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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말라

의존적 주체라는 역설


성경은 알아갈수록 참 쉽고 단순한 이야기를 통해 매우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에덴동산 이야기의 경우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들릴 만큼 깊고 풍부합니다. 에덴동산 이야기는 한 마디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창세기 2장을 섬세하게 살피면 인간에 대한 놀라운 진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1. 창세기 2장은 우선 땅에 나무가 없고 들에 풀이 돋아나지 않은 것은 땅에 비가 내리지 않고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2:5). 그리고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게 되자 사람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2:6) 이것은 단순한 사실을 말한 게 아닙니다. 사람, 비, 나무, 풀들의 존재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상호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나무와 풀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비가 있어야 하고,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비와 나무와 풀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창세기 2장은 같은 패턴의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후 사람을 에덴으로 데려가 그곳을 맡아 돌보게 하십니다(2:15). 그리고 모든 나무의 열매를 네 맘껏 먹으라고 말합니다(2:16). 무슨 말입니까? 에덴동산은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사람은 에덴에 있는 나무 열매들을 필요로 한다는 말입니다. 좀 확대 해석하면, 사람을 비롯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인드라망의 시스템이라는 말입니다. 서로를 통해서만 서로가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상호의존적 세계라는 말입니다.                

                   

3. 한 걸음 더 들어가 창세기 2장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며 돕는 배필인 여자를 만들고(2:18), 둘이 만나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2:24). 이것은 단지 남녀관계를 말한 게 아닙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짝을 필요로 한다, 타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즉 너를 통해서만 나는 나일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은 아예 흙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비로소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고 말함으로써(2:7) 사람은 존재 자체서부터 땅과 창조자에게 빚진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4. 결국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자연 의존적 존재, 신 의존적 존재, 상호 의존적 존재라는 것. 인간은 뭐든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의 주체이되 홀로 주체가 아니라 신과 우주와 타자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체, 즉 [의존적 주체]라는 것.  

[의존적 주체]라, 생각하면 이건 모순입니다. ‘의존’과 ‘주체’는 도무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은 모든 서술을 통해 줄곧 ‘인간은 [의존적 주체] - 자기 안에 모순이 있는 역설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5. 바로 이것이 창세기 2장이 말하는 인간의 근원 진실입니다. 인간은 1차적으로 [자유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타자 없이 존재할 수 있는 [홀로 주체]가 아니라 타자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상호 주체] - [의존적 주체]입니다.

이 진실은 그리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검토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내가 만들지 않은 태양의 빛을 받으며, 내가 만들지 않은 지구에 발을 딛고, 내가 만들지 않은 물을 마시고, 내가 만들지 않은 공기를 호흡하고, 내가 만들지 않은 옷을 입고, 내가 만들지 않은 밥을 먹으며, 내가 만들지 않은 아내와 함께, 내가 만들지 않은 집에서, 내가 만들지 않은 TV를 보고 책을 읽으며, 또 내가 만들지 않은 수많은 생명체들을 통해 수많은 생명체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만들지 않은 내가 말이죠.


6. 진실로 그렇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명백백한 진실입니다. 창세기 2장은 이 근원 진실을 한 문장으로 축약해 선포했습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네 맘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2:16-17)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이 근원 진실을 망각한 채 삽니다. 코앞의 것들에 마음과 영혼을 빼앗긴 채 이 근원 진실, 나는 의존적 주체라는 이 근원 진실을 놓치고 삽니다. 이 근원 진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면 어떤 역경이든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데. 오만의 죄 - 자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죄를 훨씬 적게 범하며 살 수 있는데. 코앞의 현실에서 해방된 지평너머의 자유를 살 수 있는데.


지평너머교회는 지금 다시 새롭게 에덴동산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오는 주일엔 왜 하필 선악과인지를 살필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지평너머교회 줌으로 들어오십시오. 탐구의 정신과 질문의 영혼을 갖고 들어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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