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감정이며, 저축되지 않는다.
지하철 건너편 좌석에 노인이 졸고 있다. 체격이며 머리 흰 모습이 나를 닮았다. 팔십 대 노인이 앉아있는 자리에 내 모습이 오버 랩 된다. 내 생에 목표는 85세다. 야구는 9회 말, 골프는 장갑을 벗을 때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종심(從心) 문턱을 넘었으니 장갑 벗기 전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본다.
많은 세상살이와 얽혀 왔지만 한정된 기억의 메모리에 모든 흔적을 저장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나 몇몇 일들은 또렷하게 생각난다.
일상생활에선 남보다 늦고 뒤처졌던 것 같다. 삶의 경쟁에선 9회 말이 다 돼서야 겨우 내 몫을 차지하는 인생 패배론 적 불만을 많이 했었다. 성장 과정부터 그랬다.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것이 싫었다. 형은 장남이라고, 누이는 첫 딸이라고, 막내는 내리사랑이라 나름대로 사랑을 받을 이유가 있었다. 난 위에 치이고 아래에서 받칠 뿐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그저 9남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라는 생각에 불만이 많았다. 그 틈새 사랑을 조금 나눠 받을 뿐. 다른 형제보다 덜 받는다고 느꼈다. 새 옷을 입어본 일이 거의 없고 형들 옷을 내리받아 입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먹을 것을 나눌 때도 항상 내 몫은 마지막이었다.
부족한 사랑을 채우기 위해선 눈치가 빨라야 했고, 심부름도 빠릿빠릿해야 했다. 어머니는 장에 다녀올 때면 눈깔사탕이라 부르는 알사탕’ 한 개를 아무도 모르게 입속에 쏙 사랑을 넣어주었다. 달콤한 사랑을 이어가려면 공부고 운동이고 잘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터득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습관이 부족한 사랑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졸업하고 취직할 때도 여지없이 9회 말 공식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대기업 취업에 성공할 때, 난 무거운 가방 옆구리 끼고 딱딱한 도서관 의자에 앉아 취업준비를 했다. 결혼도 그랬다. 친구들은 이십 대 중후반에 잘도 하던데 난 서른 넘겨 늦깎이 결혼을 했다.
집을 장만하려 할 땐 실망이 가장 컸다. 구십 년 분당 신도시 생길 때 남들은 아파트청약에 당첨되었다고 야단법석 떠는 데 난 다섯 번 청약에 모두 떨어졌다. 왜 세상은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지 않을까? 원망스러웠다.
친구는 삼십 대 초반 서울 상계동에 스물네 평 주공아파트를 장만했다. 집 없는 우리 부부 초청해 보란 듯이 자랑하며 집들이했다. 전세 살던 나는 아내 눈치 보느라 소주병만 비웠다. 그 일에 자극받아 독하게 절약해서 삼십 대 후반에 강남에 집을 장만했다. 우리도 보란 듯이 상계동 친구 초대해 집들이했다. 그는 강남 집값 이야기를 듣더니 “먹는 게 남는 거야.”라며 마누라 눈치 보며 쉼 없이 마셔대더니 고주망태가 되었다. 9회 말 인생이 손해 보는 것만은 아닌 듯했다.
직장에서만큼은 9회 말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논어에 나오는 ‘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나를 알아줄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는 구절을 수시로 되뇌며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일을 했다. 기피부서나 지방 근무도 자진해서 했다. 노력하니 9회 말 징크스도 깨졌다. 내 삶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9회 말 인생이라 고뇌하며 살아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놈의 경쟁욕심 때문이다.
퇴직 후 동창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대기업 다녔던 친구를 만났다. 그는 십 년 전에 퇴직해 백수라고 했다. 대기업 상무라고 큰소리치던 모습은 없었다. 유행 지난 커브라 접힌 헐렁한 바지에 한 뼘 길게 졸라맨 벨트 거기다가 윤기 사라진 구두, 탄력 잃은 피부는 전형적인 은퇴자 모습이었다. 그는 퇴직금으로 받은 목돈 절반은 자식 결혼 비용에 들어가고, 남은 돈 곶감 빼먹듯 생활하고 있는데 백세 시대가 원망스럽다며 소맥 한 잔을 단숨에 넘기더니 “연금 받는 자네가 부러워.”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법인카드 들고 다니며 호기 있게 술도 사고 큰소리쳤었다.
“국가 녹을 먹는 네가 무슨 돈이 있냐?”
비아냥거림으로 들릴 때마다 내가 9회 말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어깨가 처진 적도 많았다. 그랬던 그를 보면서 젊을 때 잘 나갔다고 노후에 편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혼자 중얼거렸다.
“대기업 다녔으면 뭐 해 노후가 편해야지!” 늙은이 뒤끝이 발동했다.
“자네 운동 좋아했는데 요즘 골프 나가?”
“골프는 무슨, 언제 산에나 한번 같이 가지?.”
“산은 무슨! 언제든 술 생각나면 전화해 소주 한잔 살게.”
9회 말 인생도 실패한 삶이 아니고 인생을 길게 보면 그게 그거라는 걸 돌아보니 알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인생 9회 말 뿐이다. 장갑 벗기 전 괜찮은 삶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 ‘성공 인생 평가표’를 만들었다.
‘아내가 다음 생에 당신을 또 만나면 나는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라고 하면 50점.’
‘자식들이 손주에게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라고 말하면 10점 추가.’
‘그 친구 인간성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주변에서 평해주면 10점.’
마지막으로 ‘아내나 자식으로부터 병시중받지 않고 건강하게 생을 마감하면 30점.’
누군가가 ‘행복이란 생각이 아니라 감정이며, 저축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저축되지 않는 큰 행복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차 한 잔 옆에 놓고 좋은 글 읽는 즐거움, 벗들과 함께하는 여유시간의 행복, 잡초에 핀 이름 모를 꽃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 소소한 느낌에서 행복을 만나는 순간을 한 올씩 엮어가야겠다.
9회 말 장갑 벗을 때 내 인생평가 점수는 몇 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