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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Oct 01. 2023

초콜릿 뒷맛이 쌉쌀하다

"기브 미 초콜릿"을 미군 차량을 향해 외쳤다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육십 년대 다녔던 모교다. 정문에 있던 다복 소나무(盤松)는 푸름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나무 밑에 앉아 정문을 드나들던 때를 회상해 본다. 배는 곯아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엄마의 채근에 다녔던 학교 앞엔 신작로가 있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유일한 길이다. 그 길을 지나는 자동차를 볼 수 있는 건 재수 좋은 날이다. 한두 달에 한 번 특별한 차량 행렬이 지나간다. 얼룩무늬 위장도색을 한 특이한 군용 차량 무리다. 덮개를 씌워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것부터 모양도 가지각색인 특이한 자동차 군단이다. 이상한 건 차량만이 아니다. 검정 크레용을 온몸에 칠한 듯한 흑인, 머리에 황금 물을 들인 금발의 백인, 코도 덩치도 커다란 이상한 사람들이 타고 있어 더욱 신기했다. 

  그 차량 행렬을 기다리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십여 명의 어린이가 길가에서 기다리다 차량 행렬이 지나가면 따라가며 외친다.    

 

  “할로 할로, 기브 미 초콜릿”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나 모두 그리 외쳤다. 달콤한 초콜릿을 먹어볼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필사적으로 쫓아갔다.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아픈 줄 모르고 사라질 때까지 외쳤다. 몇몇은 초콜릿을 얻었으나 차량 무리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초콜릿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량을 멈출 수만 있다면…. 아쉬웠다. 

  차량을 멈추게할 방법을 궁리했다. 정차한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멀리 차량 무리가 이동해 오는 것이 보이면 내 지시에 따라 훈련받은 병사처럼 초등 3년생 사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른도 힘든 커다란 돌 서너 개를 신작로 가운데로 굴려 도로를 차단했다. 빠르게 다리 밑에 몸을 숨긴 채 동태를 살폈다. 시도는 적중했다. 차량 행렬은 멈췄고 선도하던 지프에서 지휘봉을 든 미군이 내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숨어있던 십여 명이 우르르 달려 나가 배치한 듯 한대에 한 명씩 달라붙어 외쳤다.   

  

 “기브 미 초콜릿, 기브 미 캔디”   

  

  지프에서 내린 백인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중지를 펴 우리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뻐-큐”      


  그날 초콜릿을 얻은 애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일이 선생님께 알려져 종아리에 지렁이 자국이 날 때까지 회초리 타작을 당했다.  

    

  “너희들은 가난할 뿐 거지는 아니야! 부자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해.”     


  선생님께서 그렇게 크게 화를 내시는 걸 처음 봤다. 무섭게 혼이 났음에도 선생님의 눈을 피해 미군 차량이 지날 때면 어김없이 헬로를 외치며 따라갔다.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은 그리 강렬했다.

  국민소득 120달러의 가난한 나라 어린이의 외침을 들으며 그들은 묘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곤 우리를 향해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서로 먼저 잡으려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어떤 날엔 초콜릿을 통째로 던지기도 하나 대부분 먹다 남은 것을 던져주었다. 껌이나 사탕도 있었다.      


  국민소득 삼만 이천 달러, 13위 경제국에서 사는 지금. 기억에 남아있는 건 초콜릿의 달콤함이 아니다. 구호물자로 받았던 옥수수 포대 겉면에 인쇄된 태극기와 성조기 아래 굳게 악수하는 그림, 초콜릿을 던져주며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초콜릿 한 조각을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바라본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마트에 가면 초콜릿 지천이다. 

  초콜릿의 뒷맛이 쌉쌀한 건 카카오 탓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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