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SUMMER SONIC OSAKA
“너무 힘들지 않겠나”, “근데 조금이라도 젊을 때 가봐야지” 섬머소닉을 예매하면서 언니랑 한 대화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메인 스테이지로 걸어가던 길,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우리 앞을 걷고 있다. 관계자인가? 왕년에 밴드 연주자였나? 중년 남성이 이 페스티벌에 온 데는 보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락페스티벌에 평범한 중장년은 오지 않을 거라고 짐작한다. 웬걸, 본격 페스티벌 현장에 입장한 후에도 ‘젊은이’가 아닌 관객은 생각보다 많았다. 중학생 정도의 아들과 함께 온 부부, 손녀와 함께 온 할머니, 혼자 다니는 아저씨까지, 평범한 외모의 그들은 아마도 ‘그냥’ 관객. 오사카의 무더위도, 공연장의 길고 긴 동선도 익숙한 모습, 처음 온 섬머소닉에 들뜬 언니랑 나보다 훨씬 쿨 해 보여 멋있었다. 나이 제한도 없는데 락페스티발은 젊은이들의 문화라고 생각해 버렸구나. (젊은이라는 말조차 쓰다보니 어색하다.)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여기서 락 스피릿을 내뿜고 있는데 '젊을 때 가봐야지'라니 부끄러워진다.
한 할머니와 (아마도 그의 손녀인 듯한) 소녀 관객이 인상적이었다. 둘은 블러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니 그녀는 소녀 옆에서 리듬을 타며 무대를 즐겼다. 언제부터 블러를 좋아했을까. 블러가 주름잡던 90년대,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블러의 과거 뮤비를 보며 ‘나는 왜 데이먼 알반의 리즈시절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농담도 했었기에, 블러의 과거와 현재를 여전히 함께하는 그녀가 부러웠다. 같은 날에 같은 공연을 봤지만 나는 30년의 애정이 쌓인 블러 2023을 경험할 수 없다. 좋아했던 것을 계속 좋아하는 건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먼저 내 취향을 발견해야 한다. 그 다음은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무언가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예를 들면 앨범이나 내한 공연 같은). 무엇보다 좋아하는 대상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 블러와 할머니를 보며 나도 30년짜리 즐거움을 만들고 싶어 졌다. 좋아하는 것들을 30년 동안 지켜낼 수 있는 행운이 따르기를. 나는 귀여운 할머니 말고 락페스티벌을 가는 할머니가 되기로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페스티벌 가고 싶어도 못 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공연장에서 2022년 섬머소닉 굿즈 티셔츠 입은 사람들 얼마나 부러웠다고. 나도 이제 2023년 라인업 등판에 새긴 티셔츠 내년에 입을 수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공연을 못 볼 수도 있는데, 재고 따질 시간이 없다. 섬머소닉을 다녀오자마자 내년 섬머소닉을 가기 위한 적금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