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기록이나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기록이라고 하면 플래너 정도였고, 많은 양을 공부하다보니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 이걸 나중에 펼쳐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글쓰기라고 하면 그냥 학교에서 내주는 수행평가나 자기소개서 정도..가 19살때까지의 인식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인생의 바닥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3년이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으니 기록의 가치가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20살 공대에 입학하고 대통령과학장학금을 도전해지 않겠냐는 제안을 고등학교 영재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았었다. 선생님께선 전국에서 몇명 뽑지 않고, 준비할 서류도 많아서 고등학교 친구들은 많이 포기했다고 전해주셨는데 이 두가지 이유 모두 내가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었기에 바로 도전했다. 그렇다고 내가 된다는 확신은 없었고 그냥 도전이 좋았다.
'샘한테는 안 보내도 되고' : 선생님 업무도 아닌데 시간을 쪼개서 봐주신 것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준비 서류를 확인하고,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쓴 자소서를 선생님께서 첨삭해주실테니 꼭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합격은 하고 싶은데 애초에 내가 받기에는 대통령과학장학금(대한민국 이공계 최우수 장학금)이 너무 큰 상이니까 어차피 떨어질 거 이렇게 공들여서 써야하냐는 그런 오만한 생각이 글에서도 묻어나서 선생님께 전해졌었다. 첨삭을 받기 이전에는 내가 오만하고 진정성 없이 임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첨삭글을 보고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정말 온정어린 관심과 정확한 분석이 선생님의 첨삭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나고도 공부는 했지만 대학 생활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뭘 해야될 지 모르니 일단 주어진 공부인 학점만 잘 챙기자는 생각이었다.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 언어, 취미라는
나의 색깔을 뚜렷하게 만들 수 있는 활동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주어진 것을 해내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과학장학금은 앞으로의 대학 생활, 연구 분야에 대해서 물었다.
대충 책 읽고 동아리 활동 하고 혼자서 회화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적었는데
선생님께서 자소서의 항목마다 어떤 내용을 원하고 있는지를 적어서 첨삭본을 보내주셨다.
우와~~~ 나름 멋진 글인 것 같다. 그런데...음..... 성장 과정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고, 고 3을 전후하여 나의 의식과 생활의 변화만 나타내면서 지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입니다..... 라고만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애. 나라는 사람이 지금 이 위치에 와 있고,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전반적인 흐름과 과정이 보이지가 않는 것 같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였고, 어떠한 계기를 통해 나 자신이 크게 바뀌었으면 그래서 지금의 내 삶의 가장 큰 가치와 모토는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해 주면 좋을 것 같애.
대학생활에서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여러 활동을 전공공부와 그 외 활동으로 나누어 볼 때 이 둘의 비율은 1:1이 되어야 해! 물론 3,4학년이 되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4년 전체를 통틀어 놓고 보면 1:1이 되어야 해.‘이 친구가 학업적인 부분에서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친구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것보다 ‘종합적이고 전인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친구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길일거야! 물론 이 항목은 학업계획이기 때문에 학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건 사실이지.
이때 각 학년별로 어떤 과목을 들을 것인지 계획을 밝혀주면 당연히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학과 홈페이지에 보면 교육과정이 다 나와 있을 거야. 그렇다고 2학년 때, 3학년 때 뭘 들어야 하지??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어. 적어도 교육과정을 미리 검색하고 나만의 계획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플러스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첨삭을 받아도 지금에서 봤을 땐 완벽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을 지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다보니까 기회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기회를 잡기 시작하면서 삶이 풍성해진 것 같다. 무엇보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색이 뚜렷한 삶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내가 누구인지를 항상 신경쓰면서 살았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과 사고의 논리력은 좋은데 매끈하고 둥글둥글하게 표현해 내는 힘이 조금 부족해.(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이과 친구들의 공통적인 특징일 수도 있을 거야. 즉, 말과 글이 주는 힘에서 조금 부족함이 느껴진다는 거지. 학업계획에서도 썼듯이 고전 같은 것도 많이 읽고, 글쓰는 경험도 많이 해 보길 바란다. 이과생이든, 문과생이든 자신의 역량을 드러낼려면 결국은 말과 글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원하는 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가치를 남도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남에게 나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건 설득을 필요로 한다.
내가 어떤 재능을 갖고 있어도 내가 내 재능에 대해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의견에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하는 지 고민해보다가 결국에는 글쓰기로 빠졌는데 그 기저에는 선생님의 조언이 있었다.
결국엔 말과 글이 나를 찾아주고 나를 나타낸다는 것.
그 말과 글을 잘 하려면 잘 듣고 읽고 써야한다는 것.
2022년 나의 깨달음이다.
상대방은 왜 내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일까라는 불평이 아니라,
그런 오해가 없도록 내가 더 명료하게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이 생각은 3월 초에 선생님께서 은연중에 심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선생님의 첨삭은 학생을 정말로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온정과 믿음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을.
좋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곁에 두는 것
좋은 사람으로 기억 되고자 꾸준히 신뢰를 쌓는 것
받은 사랑 이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
내가 평생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