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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주 Sep 01. 2019

칸쿤 가서 뭐 하려고

멕시코 칸쿤에서 먹고사는 이야기


멕시코로 간다고 했을 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들 대부분 '칸쿤? 거기는 신혼여행 가는 곳 아니야? 거기 가서 뭐 하려고?'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실제 신혼여행 때도 가지 않았던 휴양지를 결혼 4년 차에, 그것도 한국에서 하던 일, 직장 다 정리하고 간다 하니 이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목적지에 대해 다들 궁금해했다. 요즘은 꼭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같은 곳이 아니어도 말레이시아, 파라과이, 몰타 등 다양한 나라로 이주해 살아가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멕시코, 그것도 칸쿤이라는 옵션은 여전히 생소했나 보다.


비슷한 질문은 여기에 살면서도 종종 받는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멕시코 사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너네 여행 중이 아니라 사는 거냐고 묻는다. 몇 번 마주치다 보면 동네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얘들은 대체 뭐지, 하는 얼굴로 여기서 무슨 일 하냐 묻곤 한다. 하루는 우리 동네 시큐리티 청년이 '너희 식당 나갈 때 차 좀 태워줄 수 있냐'고 부탁해왔다. 아직 에스빠뇰이 서툴던 나는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무슨 식당인지 되물었다. 그는 우리가 중국인들이고 이곳 시내에서 중국 식당을 운영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단다.


멕시코 칸쿤, 거기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플라야 델 카르멘 Playa del carmen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 이제 일 년쯤 되었다. 현재 이 곳에 여행 중이 아닌 거주하고 있는 한국 분들을 모두 꼽아도 열 손가락이 남는다. 그러니 한국의 지인들은 얘들이 거기 가서 뭐하려나 짐작도 어려운 게 당연하고, 이 동네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 꼬레아라는 나라에서 온 동양인들이 대체 뭐 해 먹고 사는지 궁금해할 만도 하다.






텐트 안에 엎드려 루트 짜던 시절

우리는 세계여행을 꿈꾸며 경기도에서 평범한 삶을 꾸려가던 부부였다. 편도 티켓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건 어릴 적부터 마음 한 구석 품어 온 나의 이상 중 하나였고, 연애할 때부터 몇 년 안에 둘이 함께 실행하고픈 목표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막상 결혼을 하고 생활을 꾸려가다 보니 둘이 마음을 맞추고 용기를 내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먹고 나니 못 할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예산을 잡고 대략 일 년에서 일 년 반 정도 여행할 생각으로 각종 서적과 블로그를 섭렵해갔다. 몸집만 한 배낭과 좀 더 친해지자며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백패킹을 다니고 틈만 나면 지도를 확대 축소해가며 루트를 그렸다. 한 달씩 살아보고 싶은 도시를 꼽다가 '이러다간 집에 못 오겠다'며 드러누워 맥주나 마시기도 했다.



멕시코 칸쿤에 대해서는 꽤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살게 될 곳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 달 살고 싶은 도시로 뽑아 둔 곳들은 태국 치앙마이와 빠이, 조지아 트빌리시, 인도 리시케시 같은 곳들이었는데 굳이 선호도를 논하자면 우린 잘 빠진 도시보단 조금 야생스러운(?) 소박함을 더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아주 가끔이야 고급진 호텔방의 구름 같은 침대나 맛있는 음식 가득한 라운지, 수영하고 누워 책 보고 그런 것도 물론 즐겁지만 대체로 밖에서 자는걸 둘 다 좋아한다. 그런 까닭에 배낭 안에 침낭에 매트며 텐트랑 의자, 경량테이블까지 넣어갈까 고민하던 마당이니 화려한 휴양지로만 알았던 칸쿤은 우리 계획에 있어 큰 비중 없는 목적지였다. 그저 인도네시아 라자암팟, 이집트 홍해와 더불어 '여행 중 다이빙해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일 뿐이었다. 칸쿤에 가면 세노테 동굴 다이빙을 꼭 해봐야 한다기에.


7월이면 몽골의 사막에 꽃이 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몽골을 시작으로 중국 거쳐 베트남 북부 사파로 들어갈 계획으로 알아본 몽골행 편도 티켓은 가격도 꽤 괜찮았다. 결제 버튼을 거의 누를 뻔했는데, 그때 그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지금 멕시코에 살고 있나 보다. 여행은 조금 미뤄졌지만.




뜨겁다 못해 타 죽을 것 같은 태양과 거짓말을 못할 것 같이 투명한 파란색 하늘. 그에 반해 아오리따ahorita (당장, 금방, 인제, 막 등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멕시칸들에게 지금 이후의 미래는 모두 아오리따다. 십 분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모르는 아오리따)를 입에 달고 사는 시간 개념 없는 멕시코 사람들. 특유의 흥과 순수한 미소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초록색 정글과 환상적이란 말론 부족한 세노테의 풍경들. 매일 먹는 또르따스, 허름한 로컬 식당 최애 타코와 매운 살사, 화끈한 아바네로 고추, 사과보다 흔한 아보카도, 독한데 향긋한 데낄라가 있는 일상. 한인마트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빨간 무로 담가 먹는 총각김치.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조금 긴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는 걸 보면 멕시코의 매력은 이제 시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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