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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Dec 15. 2023

넛 크래커를 극복한 경영 컨설팅사 - 커니

에이티 커니 또는 커니

# 컨설팅의 넛 크래커


'넛 크래커'는 호두를 양쪽에서 눌러서 껍질을 깨는 기구의 이름입니다. 경제 용어로 사용될 때는 선두 주자를 따라잡지 못하고 후발 주자에 따라 잡혀서 경쟁력을 잃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1980년대까지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후진국을 벗어나서 중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겪던 위기를 묘사할 때 사용했던 용어입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는 품질에서 밀리고, 중국, 인도 등의 개발도상국에는 가격에서 밀리며 중간에 끼여서 이도저도 못하는 답답한 위기 상황을 뜻합니다.


전략 컨설팅에서도 넛 크래커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맥킨지, BCG, 베인 등의 Top-tier 만큼의 브랜드 가치는 가지고 있지 못하고, 로컬 컨설팅사만큼의 가격 경쟁력은 확보하지 못한 중견 컨설팅사가 대부분 겪는 어려움입니다. 글로벌 기준 컨설턴트 규모 3000~5000명 정도의 컨설팅사들인 아더 디 리틀, 올리버 와이만, LEK컨설팅, 롤랜드버거, 모니터그룹 등에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재무 위기는 대부분 이 넛 크래커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의 Second Tier 전략 컨설팅사의 처지도 글로벌과 다르지 않습니다. 2020년에 올리버와이만 코리아가 철수했고, 2022년에는 LEK 컨설팅이 서울 사무소를 폐쇄했습니다. 롤랜드 버거, 아더 디 리틀 등의 다른 중견 컨설팅사도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Second Tier 중에서 한국 시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확보한 컨설팅사가 있으니, 이번 글에서 살펴볼 커니(Kearney)입니다.


구 에이티커니, 현 커니


# 1995년 원조 A.T.커니의 한국 진출


A.T.커니는 1930년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유서 깊은 컨설팅사입니다. 맥킨지 최초의 파트너였던 앤드류 토마스 커니가 맥킨지의 사망 이후에 맥킨지 시카고 오피스를 가지고 독립해서 차린 컨설팅사입니다. A.T.커니는 1995년과 2005년 사이 10여 년간 EDS로 인수된 공백기가 있습니다만 설립 이후 80여 년간 이름 있는 전략컨설팅사로 운영되었고, 현재도 40여 개 국에서 5,000여 명의 컨설턴트가 약 2조 원(USD 1.6B)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외국계 전략 컨설팅사가 1990년대에 한국에 진출한 것과 마찬가지로 A.T.커니도 1995년에 서울 사무소를 개설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컨설턴트 18명 규모로 시작해서 2002년에는 70여 명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사업 실적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6년의 컨설턴트 규모는 30명으로 줄어듭니다.


# 2006년 A.T.커니 코리아의 새 출발


A.T.커니 코리아는 2006년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합니다. 최영상씨가 A.T.커니 코리아의 지분을 인수한 겁니다.


PWC컨설팅의 역사를 다룰 때 등장한 바 있는 최영상씨는 2002년에 PWC컨설팅이 IBM으로 매각되면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는데 직접 메타넷 컨설팅을 설립해서 다시 컨설팅 업계 재편을 꿈꿉니다. 최영상씨를 따라서 PWC컨설팅을 나온 20여 명의 컨설턴트를 주축으로 설립된 메타넷 컨설팅이 단독으로 사업을 한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2004년에 딜로이트 컨설팅과 메타넷 컨설팅이 합병됩니다.


딜로이트 컨설팅과 메타넷 컨설팅의 세부 합병 조건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만 합병의 주도권은 최영상씨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메타넷 컨설팅을 운영하던 이재욱씨가 딜로이트 컨설팅의 대표이사를 맡고, 최영상씨는 딜로이트컨설팅 회장직에 오릅니다.


합병 2년 후인 2006년에 최영상씨는 또 다른 베팅을 합니다. A.T.커니 코리아의 지분을 사서 한국 시장에서의 영업권을 확보한 겁니다. 당시 150명 규모로 증가했던 딜로이트 컨설팅의 인력 대부분은 A.T.커니 코리아로 이동했고 리더십도 거의 그대로 유지됩니다. 딜로이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재욱씨가 대표이사, 최영상씨가 회장직을 맡습니다.


2009년에 A.T.커니 코리아는 사무실을 이전합니다.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 있던 사무실을 강남 아셈타워 39~40층으로 옮긴 겁니다. 이는 단순한 사무실 이전이 아닌 꽤나 큰 의미를 갖는 이벤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셈타워 39~40층은 최영상씨가 한국 1위 컨설팅사로 일군 PWC컨설팅의 사무실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영상씨 입장에서는 PWC컨설팅을 뺏어간 IBM BCS를 밀어내고 빼앗겼던 사무실을 되찾은 셈이니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싶습니다.


# 이제는 커니


2020년에 이뤄진 글로벌 리브랜딩으로 A.T.커니의 이름은 커니(Kearney)로 변경되었습니다. 커니 코리아는 그동안 착실한 성장을 거듭해서 현재는 컨설턴트 400여 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Second-tier 컨설팅사 중에서는 가장 성공적으로 한국 시장에 안착한 케이스입니다. 아더 디 리틀, 롤랜드버거 등 유사한 수준의 브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이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결은 무엇일까요? 쉽게 들 수 있는 첫번째 요인은 탄탄한 리더십입니다. PWC컨설팅을 키워낸 최영상씨는 컨설팅 사업의 성공 방정식을 완성한 것 같습니다. 도전적인 타겟을 세우고 매주마다 실적을 점검하며 파트너들을 몰아붙이는 방식에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효과적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커니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대표이사도 탄탄했습니다. 새출발을 한 커니의 초대 대표이사였던 이재욱씨는 메타넷 컨설팅과 딜로이트 컨설팅의 대표이사를 지낸바 있고 두번째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성렬씨도 IBM GBS의 대표이사를 지냈습니다. 이미 컨설팅 사업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검증된 경영진이 투입된 셈입니다.


두번째 요인으로는 전략 컨설팅사로서는 다소 발빠르게 운영과 IT로 컨설팅 영역을 넓힌 점입니다. 순수 전략에서는 MBB를 능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제약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만 구상에만 그치지 않고 실행해서 실적을 냈다는 점이 여타 중견 전략 컨설팅사와 다른 점입니다.


비교적 괜찮은 브랜드로 포장된 운영/IT컨설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습니다. MBB에 맡기자니 비용이 부담되고 로컬 컨설팅에 맡기자니 믿음이 가지 않는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체제의 느낌이랄까요? 전략 컨설팅에 비해서 운영/IT컨설팅의 시장 규모가 크다는 것도 성장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세번째 요인으로는 컨설턴트의 분골쇄신이 아닐까 합니다. 커니의 업무 강도는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성과급도 이에 비례해서 꽤나 후하게 주는 편이라고 합니다. MBB나 또다른 커리어로 전환하려는 상당수의 컨설턴트들은 특히 열심히 일을 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오늘의 커니를 만든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칭찬만 늘어놓은 것 같은데 앞서 말씀드린 세가지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피눈물도 없는 숨막히는 관리 체계, 전략도 IT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 농업적 근면성을 요구하는 회사 문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는 컨설팅사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중견 컨설팅사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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