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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Dec 20. 2023

한국에서 사라진 경영 컨설팅 회사 -오픈타이드

삼성그룹을 대표하던 경영 컨설팅 회사

2000년에 설립된 오픈타이드는 삼성계열사 중심의 컨설팅 사업을 하다가 2015년에 해산했습니다. 오픈타이드의 컨설팅 서비스 부문은 에스코어로 흡수 합병되어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픈타이드 사례를 통해서 대기업 계열의 컨설팅사가 살아남기 쉽지 않은 이유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오픈타이드


# 삼성의 흑역사, e삼성의 잔재


오픈타이드의 시작은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재용씨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다가 실패한 프로젝트인 e삼성의 일환이었습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한 2000년은 인터넷붐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을 무기로 하는 다양한 벤처 기업들이 등장했고, 상장에 성공한 벤처 기업들의 성공 신화가 지면을 장식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벤처 창업을 적극 장려하며 힘을 실어줬고, 1997년에 발생한 IMF 시기에 직장을 뛰쳐나온 우수한 인재들이 성공을 꿈꾸며 벤처 창업에 뛰어듭니다. 네이버, 다음, 엔씨소프트, 휴맥스 등의 스타 기업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가장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던 화려한 시기였습니다.


아직은 삼성의 후계자로 추대되기 전의 이재용씨도 인터넷붐에서 기회를 봤던 것 같습니다. 2000년 5월,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인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이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출범합니다. 두 회사의 자본금은 400억 원이었는데 공식적으로 삼성에서 아무런 직책도 맡지 않던 서른두 살의 하버드대학교 유학생 이재용씨가 돈을 댔습니다. 이재용씨는 두 회사가 만들어질 때 출자자로 나서 e삼성 지분 60%, e삼성인터내셔널 지분 55%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습니다. 인터넷 세상의 정복을 꿈꾸던 e삼성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2000년 6월까지 6개 회사가 새로 설립되었고, 7월에는 그보다 많은 8개 회사가 출범합니다. 단 두 달만에 14개 회사가 출범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오픈타이드였습니다. 오픈타이드의 사업모델은 인터넷붐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되던 웹에이전시입니다. 웹에이전시의 역할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홈페이지 제작입니다. 너도나도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고, 지금처럼 전문가가 많지 않기에 웹에이전시는 최첨단의 기술 기업으로 인정받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e삼성 프로젝트는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에 실패로 돌아가며 이재용 씨로서는 숨기고 싶은 흑역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재용씨가 직접 출자하거나 출자사가 투자했던 인터넷 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했는데 거의 2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습니다. 결국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이 나서서 e삼성 프로젝트의 부실기업들을 떠안으며 사태는 일단락되지만, 그 후에도 부당지원, 편법승계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며 한동안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재용씨가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 오픈타이드의 사업모델 피벗


2001년 오픈타이드의 지분을 삼성SDS가 인수한 이후, 오픈타이드는 사업모델을 웹에이전시에서 컨설팅으로 변경합니다. 시스템 통합 사업에서 벗어나서 사업 다각화를 꿈꾸던 삼성SDS가 눈여겨보던 아이템 중의 하나가 웹에이전시였기 때문에 교통정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기사는 사업모델 변경의 이유로 삼성SDS가 약한 분야인 컨설팅 사업 강화의 일환으로 보도합니다.  


2002년 들어서 오픈타이드는 컨설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 확보에 나섭니다. 원래 60여 명 규모에 불과했지만 캡 제미니 언스트앤영 출신의 컨설턴트 20여 명, Big 4 출신의 컨설턴트 20여 명을 영입하며 100여 명으로 조직을 확대합니다. 이와 함께 삼성 계열사 중심으로 컨설팅 사업을 전개해 나갑니다. 삼성캐피털의 기업프로세스혁신(BPR) 컨설팅, 고객관계관리(CRM) 프로젝트, 삼성카드의 웹 사이트 연계·프로모션 컨설팅 프로젝트, 삼성전자의 인터넷통합 전략 컨설팅, 삼성전기 IT컨설팅 프로젝트 등을  등을 수행하며 레퍼런스를 쌓아갑니다.


이후에도 오픈타이드는 삼성 계열사에서 나오는 컨설팅 프로젝트에 힘입어서 성장해 나갑니다. 매출액은 2007년 528억 원, 2008년 871억 원, 2009년 865억 원, 2010년 821억 원을 기록했는데 삼성계열사의 매출 비중이 87~95%로 절대적이었습니다. 2011년 들어서며 매출액은 1000억 원을 돌파하는데 이 역시 삼성 그룹의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삼성은  ‘삼성그룹 일류화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삼성은 “삼성전자의 성공을 다른 계열사로 확산시키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사적 자원관리(G-ERP) 시스템을 다른 계열사들로 확산시키고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삼성 미래전략실이 주관했고, 삼성SDS가 구축을, 오픈타이드가 컨설팅을 맡았습니다. 삼성정밀화학·삼성코닝정밀소재·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우선 접목하고 단계적으로 금융 계열사로 확대해 나가는 초대형 사업이었습니다.


삼성그룹 일류화 프로젝트 덕분에 2008~2010년 800억 원대에 머물던 오픈타이드 매출은 2011년 1,457억 원, 2012년 2,014억 원으로 급등합니다. 2010년 이전에 700여 명선이던 직원수도 2011년 이후에는 1,000명을 넘으며 초대형 컨설팅사가 탄생하는 듯했습니다.


# 오픈타이드의 해산


2015년에 오픈타이드는 두 개로 쪼개져서 해산됩니다. 먼저 오픈타이드는 회사를 단순인적분할해서, 컨설팅 서비스 부문과 IT서비스 부문으로 나눕니다. 컨설팅 서비스 부문은 코어브릿지컨설팅을 설립해서 이관하고, 코어브릿지컨설팅은 다시 에스코어라는 또 다른 삼성SDS의 자회사에 합병됩니다. IT서비스 부문도 미라콤아이앤씨라는 삼성SDS의 자회사로 합병되면서 오픈타이드는 1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자취를 감춥니다.


오픈타이드의 컨설팅 부문이 에스코어로 이관되었기 때문에 삼성그룹 컨설팅회사의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닙니다. 1,000억 원 정도의 에스코어 매출 중 컨설팅이 절반 가량인 500억 원 정도를 차지하니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한창때인 2012년 2,000억 원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사분의 일로 대폭 줄어든 모양새입니다. 한때 가졌던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컨설팅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대기업 계열 컨설팅사의 한계


개인적으로 대기업 계열 컨설팅사는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열사의 컨설팅 물량이 양날의 검입니다. 초기에는 계열사가 밀어주는 물량 덕문에 어느 정도 규모까지는 순탄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열사의 컨설팅 수요 이상으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계열사가 아닌 오픈 마켓에서 컨설팅을 수주해야 매출을 키울 수 있습니다만 그룹사끼리 경쟁하는 한국 시장에서 경쟁그룹사의 컨설팅을 받을 회사가 있을 리 없습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싸우고 있는데, 삼성그룹 계열 컨설팅사가 LG전자의 사업전략을 수립한다고 상상해 보시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이해되실 겁니다.


계열사 입장에서도 같은 계열 컨설팅사만 사용하는 것이 탐탁지 않은 일입니다. 컨설팅을 받는 입장에서는 여러 고객사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컨설턴트를 선호하기 마련인데, 오픈 마켓에서 경쟁하지 못하는 계열사 컨설턴트가 이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외부의 컨설턴트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지만 단기적인 처방일 뿐입니다. 그룹이라는 테두리를 무시할 수 없는 대기업 계열 컨설팅사가 제시할 수 있는 인센티브, 연봉은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우수한 컨설턴트를 영입하기 어렵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이 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3년 | e비즈니스 온 디맨드를 내세운 『I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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