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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Feb 14. 2024

미 의회에 소환된 맥킨지, BCG 수장의 딜레마

기밀유지라는 사익과 국가안보라는 국익의 충돌

#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맥킨지와 BCG의 수장


며칠 전인 2월 6일에 열린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 컨설팅사와 투자은행의 수장이 불려 나갔습니다. 컨설팅사 대표로 맥킨지의 밥 스턴펠스, BCG의 리치 레서, 테네오의 폴 커리, 투자은행 클레인 대표는 청문회에 나란히 앉아서 상원의원들의 날 선 질문에 답해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 가까스로 연임에 성공한 맥킨지 대표인 밥 스턴펠스로서는 참석한 점을 다행으로 생각할지 궁금하네요. 아무튼 미국 의회가 이들을 소환한 이유는 미국 의회가 요청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PIF)에 대한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은 점을 추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해서 선서하는 맥킨지, BCG 대표


현재 미국 의회는 미국프로골프투어(PGA)와 리브(LIV) 골프 간의 합병에 불법적인 사안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발단은 작년 6월에 깜짝 발표된 PGA와 LIV의 통합 선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 PGA투어는 가장 권위 있는 골프 대회입니다. 그런데 PGA의 대항마로 LIV가 출범합니다. LIV를 창설한 배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로 막대한 오일머니를 풀어서 PGA 소속 골프선수를 대거 끌어들입니다. 일부 스타 골프 선수들이 막대한 상금을 약속하는 LIV로 이탈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PGA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LIV에 참여하는 골프 선수는 PGA투어 참가를 금지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세계 골프계는 전통의 PGA를 옹호하는 세력과 오일머니로 막대한 금액을 베팅하는 LIV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갈리며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세계 골프계가 반으로 갈려서 벌이던 골프 전쟁은 PGA와 LIV가 전격적으로 통합을 발표하면서 마무리되는가 싶었습니다만 합병의 배후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가 있기에 사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미국 법무부는 양대 골프 투어의 합병에 독과점 이슈가 있는지 수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의회도 합병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겠다고 나섰고, 합병에 관여했던 컨설팅사와 투자은행이 자료 제출에 불성실하다는 혐의로 대표들을 청문회에 소환한 겁니다.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PGA투어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낱 민간 골프대회의 합병에 미국 의회가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PIF)가 골프 대회를 유치하려는 이유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자금 7천억 달러(약 910조 원)로 운용되는 펀드입니다.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오일머니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석유가 고갈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요? 변변한 기간산업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한순간에 빈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당장 석유가 고갈되지 않더라도 전세계가 석유 사용을 규제한다면 국가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장차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이의 일환이 스포츠 산업 육성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랍에미레이트는 2008년에 세계적인 명문 축구 구단인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했고, 카타르는 2011년에 파리 생세르망 구단을 인수했습니다. 사우디 국영 에너지 기업 아람코는 포뮬러 원에, 카타르항공은 NBA, 에미레이트항공은 US 오픈에 투자했고, 프로복싱 WBC 헤비급 챔피언 타이슨 퓨리와 종합격투기 스타 프란시스 은가누의 세기의 대결은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링에서 펼쳐졌습니다. 지난 2022년 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11월에 개최되었는데 이는 주최국인 카타르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글로벌 스포츠 시장에서 오일머니는 대세이고 그 중심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습니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미국


하지만 스포츠 산업에 투자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가 산업 육성에만 있지 않으며 정치적인 이유가 더욱 크다고 의심합니다. 일명 '스포츠 워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이미지가 좋은 스포츠 산업과 연결시켜서 인권 탄압국이라는 부정적인 평판을 세탁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PGA를 합병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빈살만 왕세자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 자말 캬슈끄지 살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긍정적인 이미지의 스포츠 마케팅으로 희석하려 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 발자국 더 나간다면 미국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 스포츠 시장을 지배하던 미국의 패권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가 미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힘이 단순히 경제력에만 있지 않고 스포츠, 영화, 음악 등 소프트파워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포츠 투자가 산업적인 이해를 넘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시도로 생각합니다. 미국을 위협하던 과거의 일본, 현재의 중국의 다음이 사우디아라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미국의 입지가 과거처럼 절대적이었다면 용인했을 법도 합니다만 여기저기서 치이고 있는 미국이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국가안보와 기밀유지의 기로에 선 컨설팅사


그래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 의회의 조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투자가 단지 수익 확보의 목적인지, 지배력 확보 의도인지를 판별하는데 집중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재무적 투자자'인지, '전략적 투자자'인지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기에 합병에 관여한 컨설팅사에 다양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와 비밀유지 계약을 맺은 컨설팅사로서는 난감한 입장입니다.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 BCG 대표인 리치 레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가 BCG의 정보 공개가 '해당 정보를 공개하거나 유포하는 경우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포함해 형사 처벌을 부과하는' 사우디 법률을 위반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혔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의회의 요청에 따라서 관련 정보를 공개하면 형사상, 금전적 처벌을 받을 위험이 있기에 따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이 같은 컨설팅사의 변명을 들은 미국 상원의원들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컨설팅사가 편을 선택한 것 같은데, 미국이 아니라 사우리아라비아를 선택했다"며 미국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에 충성하는 컨설팅사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익을 따라서 정보를 공개하자니 사우디아라비아의 처벌이 두렵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뜻대로 정보를 숨기자니 자칫 반역자로 몰릴 수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 모니터 그룹을 날려버린 카다피 스캔들이 재현될까?


제가 이 건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 이유는 과거 모니터 그룹의 사례가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도 다루었지만 한때 MBB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잘 나가던 모니터 그룹은 2012년에 파산합니다. 파산의 이유는 재무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상당 부분 리비아 독재자인 카다피를 위해서 일했다는 불명예에 기인합니다. 모니터그룹은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 리비아 정부를 위한 컨설팅을 수행했는데, 해당 업무가 독재자 카다피의 이미지 세탁에 활용되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카다피 스캔들의 이미지 실추를 극복하지 못한 모니터그룹은 파산했고 결국 다른 컨설팅사에 매각됩니다.


리비아의 카다피 사태만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PGA 인수가 파급력이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에 컨설팅을 제공한 맥킨지와 BCG가 모니터 그룹처럼 몰락할 여지는 극히 적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외국 정부를 위한 컨설팅이라는 점에서 양상은 매우 유사합니다. 오피오이드 사태에도 연루된 맥킨지로서는 특히나 곤란한 입장일 것 같습니다. 미국 의회가 어떤 판단을 하고 그로 인해서 맥킨지와 BCG가 어떤 처분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이 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983년 | 경영대학원의 전진,『모니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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