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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주 Oct 13. 2019

칸쿤엔 칸쿤만 있는게 아니에요

매력 덩어리 유카탄 반도


2018년, 칸쿤 첫 방문을 앞두고 나 역시 검색어로 멕시코 칸쿤을 넣어보았다. 대다수는 신혼여행 이야기였고 신혼여행이다보니 대부분 리조트에 머물며 비슷한 곳들을 방문한 듯했다. 필수코스처럼 자주 등장하는 곳들은 코코봉고라는 곳과 스카렛파크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본토의 타코 사진들.(글을 쓰는 현재 이 곳에 거주한지 일년이 넘었지만 코코봉고-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나이트클럽인데 꽤 높은 퀄리티의 쇼를 제공한다-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몇 해 전, 친구가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와 보여준 스냅사진이 기억났다. 미니드레스를 입은 친구와 반바지에 가벼운 재킷을 입은 남편 뒤로 보이던 새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카리브해. 그야말로 이국적인 풍경이었고 그게 내게는 칸쿤의 첫인상이 되었다. 왠지 엄청 먼 곳처럼 느껴져서 내가 거기 갈 일이 있을까 잠시 생각했던 것도 같고. 역시 사람 일은 모른다.


미국을 경유해 칸쿤 국제공항으로 도착하면 칸쿤에 들르지 않고 바로 플라야 델 카르멘 으로 이동해 3주 정도 지내는게 당시 우리의 일정이었다. 어디를 꼭 가겠다거나 뭘 꼭 보겠다는 목표는 없었지만 당최 세노테가 뭔지, 세노테 다이빙이 어떻길래 그렇게들 좋다고 하는지 궁금했다. 


대부분의 세노테는 플라야델카르멘 과 툴룸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우리처럼 세노테를 주로 가려면 플라야(델 카르멘을 빼고 줄여서 플라야)를 베이스로 잡고 움직이는게 효율적이다. 치첸잇사나 툴룸 같은 마야 유적지나 스카렛 Xcaret, 익스플로르 Xplor 등의 테마파크를 가려해도 어차피 플라야를 거쳐 간다. 칸쿤 호텔존과 플라야는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인데 이걸 모르고 오면 길에 버리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효율적인 면을 떠나서도 플라야가 장기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도시로 꼽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칸쿤보다 저렴한 물가, 편리한 생활환경, 여행자들이 만들어내는 자유로운 분위기, 표 찢고 눌러 앉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 이랄까.


세노테 바깥 풍경


플라야에 머무는 3주 동안 여러 세노테를 갔지만 나에게 강렬한 감동을 준 곳은 카워시라는 세노테였다. 원래 이름은 악툰 하 Actun Ha(마야어로 물동굴이란 뜻)인데, 도로 거의 바로 옆에 있는 세노테라 옛날 택시 기사들이 여기에 차를 세우고 물 길어다 세차를 했어서 카워시 Carwash 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곳에 일 년 이상 지낸 지금은 최애 세노테 순위가 바뀌었는데 첫인상 일등은 단연 카워시였다. 청량한 물빛으로 일렁이는 연못과 그 둘레를 애워싸듯 우거진 숲, 수영하고 점프하고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 유럽 영화에 보면 주인공들이 이야기하다 말고 훌렁 벗고 뛰어드는 그런 비밀의 연못 같은 곳. 물 밖에서도 연신 감탄을 하며 텐션이 오른 상태였는데 그대로 물에 뛰어드니 세상 이런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 지역 세노테들은 더위를 식히기에 적절한 수온 24-25도가 연중 유지된다. 첨벙첨벙 놀다가 수트 입고 다이빙 장비 착용하고 물속 세상으로 들어가니 거긴 또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같은 말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하는데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우주를 유영하다가 물속정원을 산책하는 느낌


칸쿤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던 카리브해와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의 인상이 점점 세노테로 덮어쓰기 되어갔다. 전 세계에서 여기에만 있는 독특한 형태의 세노테 다이빙은 다이버들에게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 가보겠지' 하는 로망의 다이빙 포인트라고 한다. 멕시코의 꼬리 유카탄 반도에 7천여 개의 세노테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세노테가 혼을 쏙 빼놓은 걸까. 급기야 세계여행을 미루고 칸쿤으로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마성의 매력을 지닌 세노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며칠밤을 세워도 모자라고 같은 곳을 수십 번씩 가도 갈 때마다 새로운 면면을 보여주는게 세노테인데 아직 한국에는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아서 내 마음은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예술적인 빛내림이 주는 영감은 늘 원동력이 된다


이런 CG보다 더 CG 같은 환상적인 풍경을 매일 보며 사는 삶에 늘 감사하고 있지만 플라야델카르멘 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사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를 준다. 사람에 따라 다른 부분이겠지만 한국에 살 때도 서울의 속도가 버거워 집을 파주로 옮기고 주말엔 산으로 들로 쏘다니던 우리였고 복잡한 강남보다는 좁은 골목의 작은 가게를 좋아했기에, 불편함 투성이지만 느릿한 이 곳의 일상이 소중하다.



구석구석 예쁜 우리동네, 플라야델카르멘


수도 파이프가 터져 옥상에 분수가 생겨나고 고장난 가전을 수리하려면 겨우 연락 닿은 수리공의 약속 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데(늦는 건 기본, 온다 하고 안 오는 때가 더 많다) 그것도 적응이 되어간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높은 건물은 물론 백화점 하나 없는 시골이지만 가끔 도시 냄새를 맡고 싶을 때엔 차로 오분 거리인 5번가로 나가면 된다. 살짝 과장 보태 이름 들어본 브랜드 매장은 다 있는 것 같은 전형적인 관광지 번화가인데, 우리가 사는 곳과 그리 먼 거리가 아님에도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플라야의 번화한 5번가와 비치 풍경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 보내려면 업로드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인터넷 환경은 한국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나름 디지털 노마드들이 살기 좋은 도시에 뽑히기도 한다. 캐나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구해놓고 11월에 내려와 5월까지 지내다 가는 곳인 플라야, 이 곳의 진짜 매력은 느린 걸음으로 구석구석을 여행할 때 비로소 그 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 현재 플라야에 여행이 아닌 거주 중인 한국인은 여덟명이다. 글재주가 없어 브런치를 꾸준히 해나가는 게 쉽지 않지만 지구 반대편 이 작은 도시,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함께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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