 베어링포인트 로고


# KPMG 컨설팅 출범


2000년대 들어서 회계부정 사건이 횡행하면서 회계법인이 겸업하는 컨설팅 사업이 회계 감사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컨설팅 매출을 올려주는 고객사의 눈치를 보느라고 회계감사를 엄정하게 못해서 회계 부정 사건이 발생한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비난 여론에 직면한 글로벌 Big 4는 컨설팅 사업을 회계 감사와 분리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KPMG도 별도 법인으로 KPMG컨설팅을 설립하고 나스닥에 상장합니다. 한국에서도 글로벌의 변화에 맞춰서 KPMG컨설팅 코리아가 출범합니다. 


출범 당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KPMG컨설팅 코리아는 인수합병을 통한 빠른 성장을 택합니다. 당시 회계부정에 연루되어 공중분해되던 아더앤더슨 코리아를 2002년에 흡수하며 몸집을 키웁니다. 형식적으로는 KPMG컨설팅코리아가 아더앤더슨 코리아를 합병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력이 훨씬 많았던 아더앤더슨 코리아가 KPMG컨설팅코리아의 브랜드로 바꿔달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합병 당시 50명에 불과하던 KPMG컨설팅 코리아보다 아더앤더슨 코리아는 3배 규모의 150명의 컨설턴트를 보유했었고 합병법인의 대표이사도 아더앤더슨 코리아의 대표였던 고영채 씨가 맡습니다. 아더앤더슨 코리아를 인수한 KPMG컨설팅 코리아는 컨설턴트 200명으로 액센츄어(3백50명)와 PWC컨설팅(3백50명)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컨설팅사로 자리매김합니다. 


# 베어링포인트 출범


2002년 들어서며 글로벌 KPMG컨설팅은 CI(Corporate Identity, 기업 정체성) 변경하여 새롭게 변신합니다. KPMG와 다른 별도의 컨설팅 회사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사명을 베어링포인트(Bearing Point)로 바꿉니다. 방향을 뜻하는 베어링(Bearing)과 목표를 의미하는 포인트(Point)를 조합해서 만들어진 사명인 베어링포인트는 고객이 목표를 성취하는데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서 기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는 공공, 제조, 건설, 금융, 통신 등의 산업을 중심으로 컨설팅을 제공했습니다. 다른 컨설팅사와 다르게 공공 부문에 공을 들였는데 중앙행정기관과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한 프로세스 혁신과 정보화전략계획 수립, 정부조달 활성화(G2B), 전자무역(e-Trade) 서비스 개선 등 전자정부 사업에 참여했고 차세대전자정부 로드맵 개발 등 국가적 전략 방향 설정과 연관된 사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공 외에도 △제조 부문의 재무 및 성과관리 전략 △건설 부문의 프로세스 혁신 △금융 및 통신 부문에서의 PMO 운영 등을 수행했습니다.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는 경쟁사만큼 큰 폭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출범 당시에는 액센츄어, PWC컨설팅의 뒤를 쫓는 200명 규모였습니다만 경쟁사들은 400명 이상으로 규모를 키우는 동안 내내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습니다. 베어링포인트 코리아가 경쟁사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한국 컨설팅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주요한 컨설팅사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 베어링포인트 미국 파산


2002년 브랜드 변경 이후,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시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지던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는 2009년에 날벼락을 맞습니다. 본사에 해당하는 베어링포인트 미국이 파산을 선언합니다.


당시 베어링포인트는 글로벌 15,000명 이상의 컨설턴트를 보유하고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업이 아니라 과도한 부채가 문제였습니다. 설립 초기 급속하게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인수합병을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는데, 이 규모가 상환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겁니다. 파산을 선언할 당시 회사의 자산은 17억 6,000만 달러였는데 부채는 이보다 훨씬 큰 22억 3,0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는 누구 품에?


베어링포인트 미국이 파산하자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도 활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처음으로 등장한 인수 후보는 딜로이트 코리아였습니다. 딜로이트 미국이 베어링포인트 미국의 공공서비스 부문을 인수했기에 한국 시장에서도 동일한 검토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딜로이트는 검토 결과 베어링포인트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공공서비스부문의 핵심 인력의 대부분이 빠져나간 데다 이미 수주한 프로젝트들도 크게 매력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니다. 베어링포인트 코리아의 주요 고객이었던 한국전력공사(KEPCO) 등에 대한 회계 감사 중복도 걸림돌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는 삼정KPMG컨설팅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애초에 KPMG에서 분리되어서 설립된 베어링포인트였기에 다시 본체로 돌아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인수를 결정한 이유는 삼정KPMG의 컨설팅 사업 강화의 일환이었습니다. 2010년 당시 삼정KPMG는 어드바이저리의 컨설팅 사업본부를 분리해서 독립법인 형태로 삼정KPMG컨설팅을 신설했는데, 빠른 성장을 위해서 과감한 베팅을 한 겁니다. 삼정KPMG컨설팅은 베어링포인트 코리아의 컨설턴트 120여 명을 흡수해서 670여 명으로 몸집을 불리며 국내 최대규모의 컨설팅 법인으로 부상합니다.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를 인수한 삼정KPMG컨설팅이 승승장구했을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패한 인수로 밝혀집니다. 인수를 한지 채 3년도 안된 2013년에 삼정KPMG컨설팅은 100억대 손실을 기록했고, 법인을 청산하고 다시 삼정KPMG로 흡수됩니다. 막대한 손실의 원인이 모두 베어링포인트 코리아의 인수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과도하게 늘어난 인건비가 손실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 글을 마무리하며...


삼정KPMG가 베어링포인트 코리아를 인수한 이후, 한국 시장에서 베어링포인트의 브랜드는 사라졌습니다. 다만 글로벌 컨설팅 시장에서 베어링포인트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베어링포인트 미국의 파산 이후, 유럽 파트너가 중심이 되어서 조직을 정비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때 15,000명에 달했던 과거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24개국에 47개 지사를 두고 약 5,300명의 컨설턴트를 보유한 중견 컨설팅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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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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