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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Jan 23. 2023

스페인 대중교통 소극적 관찰기

얼마 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첫날 오랜 시간을 박물관 안에서 보냈다.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 때, 앞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지. 나는 계단으로만 다녔는데 어디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 그때부터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고전적인 건물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계단 동선과 동떨어지지 않은 적절한 위치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박물관이니 신경을 썼겠지. 그러니까 장애인 관람객도 많이 보이겠지.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다음날도 광장에서도 거리에서도 휠체어 탄 사람을 하루 최소 10명 이상 목격했다.


한국은 도로 깔기의 장인이다. 평평한 도로를 잘도 만들어 낸다. 보도블록도 연말마다 보수공사를 얼마나 열심히 한다고. 그에 비해 파리나 바르셀로나의 돌로 만들어진 바닥은 꽤 울퉁불퉁하다. 그럼에도 한국보다 더 많은 장애인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유럽의 복지 정책이나 규정을 탐구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이동 제약이 적은 내 경험만으로 유럽의 배리어프리 환경이 무조건 좋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하지만 다소 소극적인 관찰로도 알아차릴 수 있었던 한국과 유럽의 차이를 기록한다.



무엇을 전제하고 있나


휠체어를 탄 사람 혼자 그려진 장애인 마크는 많이 볼 수 있다. 보통 장애인 마크는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곳, 혹은 장애인 우선권이 부여된 곳에 붙으며, 마크가 붙은 곳은 대게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근데 어쩌면 이 마크는, 대부분의 시설이 비장애인에 맞춰져 있음을 전제로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불편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장애인 마크가 필요한 공간은 줄어들지 않을까.


스페인 지하철에서 휠체어 탄 사람과 휠체어를 잡고 있는 두 사람이 그려진 사인이 있었다. 해당 역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다. 별 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열차 탑승 시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듯. 이 사인은 사람들에게 알린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으면 탑승 시 도움을 주라고. 이 마크가 있으므로써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다. 누군가 여기서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고.


이 마크는 '(장애인 당사자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느끼는지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환경이 배리어프리하나, 이곳에서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함'을 전제로 했겠지. '약간의' 도움이다. 지하 3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이라면 출구에 저 마크가 함부로 붙을 수 없다. 장애인 당사자가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열차를 타야 하는데 나를 들어 지하 3층까지 옮겨주실 수 있나요?''라고 쉽게 물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열차와 승강장 사이 10cm 정도는 공공의 도움으로 메꿔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우리 도시에서 장애인이 이동하기 불편한 곳은 이 정도뿐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감 있는 건가. 내가 모든 시설물을 배리어프리 관점에서 파악하진 못했지만, 한국보다 스페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기 편할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거리에 휠체어를 탄 사람, 유아차를 끄는 사람이 한국보다 훨씬 많았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 마크가 그려진 사인이 모든 걸 설명해 주지 않는다.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몇 cm의 간극이건 시민의식보다 실질적인 정책과 시설로 메꾸는 게 바람직하다. 도움 사인이 있음으로써 어떤 장애인은 더 편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장애인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단정 지어지는 게 불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표시는 인상적이다. 문제가 있음을 운영 주체에서 인식하고 있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적어도 장애인 당사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돌리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없는 존재인 양 배척하지 않고 있다. 인식해야 다음을 논할 수 있다.



무엇이 기본값인가


한국 땅 서울에서 6년을 살았다. 단 한 번도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를 타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은 이미 꽤 많다. 한국에서 버스 탑승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눠진다. 1) 저상 버스 비율이 낮다. 2) (시설 노후화든 운전기사의 사용법 미숙 지든 간에) 탑승 시 슬로프 연결에 어려움이 있다. 3) 탑승후 좌석 고정에 어려움이 있다.

내가 스페인의 1) 저상 버스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고, 2) 탑승 슬로프 작동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운전기사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3) 버스 내부 좌석의 형태에 대해서만 떠들어 본다.


한국 저상 버스의 휠체어석에는 좌석이 있다. 이 좌석은 뒷문 근처에 마련돼 있다. 비장애인이 언제나 앉을 수 있는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에 탑승한다면 좌석을 수동으로 접어 벽으로 밀착시켜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석을 접는 방법을 모를 것이고, 한 번도 접어본 적이 없음에 내 통장 장고를 건다. 휠체어석에 위치한 좌석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다들 당황할 것이다. 나도 유튜브에서 본 게 전부고 실제로 조작해 본 바 없다.


스페인의 버스는 좌판이 접혀 있는 게 디폴트다. 버스 내부 고정 좌석이 없을 때 휠체어 석의 좌판을 내려앉으면 된다. 좌판은 엉덩이로 누를 수 있다. 엉덩이를 떼면 좌판은 다시 접혀 올라간다. 좌석을 접고 펴는 방식을 굳이 숙지하지 않아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엄청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좌석도 아니다. 한국이 이걸 못 만들리 없다. 한국은 기술보다 관점이 부족한 걸지도. 우리나라 저상 버스에서 장애인을 마주칠 일이 적은 건 비장애인인 다수가, 먼저, 익숙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부터 생각하며 버스를 설계했기 때문이 아닐까.


바닥에 구역을 명확히 표시해 주는 장애인 마크가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그 주변으로 안전바와 보호 쿠션이 있는데 이건 장애인뿐 아니라 좌석이 없는 공간에서 서서 탑승하는 이용자를 보호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버튼도 매우 직관적이다. 버튼이 자세히 찍히지 않았는데 하나는 휠체어 아이콘이, 하나는 유아차 아이콘이 있다. 아마도 하차할 때 기사가 탑승자 유형에 맞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 같다.


펼친 의자와 접힌 의자, 간단한 차이다. 이 간단함 속에 유럽이 고민해 온 세월이 녹아있다.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굉장히 좋은 블로그 글을 하나 찾았다. 유럽의 저상버스 vs 한국의 저상버스. 유럽과 한국의 저상 버스 품질이 다른 이유, 한국에서 저상 버스 시설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이유, 기술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 등을 설명하고 있다.


변화를 위해 비용은 물론이고 한국의 인구학적 통계, 출퇴근 문화까지도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요건의 충족을 위해 누군가의 권리가 희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답을 찾자. 후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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