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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21. 2022

이 죽일 놈의 토익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12화 

페이퍼 작성 : 2007년 4월 1일                                      시간적 배경 : 2007년 3월 하순



  며칠 전 LG그룹에서 사내방송 기자와 PD를 대거 채용했다. 물론 계약직이지만 어찌되었든 LG그룹의 직원이었다. 즉, 여의도에 있는 쌍둥이 빌딩으로 출근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보수도 꽤나 괜찮았다. 모 취업사이트에서 그 구인공고를 본 난 바로 구미가 당기면서 꼼꼼하게 공고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 지금 생각해보면 내 스펙으로는 절대 지원해서는 안 될 곳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식


(1) 4년제 졸업자 및 졸업예정자     


  당연히 해당된다. 더구나 올해 2월에 졸업했으니 취업재수생도 아닌 따끈따끈한 사회초년생이다. 물론 나이가 좀 걸리지만 나이제한은 없으니 문제될 거 없다.     


(2) 학점 3.5 이상     


  물론 이것도 해당. 4학년 2학기에 학점을 약간 죽을 쑤어 결국 졸업식 때 우수졸업상은 받진 못했지만 겨우 그 기준에서 0.08점 부족한 3.92이다. 이 정도면 우수한 학점이라 생각한다.     


(3) 관련 전공자     


  약간 난해하다. 방송 제작이니 신문방송학과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지만 PD는 몰라도 기자는 인문 계열이 충분히 지원가능하다고 여긴다. 물론 문창과는 인문 계열이 아닌 예체능 계열이지만 인문 계열에도 속한다고도 볼 수 있으니 관련 전공자라 말할 수 있다.     


(4) 제작 경험자     


  물론 해당된다. 현재까지 우리은행에서 매주 수요일에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당시 나는 ‘폴리지미디어’라는 자그만 프로덕션에서 구성작가로 근무 중이었다) 더구나 우리은행 본점에 상주하면서 뉴스 및 기획물 제작 프로세스를 옆에서 눈치껏 요령껏 배워온 터이다. 충분히 아니 빨리 적응할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이것도 오케이!     


(5) 외국어 능력 자격증 소지자     


  여기서… 여기서…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꼭 대표 외국어 자격증인 토익일 필요는 없다고 명시했지만 난 토익을 비롯해 토플, 텝스, JPT, HSK 등 어떠한 외국어 시험을 본 적이 없다. 즉, 서류전형에서 난 5번 항목의 미소지자로 애당초 지원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어쩌면 서류전형만 통과하면 나의 커리어로 인해 혹여 붙을 가능성도 있었던 LG그룹 사내방송국 직원 채용에 결국 응시조차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LG그룹 로고가 새겨진 사원증을 목에 건 채 멋들어진 양복을 입고 여의도에 우뚝 솟은 쌍둥이 빌딩으로 출근하는 거였는데.

  그 놈의 토익 때문에. 그 놈의 토익 때문에. 그런데도 토익 공부가 하고 싶지는 않다. 그간의 입사지원에서 토익 성적이 없어 많은 불이익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고작 서류전형 통과를 위해 지금부터 토익 공부에 매달리며 세월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토익 점수 같은 건 없으나 내 능력을 알아주고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들이 날 필요로 하는 시점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싶다.     

      



(에필로그1)     


  설령 내가 토익 점수가 있었다고 한들 명색이 LG그룹인지라 지원했다 하더라도 분명 떨어졌을 것이다. 작년 말부터 현재까지 난 약 오십여 군데의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잘해야 면접전형이었고 대부분은 서류전형에서 고배를 마셨다. 

  입학할 때 학과소개를 보면 ‘취업 후 진로’가 나온다. 거길 보면 문창과는 신문, 출판, 방송 쪽으로 진출한다고 기술되었다. 그러나 그건 공부를 아주 잘했거나(토익이나 각종 자격증은 물론 있어야 한다) 아님 학연이나 지연 등이 아주 좋을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여긴다. 공부를 아주 잘하지도 못했고 학연이나 지연도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는 나는 각종 신문사, 출판사, 방송사에서 모두 미역국을 마셨다.

  탈락한 곳 중 가장 억울하면서 허탈한 곳은 바로 ‘문학동네’와 ‘창비’이다. 일단 문예창작학과를 나왔고 신춘문예 등단 자격도 있으며 학점도 좋고 아르바이트나 동아리 등 각종 활동경력도 많으니 당연히 붙을 거라고 지인들은 떠벌렸다. 하지만 출판경력이 전무하다는 점 때문인지 아님 대부분 여성들이 주름잡는 출판사에서 난 나이가 많고 성별이 달라 뽑기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학동네는 50%의 합격률에도 불구하고 떨어졌고 창비는 아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 주지 않았다.      


* 이곳과 학군사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순간에 이곳을 택했다가 결국 미역국 먹은 얘기도 조만간 하도록 하겠다.

   



(에필로그2)     


  반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을 넣지도 않았는데 먼저 연락을 주어 일하게 된 회사들도 있었다. 2010년 1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근무한 대치동의 ‘선경어학원’과 2016년 4월부터 5월까지 아주 짧게 근무한 ‘한샘 EUG’가 바로 그곳들이다. ‘선경어학원’은 영어학원인 까닭에 전혀 내 전공과 무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많아 업무를 잘 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날 채용했으며 한샘 EUG는 ‘사람인’ 취업사이트에 기재해놓은 자기소개서만은 판단하여 직원에 적합하다 여겨 날 스카웃했다. 

  선경어학원은 먼저 날 뽑아준 게 고마워서 일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무려 삼년 넘게 근무했다. 아마 2013년 한경청년신춘문예에서 등단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근무해 꽤나 높은 연봉과 직책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한샘 EUG도 내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지 않았더라면 오래 머물 각오로 일했을 것이다. 면접 자리에서 대표님에게 호기롭게 높은 연봉을 제시했는데 그분은 선뜻 들어주셨던 까닭이었다. 


  지금은 시간강사 자리를 얻고자 부지런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방학 때마다 전국의 대학교에 집어넣는다.


* '사람인'에 올린 자기소개서만 가지고 날 뽑아준 고마운 곳. 만약 내가 박사과정 수료 중이 아니었다면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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