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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힘으로 버텨낸 나날들

ADHD라니, 제가요?

by 아리초이
'제가요 짤' 검색으로 찾은 조세호짤..


제목이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데,

사실 이건 우리 부모님도 모르시고 (지금 이야기해도 의심 조차 하지 않으실 거다)

나를 제일 잘 아는 남편만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7년째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종종 나의 ADHD를 의심했었다. (물론 대부분 농담 이었겠지만..)


그 이유라면,

항상 정리가 안되는 책상, 너저분한 옷들

여기저기 잘 부딪히고 다니는 것

무던해보이지만 사실 모든 감각에 매우 예민한 점

매번 약속에 늦어서 허둥대는 것 (프로지각러)

해야할 일 놔두고 자꾸 딴데로 새는 것

그러다 관심있는 데 집중하면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 순간에 완료하는 것 등등..
(가끔 데드라인에 늦기도 함)


어찌보면 그냥 게을러서 라고 여길 수 있는 것들이라 잘 모를 수 있는데,

알고 나니 증상은 도처에 있었다ㅎ


우리집 의자 같은 이런 짤도 보았다...


한참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며 업무에 파묻혀있던 2023년,

여러 고민 끝에 결국 성인 ADHD 상담과 검사를 받게 되었다.


원래 인간은 멀티로 무언가 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하지만

그 무렵 나는 유독 우선순위에 맞게 일하는게 너무 어렵다고 느꼈고,

이 업무에서 저업무로 쉽게 집중이 옮겨가는 경험을 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아젠다들이 비슷한 데드라인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었고

슬랙을 사용하는 회사 특성상 실시간 논의와 의사결정이 많이 일어나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내가 종종 격는 뇌 과부하 짤..흑

https://www.instagram.com/reel/DFACLEYpiAx/?igsh=MWkyem9hMzBobjhk


무튼, 검사 결과는 아주 놀랍진 않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의 수치가 나왔고, 일상에서 어려움이 없는 경우 굳이 약을 처방 받거나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우울감이나 불안감이나 심리/정서적으로 힘든 부분도 딱히 없었기에

그래서 사실 검사 전 후로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그냥 그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만, 이 경험 덕분에 초딩때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남들보다 더 집중 못하고 습득력이 낮은 부분을 “엉덩이의 힘”으로 버텨왔다고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워낙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은 환경에 속해있어서

'내가 머리가 그렇게 좋지는 않구나' 라고 생각했고,

성인이 되어서 마주했던 만족하지 못한 결과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했다.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것은 난독증이라며 답답해하긴 했지만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고,

어릴때부터 바둑을 배운 바둑 유단자로서 스스로 집중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집중이 깨지기 쉬운 사람이었고,

집중을 하는데까지도 시간이 오래걸렸다.

새로 습득하는 것에서 요령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고

늘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이해하여,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 부분이 부족한 건 대학에서 공부하면서도 많이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또 엄청 몰두했던 기억도 난다.

읽기 싫은 책은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이해가 안됐는데

초딩때도 인터넷 소설은 일곱시간씩 앉아서 읽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웃기게도 '이 모든건 엉덩이 힘이었구나' 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그나마 오래 앉아있기라도 해서, 그래서 여기까지 잘 살아왔던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나서는 그동안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고 버텨준 자신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엉덩이의 힘, 즉 성실함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기에.


(꾸준함과 성실히 해내는 것을 이길 수 있는게 없다. 그리고 이 또한 엄청난 능력이라고 믿는다.)


무튼 이번 경험으로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괴로운 과정들을 거치긴 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강점을 아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단점을 아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의도치 않은 자아성찰 시전.


그래도 부족한 나를 탓하기 보단

스스로 더 기다려주고, 더 사랑해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온 나 칭찬해

우리 남편은 스스로 인정하고, 스스로 칭찬하는 거 참 잘하던데

한국 사람은 이런게 참 어렵네. (물론 남편도 토종 한쿡인이긴 함..)


그래서 결론은,

ADHD 모르겠고, 그럼 계속해서 잘 부탁한다 내 엉덩이야.

아직은 더 해보고 싶은게 많아서, 살면서 더더욱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앞으로는

조금 더 향상된 스킬과 집중력이 더해진 엉덩이 힘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스킬업 해나가야지.


나와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분이라면 모두 엉덩이 힘으로 이겨내길 바라며,

모두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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