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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25. 2023

어느 날 어른이 사라졌다

어른은 사라지고 노인만 남았다.

  핸들 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다. 주먹이 무서워, 아니 정확히 말하며 막돼먹은 놈한테 어른임을 포기했다는 말이 진심이다.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보건소에 무료 독감백신을 맞으러 갔다가 벌어진 황당한 사건 때문이다. 그곳 지하 주차장은 매우 혼잡해진․출입에 어려움이 많았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려는데 비좁은 코너에 소형차가 이중 주차하고 있었다. 그 차로 인하여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코너 공간이 더 좁아져 애를 먹을 상황이라 그 운전자에게 부탁했다.

  “선생님 조금 더 뒤로 바짝 붙여 주면 나가는 차들이 좋을 것 같네요.”

  그 말에 대한 대답에 내 귀를 의심했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는 “그냥 가지 운전도 못 하는 게…” 충격적이라 잠시 말을 잊었다. 대충 봐도 아들 또래로 보이는 젊은이가 욕설에 가까운 반말로 대꾸하는 것에 너무 놀라서다.      

  순간 상황대처를 위한 많은 생각으로 갈등했다. 어른으로서 저런 놈을 그냥 놔두고 간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경찰을 부를 사안도 아니고 어떻게든 잘 못을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에 차에서 내렸다.

그와 싸우려는 것도,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도 아니다. 어른으로서 할 말은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내린 것뿐이다.

  “젊은이 내 말을 오해한 것 같은데 조금 더 뒤로 붙여 주면 다른 차량이 나갈 때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부탁한 건데 제 말이 지나쳤나요?”

  좋은 대답, 아니 어른이 말을 하니 들을 거라는 착각이 문제였다. 유교적 관습의 어른이라는 개념으로 젊은이를 대한 오류가 실수였다.

  “아이 X발 그냥 꺼져, 열받게 하지 말고”

  한마디 더 하면 주먹으로 치겠다는 최후통첩을 하는 것 같았다. 노인이 폭행당했다는 뉴스가 이런 상황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어른이란 자존감을 버리고 이 자리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폭행당할 것을 각오하고 이런 막돼먹은 놈에게 할 말은 해야 할 것인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경찰을 부른다 해도 파출소에서 긴 시간 시달림만 당할 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터라 갈등이 커졌다.    

 


  어른을 버리기로 했다. 인간성을 상실한 놈은 윤리의식 자체가 없을 것이고, 강한 힘에 의한 무력만이 통할진대 상대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물리적 힘으로 지배해 보겠다고 골프채 꺼내 휘두른다 한들 도리어 폭행죄로 내가 죗값을 치러야 할뿐더러 어른을 무시하는 인성이 고착된 자에게는 의미가 없을 거였다.

  집으로 오는 내내 무력감에 화가 가시질 않았다. 아무리 막돼먹은 녀석이라도 나이 많은 노인에게 ‘아이 X발 꺼져’라고 내뱉을까? 쓰레기 같은 인간을 제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현실에 대한 실망감에 더 화가 났다.     

  우리 때 이야기조차 ‘라떼’라는 비속어로 나이 든 사람의 말문을 막아놓는 사회이긴 하나, 오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어른이 존재했었다. 어른이 잘 못을 지적하면 공손히 받아들일 인성이 형성돼 있었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효의 근본이 사회적으로 형성돼 있었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 구성 속에서 어른은 어른으로 젊은이는 젊은이로 서로를 존중하는 가치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급격한 경제성장에 의한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사회구성이 형성되면서 어른과 단절된 사회가 만들어졌고. 부모와 자녀라는 단순화된 가족사회가 사회적 공통의 어른이라는 경로(敬老) 사상은 미미해졌다. 부모 외에 어른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사회가 된 거다.

  어른은 사회 지도적 존재가 아니라 나와 관계없는 노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전동차 안에서 젊은이가 노인을 폭행한 사건이 뉴스에 등장하는 것도, 오늘 벌어진 주차장 소동도 엄(嚴)함을 느끼지 못하는 노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교육도 한몫했다. 칠십 년대 진학시험 동점자 선정 순위는 도덕, 국사, 연령순이었을 정도로 윤리를 중요시했었다. 그런 교육의 중요성이 이천구 년 ‘바른생활’ 교과가 폐지되고, 이천십사 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도덕, 사회 과목이 없어진 것도 어른을 사라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어른이라는 상하 계층적 구조 없이 부부라는 수평적 관계만을 보고 자란 어린이는 어른이라는 윤리 인성이 형성될 기회를 상실했다. 그 결과 어른은 없고 노인만 남았다.    

  

  당당하지 못하게 주먹을 피해 어른을 포기한 것이나, 막돼먹은 젊은이를 제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 내 잘못인듯하여 가슴이 답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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