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에 갇힌 사람, 자기 확신에 갇힌 사람, 눈먼 믿음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눈뜬 믿음의 사람들은 이미 압니다. 세상의 빛이어야 하는 교회가 세상의 어둠이 되었다는 것. 세상의 길이어야 하는 교회가 세상의 수렁이 되었다는 것. 세상의 구원이어야 하는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따랐던 신앙 체계, 성경 해석으로는 21세기 22세기와 대화할 수 없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따랐던 신앙 체계와 성경 해석을 고수하게 되면, 교회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교회가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급속하게 몰락하게 될 거라는 것. 지금의 신앙 체계와 성경 해석 프레임을 후세대에 전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전진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될 거라는 것.
그러니 눈뜬 믿음의 사람들이여! 떠나십시오. 떠나십시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났듯, 야곱의 후손들이 여호와의 이끄심을 따라 이집트를 떠났듯 떠나십시오. 지금의 뒤틀려진 교회 현실, 자본주의에 유폐된 교회 현실, 깊은 어둠에 휩싸인 교회 현실을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 떠나십시오. 지금까지 굳게 믿고 따랐던 신앙의 체계, 성경 해석에서 떠나십시오. 심히 부족하고 옹졸하고 편협하고 뒤틀린 복음에서 떠나십시오. 절멸 위기에 직면한 21세기 인류에게 길이 되는 대전환의 복음을 향해 떠나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떠남’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땅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여줄 땅, 하나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땅이란 대체 뭘까요? 성경은 이 땅을 여러 비유 언어로 말하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아무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지 못한 것(사64:4),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것(사11:9)이라 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고 군사 훈련도 하지 않는 것(미4:3)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막1:15),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마6:10)라 했습니다. 바울은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성령으로 보는 것(고전2:8-10)이라 했습니다. 창세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접받고 복을 누리는 세계(창1:27,12:3)라 했습니다. 이사야와 베드로와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사65:17, 벧후3:13, 계21:1)이라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신 땅은, 몸이 죽은 후 영혼이 천국 가는 요설의 세계가 아니라 세계 열국이 화해와 평화를 누리는 세계,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세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접받고 복을 누리는 세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세계를 가리킵니다. 바로 이 세계를 향해 떠나십시오.
모든 교회는 마땅히 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열심히 따먹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부류는 위용 있게. 어떤 부류는 점잖게. 어떤 부류는 멋스럽게. 어떤 부류는 구질구질하게. 어떤 부류는 게걸스럽게. 어떤 부류는 천연덕스럽게. 어떤 부류는 한심하게.
그러니 주저하지 마십시오. 좌고우면 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좌고우면 할 때가 아닙니다. 한가하게 둘러앉아 교회에 돌을 던질 때가 아닙니다. 심히 뒤틀린 복음을 지키며 앉아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떠날 때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신 [불가능한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떠날 때입니다. 역사의 지평, 이성의 지평, 과학의 지평, 예술의 지평, 철학의 지평, 종교의 지평 너머로 초월하는 복음이 아니라 이 모든 지평을 품는 복음을 향해 떠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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