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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Dec 19. 2023

한국에서 사라진 경영 컨설팅 회사 -캡제미니 언스트앤영

캡 제미니 언스트앤 영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아마도 몇 없으실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진 컨설팅사입니다. 글로벌하게 브랜드를 유지한 기간도 4년밖에 되지 않으니 국내에서의 인지도 역시 높을 리가 없습니다. 컨설팅에서의 인수 합병이 성공하기 쉽지 않으며, 글로벌 컨설팅사라 할지라도 한국이 결코 만만하지 않은 시장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사례 이외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기록 차원에서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추억의 로고, 캡 제미니 언스트 앤드 영


# 유럽 최대의 IT서비스 회사, 캡 제미니

먼저 캡 제미니가 어떤 회사인지 소개하려 합니다. 캡 제미니는 프랑스에 본사가 있는 유럽 최대의 IT서비스 회사입니다. 현재 50여 개 국가에 진출해 있으며 30만 명이 넘는 직원이 약 30조 원 (22B 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1967년에 설립되었으니 출범한 지 50년이 훌쩍 넘은 유서 깊은 회사입니다.


설립 당시의 이름은 캡 제미니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제티(Sogeti, Société pour la Gestion de l'Entreprise et le Traitement de l'Information)라는 이름의 회사로 출범했습니다. 불어 사명을 우리말로 옮기면 '기업 및 정보 처리 관리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소제티는 1974년에 미국 회사인 제미니 컴퓨터 시스템즈(Gemini Computer Systems)를 인수했고, 1975년에는 CAP(Centre d'Analyse et de Programmation)를 인수 한 이후에 캡 제미니 소제티(CAP Gemini Sogeti)로 사명을 바꿉니다. 1996년에 사명을 더욱 단순하게 캡 제미니로 바꿉니다.


# 캡 제미니의 한국 진출

캡 제미니는 1997년에 한국 시장에 진출합니다. 직접 진출은 아니었으며 삼정회계법인과 제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998년에 삼정은 캡 제미니의 Y2k문제 솔루션인 「트랜스 밀레니엄 서비스」를 한국 시장에 공급합니다. 2000년을 앞둔 시점에 제기된 연도 변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으로 코볼, 어셈블러, 포트란 등으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영향도를 분석하고 변환/테스트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이었습니다. 이 외에 한국에서의 캡 제미니의 활동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2000년에 언스트 앤드 영이 컨설팅 부문을 떼어내서 110억 달러를 받고 캡 제미니에 넘깁니다. 당시 엔론 회계부정으로 뭇매를 맡던 대형 회계법인들은 컨설팅을 분사시키거나 매각하고 있었고, 언스트 앤드 영도 매각을 선택한 겁니다. 계약 조건이 4년간의 '언스트앤드영' 브랜드 사용권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캡 제미니는 사명을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으로 변경합니다.


당시 한국에서 언스트 앤드 영과 제휴한 회계법인은 영화였습니다. 영화회계법인은 글로벌 언스트 앤드 영의 컨설팅 매각에 맞춰서 별도로 운영하던 컨설팅사인 EYMC를 캡 제미니에 넘겨서 한국에서도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의 브랜드가 론칭합니다.


# IMF와 그 이후의 한국 컨설팅 시장

한국에서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이 운영된 기간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의 2년여에 불과합니다. 그 기간 동안 캡 제미니는 눈에 띄는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는 캡 제미니가 운영을 잘못했다기보다는 당시의 컨설팅 시장의 사정이 매우 안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1997년에 발생한 IMF의 충격을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2001년 8월에 IMF 구제금융을 졸업했지만 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IMF 시기에는 밀려드는 일감에 엄청난 호황을 누렸던 컨설팅사들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IMF 시기에 외국계 컨설팅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일부입니다만 그나마 자료가 있는 금융권의 컨설팅 지출 내역으로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당시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환 위기 이후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지불한 용역비는 모두 2천1백33억 5백만 원이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4백억 원 이상을 들여 외국 회사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는데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외국계 컨설팅 회사는 매킨지로 23건을 컨설팅해 4백50여 억 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금융권 외에도 수많은 대기업도 컨설팅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IMF 당시 외국계 컨설팅사는 단기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입니다. IMF 특수가 끝난 2000년대 들어서며 외국계 컨설팅사는 일거리 기근에 시달립니다. 하필이면 컨설팅 호황이 끝난 시점에 한국 시장에 등장한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은 불운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처럼 좋은 시절을 만끽해보지도 못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의 국민-주택은행 IT통합 컨설팅

캡 제미니가 국내에서 한 프로젝트 중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은 국민-주택은행 IT통합 컨설팅이었습니다. 2001년 11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해서 현재의 국민은행이 탄생했는데 합병 이후에 통합 은행이 누구의 IT시스템을 사용할지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두 은행은 서로 자신의 IT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판단하기 위한 IT컨설팅 프로젝트를 캡 제미니가 수주합니다. 알려진 프로젝트 규모는 20억 원대로 상당히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캡 제미니는 약 4개월간의 검토 작업을 거쳐 통합 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으로 옛 주택은행 시스템을 선정합니다. 하지만 컨설팅의 결과에 불만을 품은 옛 국민은행 IT의 반발로 논란은 오히려 더욱 커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옛 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은 합병이 결정되기 바로 전인 2001년 초 가동에 들어간 차세대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주택은행의 시스템은 1990년대 중후반에 개발되어 상대적으로 노후화됐다고 평가받았기에 이 시스템이 통합은행의 전산시스템으로 결정되자 정치적 결정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던 겁니다.


컨설팅 결과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던 2002년 초에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은 한국 지사를 철수합니다. 여느 컨설팅사와 마찬가지로 철수의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매출 부진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 다시 캡 제미니로

2004년이 되어 4년 시한의 '언스트앤드영' 브랜드 사용권이 만료되자 캡 제미니 언스트앤드영은 사명을 다시 캡 제미니로 바꿉니다. 이와 동시에 언스트앤드영의 컨설팅 시장에서의 비경쟁 조항이 만료되었고, 언스트앤드영은 다시 컨설팅 시장으로 돌아옵니다. 


캡 제미니는 여전히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3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선두 IT서비스 회사입니다. 다만 2002년 철수 이후에는 다시 한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기에 연식이 오래된 컨설턴트만 기억하는 추억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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