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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Dec 13. 2023

한국에서 사라진 경영 컨설팅 회사 - 액센츄어

액센츄어 코리아의 한국 IT서비스 도전기

한국에서 사라진 컨설팅사 2탄의 주인공은 액센츄어입니다. 액센츄어 코리아가 한국에서 컨설팅 사업을 한 기간은 무려 30여 년에 달합니다. 한국에 1986년에 등장해서 한 때는 가장 규모가 큰 외국계 컨설팅사로 손꼽히던 액센츄어 코리아는 2016년에 한국 시장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했습니다. '전격적'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뜬금없는 시점에 이루어진 일이고 명확한 이유마저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사라진 대부분의 외국계 컨설팅사는 장사가 안되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거나 글로벌 본사의 인수합병 때문이었는데 액센츄어 코리아는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액센츄어가 왜 철수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이번 글에서 한국 시장에서 액센츄어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철수를 결심한 이유를 짐작해 보고자 합니다.


# 아더앤더슨에서 앤더슨 컨설팅을 거쳐서 액센츄어 컨설팅으로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룬 바와 같이 액센츄어의 뿌리는 한때 세계 최대의 회계법인이던 아더앤더슨입니다. 과거 대형 회계법인 Big 8의 선두에 있던 아더앤더슨은 1970년대 GE에서 최초의 IT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IT컨설팅 분야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후 아더앤더슨은 IT컨설팅을 포함한 경영컨설팅 사업에서 두각을 보입니다.


초창기에는 회계감사의 매출 비중이 압도적이었지만 경영컨설팅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1980년대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회계사 파트너와 비회계사 컨설팅 파트너가 이익 배분을 두고 힘겨루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컨설팅 매출이 회계감사에 비견할 정도로 커졌고, 이익률은 오히려 훨씬 컸기 때문입니다. 컨설팅 사업에 기여하지 않는 회계사 파트너들이 수익을 나눠갖는 것에 컨설팅 파트너들은 불만을 품습니다. 반면에 터줏대감인 회계사 파트너들은 새롭게 등장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컨설팅 파트너들이 고까웠겠지요.


이들의 갈등은 한 지붕 밑에서 살지 못할 정도로 심해져서 결국 컨설팅 조직이 분사해서 앤더슨 컨설팅을 설립합니다. 분사 이후에도 앤더슨 컨설팅은 이익 배분을 두고 아더앤더슨과 분쟁을 거듭했는데, 결국 2000년에 국제재판소에서 승소하며 아더앤더슨과의 모든 관계를 청산합니다. 앤더슨 컨설팅은 아더앤더슨의 색채를 지우고자 액센츄어로 사명을 바꿔서 새 출발을 하는데, 이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엔론 회계부정으로 공준분해된 아더 앤더슨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 액센츄어 코리아


아더앤더슨은 1986년에 서울 사무소를 개설하며 한국에 진출했고, 1989년에 설립된 앤더슨 컨설팅 코리아가 2000년에 액센츄어 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하며 출범했습니다.


여타 컨설팅사와 마찬가지로 액센츄어 코리아의 매출액, 인원수 등 사업 규모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인터뷰 기사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2001년 기사에 따르면 액센츄어 코리아의 매출액은 1억 달러에 근접했고, 500명의 컨설턴트가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 밝힌 매출액과 컨설턴트수는 IMF 특수의 덕분으로 보이며, 그 이후에는 컨설턴트 400여 명, 매출 800억 원대의 사업을 유지합니다.


2000년대 초반 액센츄어 코리아는 IBM BCS와 더불어서 컨설팅 시장에서 투톱 체계를 형성합니다. 2010년에 접어들면서 삼일PWC, KPMG컨설팅, 베어링포인트 등도 부상하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액센츄어 코리아는 세 손가락에 항상 꼽히는 선두 컨설팅사였습니다.


엑센츄어 코리아가 다른 컨설팅사와 다른 점은 두 가지로 기억합니다. 첫 번째는 한국 법인이 글로벌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력하게 통합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글로벌과 제휴 관계로 다소 느슨하게 엮여 있는 회계법인 계열 컨설팅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업 전략, 프로젝트 수행, 방법론/산출물 공유, 조직 운영, 인력 교류, 컨설턴트 교육 등 전반에서 글로벌의 체계를 따랐습니다.


두 번째는 일찌감치 IT서비스를 강화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첫 번째 특징인 강력한 글로벌 통합 운영과 맞닿아 있습니다. 액센츄어 글로벌의 매출 구조는 전통적인 경영 컨설사와 다릅니다. 종이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컨설팅의 매출 못지않게 시스템 구축, 시스템 운영(아웃소싱)을 통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매출액과 이익 규모 모두 훨씬 클 것으로 짐작됩니다.


액센츄어가 시스템 구축과 아웃소싱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사업의 규모가 크고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기간만 단타성으로 치고 빠지는 컨설팅과 달리 시스템 구축과 아웃소싱 사업은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서 꾸준한 매출을 보장합니다. 전체 프로젝트 기간 대비 프로젝트 준비 기간도 짧기 때문에 컨설턴트 가동률이 높아서 이익률도 높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액센츄어의 사업 전략은 순수 경영 컨설팅보다는 시스템 구축과 아웃소싱 사업의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었고, 액센츄어 코리아도 글로벌의 사업 전략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 IT서비스에 진심이었던 액센츄어 코리아


2003년에 액센츄어 코리아는 시스템 개발·구축과 IT아웃소싱을 전담할 전문회사 ‘엑센츄어 테크놀로지솔루션스’를 출범시킵니다. 시스템통합 및 아웃소싱 서비스 역량을 확보해서 기존 경영전략·비즈니스 프로세스·정보기술 컨설팅에서부터 시스템구축과 아웃소싱을 아우르는 종합 서비스 체계를 갖추겠다는 복안이었습니다.


2006년에는 시스템 구축과 아웃소싱을 하는 IT서비스 업체의 인수전에도 뛰어듭니다. SC제일은행의 IT 자회사였던 제일FDS가 시장에 매출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일FDS를 인수하면 SC제일은행의 시스템 구축과 운영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매물이었습니다. 당시 EDS, KT, 액센츄어가 경쟁을 벌였고, 최종적으로는 KT가 인수에 성공합니다. KT가 지불한 인수 대금이 104억 원이었다고 하니, 매출액이 1,000억 원도 되지 않는 액센츄어 코리아로서는 꽤나 과감한 베팅이었습니다.


2007년에는 SI부문인 액센츄어테크놀로지솔루션(ATS) 인력을 80명으로 확충해서 금융·통신·보험 등의 서비스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 중인 차세대 시스템 시장에 본격 참여한다고 선언합니다. 전사자원관리(ERP)를 제외한 SI시장에서 적어도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2011년에는 부산에 코리아 딜리버리 센터(KDC)를 개설합니다. KDC는 '원격지 개발' 방식의 아웃소싱 센터로, 앞으로 액센츄어의 산업별 글로벌 노하우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스템 통합(SI) 및 애플리케이션 아웃소싱(AO) 서비스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통신 및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점차 다양한 산업군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 일부 또는 업무 전반에 걸쳐 위탁 수행)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섭니다.


IT서비스를 확대하려는 액센츄어 코리아의 노력을 결실을 맺었을까요? 쏟아부은 노력에 비해서 실적은 크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액센츄어 코리아가 잘못이라기보다는 한국 IT서비스 시장의 특수한 구조에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IT서비스 시장은 대기업 위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기업 IT자회사가 계열사의 일감을 대부분 독식하기 때문에 출신 성분이 다른 회사가 비집고 들어가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대기업이 아닌 금융사, 중견기업도 대부분 IT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어서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공략이 가능한 시장은 공공기관이나 중소기업밖에 없는데, 시장의 규모가 작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승자의 저주. KT차세대 프로젝트


IT서비스에서 가시적인 실적을 내지 못하던 액센츄어는 2010년 이후 KT에서 대규모 시스템 구축 사업을 연달아 따내면서 빛을 발하는 듯 보였습니다. 2010년에 수주한 ERP 구축 사업은 수백억 원 규모였고, 2011년에는 1000억대 규모의 차세대 프로젝트도 따낸 겁니다. 무선통신을 담당하던 KTF가 유선통신사인 KT에 합병되었는데, 양사가 각자 사용하던 영업시스템(BSS)과 운영관리시스템(OSS)을 하나로 통합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한 액센츄어 코리아는 500명 규모의 인력을 800명으로 늘리겠다며 의욕적으로 나섭니다. 한국의 컨설턴트만으로는 프로젝트 인력의 구성이 어려울 정도여서 세계 각국에 있는 액센츄어 컨설턴트들이 KT 프로젝트에 투입됩니다. 액센츄어뿐만 아니라 수많은 프리랜서 컨설턴트, 개발자들이 참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KT 프로젝트는 독이든 사과였습니다. 2014년에 이르러서 수년간 막대한 인력과 비용을 쏟아부어서 개발한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어렵기 마련입니다. 납기를 맞추지 못해서 지연되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시스템 오픈 이후에도 무수한 에러가 발생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가동을 해서 개선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양했습니다. 컨설팅사가 너무 이상적으로 설계를 해서 개발이 불가능했다는 비판, 발주사가 터무니없이 무리한 요구사항을 냈고 이마저도 계속 바뀌는 바람에 개발에 차질을 빚었다는 비판, 다국적 컨설턴트와 프리랜서가 뒤섞여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는 비판 등이 쏟아졌습니다. 이들의 일부 혹은 모두가 맞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슈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은 없습니다.


# 액센츄어 코리아의 매각


2016년 11월 14일, 메타넷이 액센츄어의 한국법인을 인수한다는 짤막한 기사가 하나 발표됩니다. 메타넷은 지분 양수도 계약을 통해 액센츄어 코리아의 사업부문과 자산 전체를 인수하고, 액센츄어가 수행하고 있는 국내 사업을 전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특이한 것은 액센츄어가 매각의 이유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잭 퍼시 액센츄어코리아 회장의 코멘트는 “이번 메타넷과의 계약 체결은 임직원, 고객, 사업을 위한 회사의 최선의 선택”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한국 고객들이 메타넷과 액센츄어의 글로벌 역량을 활용하여 디지털 혁신 시대에 직면할 수 있는 사업적 난관과 중요한 도전 과제를 잘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가 전부입니다. 기업인의 언어가 아니라 정치인의 언어처럼 실질적인 내용은 없고 모호한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액센츄어 코리아의 한국 철수에 대한 자료는 놀라울 만큼 없기에 이유를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수십 년간 한국 IT서비스 시장을 두들겨 왔던 액센츄어의 인내심이 KT 프로젝트의 실패로 한계에 달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사 차원에서 꽤나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소득이 없으니 지치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기왕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사업을 하던 회사를 접는 선택을 내린 것은 의아한 일이긴 합니다. 어쩌면 한국 사업 때문에 골치가 아픈 액센츄어가 뿌리칠 수 없는 거액의 금액을 메타넷이 베팅했을 수도 있겠지요. 혹시 이유를 아는 분이 계시다면 부디 저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 주시길...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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