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글 Nov 01. 2022

나는 INFJ입니다

혈액형은 O형이에요

학창 시절, 유행처럼 번진 것이 “너 혈액형이 뭐니?”였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는 성격을 보고 혈액형을 맞추는 놀이도 했다. 완전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누구나가 100% A형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O형이었다.


ABO 식으로 구분한 혈액형은 O, A, B, AB형 총 4가지 종류로 나뉜다. 다시 AA, AO, BB, BO, AB, OO로 분류하면 6가지로 세분할 수 있고, 여기에 RH+, RH-까지 구분하면 총 12가지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 해도 과연, 사람의 성격을 12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까?

  * 혈액형으로 성격을 알 수 있다는 것은 특정 인종 우월주의에서 나온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요즘은 한창 MBTI가 유행이다. MBTI에는 총 16가지 유형이 있다. 내향형이냐 외향형이냐에 따라 I와 E로, 직관형이냐 감각형이냐에 따라 N과 S로, 감정형이냐 사고형이냐에 따라 F와 T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식형이냐 판단형이냐에 따라 P와 J로 나뉜다. 각 요소당 2개의 분류씩 존재하기에 2의 4 제곱근으로, 총 16가지의 성격 유형이 존재한다.


MBTI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를 알고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MBTI 검사를 실시하고 각 유형별 특징을 알아보는 수업이 있었다. MBTI 검사 실시 후, 같은 유형의 학생끼리 모여 앉아 팀으로 과제를 진행했다. 어떤 유형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과제를 해결하는 반면, 어떤 유형은 과제를 끝내기도 전에 분열 위기에 놓였다. 이 모든 것은 선생님께서 예상했던 대로였다.


MBTI에 의해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고 하셨다. 어떤 MBTI 유형은 팀으로 일하는 것을 잘하는 반면, 다른 MBTI 유형은 혼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잘난 유형들은 팀으로 일을 하면 서로 잘나기 바쁘고, 팀워크가 좋은 유형들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주어진 테스크를 잘 마친다.




요즘엔 캐나다에 살고 있어서 한국의 상황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이력서나 입사 지원서에 MBTI를 적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MBTI만 보고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국을 떠난 것이 잘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는 수능을 통해 학생들의 등급을 구분한다. 등급이 낮으면 불량 학생이고 등급이 높으면 우수 학생이다. 그리고 등급에 맞춰 대학에 간다. 대학 간판도 등급이다. 상위권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은 좋은 등급이고 하위권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은 나쁜 등급이다. 직업도 등급이다.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 전문직은 우수 등급이고 그렇지 못하면 불량 등급이다.

  * 등급에 관한 사실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는 하다 못해, 우열을 가리면 안 되는 성격유형에도 등급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 세계 사람을 단지 16가지 성격유형에 끼워 맞춘 MBTI 검사로 말이다. 그럼 MBTI 유형 중 뭐가 1등이고 뭐가 16등일까?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나는 항상 나쁜 등급이었다. 수능에서 좋지 못한 등급을 받았고, 그 결과 지방대에 갔다. 그리고 그 나쁜 등급으로 우수 등급의 경쟁자를 이길 수 있는 길은 결코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등급으로 캐나다에 왔고, 캐나다는 더 이상 나에게 등급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민자라 해도 똑같이 존중받을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높은 등급을 위해 아이들에게 잠을 줄일 것을 강요한다. 등급이 낮으면 그만큼 기회는 닫힐 것이란 것을 부모님들은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기질이란 것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와, 잘 바뀌지 않는 부분이다. 그리고 모든 기질이 등급이라는 척도로 평가받는다는 사고 자체가 난센스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쓸모가 있다. 만약 고등학교 MBTI 수업 시간에 팀 과제가 아닌 개별 과제를 주셨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여전히 같은 결과였을까? 과연 성격, 또는 기질을 등급으로 매길 수 있을까? 나는 INFJ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수의 유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가장 쓸모없는 사람일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핏이 맞는 옷이 있다. 그리고 그 핏은 하나의 척도로 판단할 수 없다. 핏이 맞는 옷을 만들기 위해 어깨 길이를 재고, 키를 재고, 팔 길이를 재듯, 핏이 맞는 인생을 살려면 다각도로 나에 대해 알아야 한다. 공부를 해서 1등급을 받는 것보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알고 나와 핏이 맞는 인생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떤 MBTI 유형이든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쓸모가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열한 사람도 열등한 사람도 없다. 단지 나의 쓸모를 알아줄 핏이 맞는 인생을 찾으면 된다. 나와 핏이 맞는 인생을 발견한다면, 비록 세상이 정한 나쁜 등급에 들지언정,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체스에서 모든 말이 가치가 있듯, 나의 포지션을 발견해야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멋지게 성공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