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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율 Mar 09. 2024

뮤지컬 <멤피스> 한국 뮤지컬에서 인종과 장애의 구현

차별과 갈등이 만연하던 1950년대 미국 남부 테네시주 멤피스. '흑인 음악'으로 여겨진 로큰롤에 심취해 있던 백인 청년 휴이는 어느 날 흑인 구역인 빌스트리트에 있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클럽 주인인 델레이의 여동생, 펠리샤의 노래를 듣고 그녀와 그들의 노래를 널리 알리겠다고 결심한다.
뮤지컬 <멤피스> 시놉시스


금발과 흑발 가발


작년에 뮤지컬<멤피스>를 관람했다. 뮤지컬의 주된 테마는 흑백 인종 간 대립이다. 하지만 모든 배우가 아시아인인 한국 무대에서,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분장만으로 표현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느껴졌다. 굵은 펌의 금발 가발과 힘 있는 펌의 흑발 가발로 묘사되는 연출에 만족해야 했던 현실.


한국 뮤지컬 대부분은 해외 작품이 원작이다. 한국 배우가 휴이, 펠리샤, 레베카, 크리스틴과 같은 이름을 가진 외국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국인이 외국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순간 '서프라이즈' 예능 마냥 취급받겠지만, 뮤지컬에서는 흔한 일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멤피스>에서의 배우들
한국 뮤지컬<멤피스> 초연에서의 배우들

뮤지컬은 예술이자 소통의 수단이다. 현지 언어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무대 위 순간적인 마법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이 캐릭터의 당사자성 구현에 대한 책임감을 덜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피부색이 (또는 장애 특성이) 실제 캐릭터와 동일하고 노래와 연기까지 탁월한데 한국어 구사가 가능하며 한국에서 2개월 이상의 장기 체류가 가능한 배우 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뮤지컬 예술에서 적절한 캐릭터 구현은 모두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시작이다. 인종과 장애를 고려한 캐스팅은 예술계 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인종 다양성의 한계 안에서, 글로벌 콘텐츠를 자국화하며 당사자성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블랙페이스와 화이트워싱


뮤지컬 <멤피스>에서는 인종차별적인 요소인 ‘블랙페이스’ 논란을 의식하여, 피부색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역사적으로 ‘블랙페이스’는 백인이 흑인을 희화화하기 위해 피부를 검게 칠하고 과장된 분장을 했던 관행으로, 흑인에 대한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을 강화하며 인종적 모욕을 주었던 행위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였고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흑인 분장은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과 차별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행위로, 특정 인종에 대한 불쾌감과 모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한국에서도 확산되고 있으며,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구권에서는 블랙페이스 논란과 더불어 화이트 워싱 또한 많은 비판을 받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인종적 다양성을 반영하지 않고 소수 민족이나 인종의 역할을 백인 배우들로 캐스팅하는 관행을 의미한다. 일례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베트남계 캐릭터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사이공>의 한장면


반대로 유색인종 배우들이 백인의 역할을 맡는 경우에 대한 논란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화이트 워싱과는 다른 인식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백인이 우세한 위치에서 소수 인종의 기회를 제한했다는 이유로 화이트 워싱이 비판받는 반면, 유색인종 배우가 백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다양성과 동등한 기회 제공이라는 긍정적인 변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대등한 기회의 제공과 사회적 포용성을 증진하려는 긍정적인 변화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아시아인 그리고 한국인 역시 소수 인종이기 때문에, 세상에 '코리안 워싱', '아시안 워싱'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뮤지컬 <멤피스>는 블랙페이스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과한 분장을 지양했을 것이다. 아마도 제작진의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크리핑 업


한국 뮤지컬의 장애인 캐릭터는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뮤지컬 <바넘, 위대한 쇼맨>에서 김유남 배우가 톰 섬 장군을 연기한 사례가 있다. 이는 무대 위에서 포용을 실현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이밖에 장애를 가진 배우로는 길별은 배우, 임세은 배우, 정유미 배우 등이 있다. (작년 뮤지컬 <합체> 재연에 참여한 김유남 배우를 제외하고 다른 배우들의 최근 기사는 8-10년 전이다. 장애인 배우를 조명한 기사는 대부분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표현하며 '배우'로서의 연기관은 잘 다루지 않는다. 한국 미디어가 장애인 배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느껴진다.) 이정도 사례는 극소수로 대부분의 뮤지컬 작품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


뮤지컬 <합체>의 한장면


장애인 캐릭터에 비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을 '크리핑 업' 현상이라고 한다. 최근 몇 개의 드라마에서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며 관련 논의가 대두된 적이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배우가 발달장애인 캐릭터 영희를 연기했고, 그리고 같은 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비장애인인 박은빈 배우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 우영우를 연기했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인물과 당사자성이 일치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사량이 많고 집중을 요구하는 촬영 현장의 특성상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촬영 현장의 소음이나 빛, 장비의 다양한 자극이 자폐스펙트럼의 특성상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당사자성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드라마나 영화의 연기는 실제 직업이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 능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변호사 캐릭터에 실제 변호사를 캐스팅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 배경의 백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영어를 쓰진 않는 것처럼, 어디까지 당사자성을 반영해야 할지 경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뮤지컬 작품 속 당사자성 구현을 위한 숙제


서구권에서는 '크리핑 업' 또는 ‘화이트워싱’ 현상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더 높기에,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뮤지컬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이유로 그리고 장애인이 다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양성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다. 뮤지컬 산업에서 대표성 문제는 단순히 배우 캐스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스테레오타입을 반영한 분장을 넘어서, 스토리텔링과 무대 연출까지 다방면으로의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지 모른다.


웨스트엔드 뮤지컬 <The little big things>의 한장면


그럼에도 당사자성 일치를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배우 풀 부족을 논하기 전에 잠재력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할 수도 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주제로한 극에서 흑인 배우 다수를 캐스팅하기 어려울지라도 외모에 대한 편견을 경험한 배우를 캐스팅할 방법은 없는지,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의 연기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들 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제대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


진정한 예술의 가치는 경계를 넘어서는 데 있다. 다양한 배경과 캐릭터가 공존하는 무대를 만나고 싶다. 우리는 그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법을 찾아야 한다.





참고 자료

Changing Scenes: The Rise and Success of Diversity on Broadway

White Actors and Directors Still Dominate Broadway Stages, Report Finds

Musical Storytelling

‘A Chorus Line’ celebrates diversity through musical storytelling

Diversity in the Traditional Musical

‘The Little Big Things’ – a West End musical that promises a cultural change in disability representation

Thriving Together in Inclusive Theater

‘The Greatest Showman’ Fails Disabled Audiences by Masking P.T. Barnum’s Monstrous Past

The Greatest Showman and the Able-Bodied Savior

캐릭터도, 성별도 없다…요즘 연극계의 ‘OO프리’ 캐스팅

장애를 딛고 '배우'로 날아오르다 - 배우 길별은

“휠체어 탄 배우? 동정 받기보다 감동 주고파”

뮤지컬로 ‘제2의 인생’ 꿈꾸는 장애인 배우들

발달장애인, 뮤지컬로 세상을 날아오르다

왜소증 배우 김유남의 도전, 대극장 객석을 당당히 홀리다

[사람들] 청각장애 뮤지컬배우 이재란씨

발달장애인이 뮤지컬을 보러갔다 "그런데?"

‘우블’ 노희경 고민이 낳은 ‘장애인 배우의 장애인 연기’ 뒷얘기

[D:이슈] 조연에서 주연으로…장애인 배우가 장애를 연기하다

[내꿈내일기자단 9기] 미디어 속 비장애인의 장애인 연기,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이건 내 얘기 아냐" 실제 자폐인들이 본 '우영우'

'크리핑 업'은 그만...장애인 역할은 장애인 배우가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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