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은 단지 그 출발선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로운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 있다. 누군가에 대한 마음의 움직임조차도. 그렇게 새로 시작된 입사 후 회사 생활은 많은 것을 리셋하고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듯하였다. 그녀에 대한 마음도 그러했던 것일까, 정신없이 지나간 한 달 여의 합숙기간, 이후 현업부서 배치, 이후 일정기간 면담을 거쳐 모이게 된 우리 동기 4명, 같은 팀의 신입사원으로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뭔가 서로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녀의 존재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외부 환경으로 인한 건지 나의 마음의 움직임인지, 운명적인 인연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의 마음과 눈이 자꾸만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는 것, 그래서 주변에서 알 수밖에 없어지는 그런 상황이 되어갈 뿐.
한차례 동기들과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나의 마음은 점차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쉬 못하고 나의 마음조차 읽기 어려운 내가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읽은
어떤 사람을 택해야 할까, 조건이 좋은? 아니면 마음이 가는? 나는 갑자기 가슴이 아니라 머리가 뛰기 시작했다. 둘 중 하나는 나를 염두에 둔 걸까, 나는 어느 쪽일까?
크리스마스 만남을 제안했지만 다른 만남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 이번에도 아닌가, 나만의 착각이었나 하는 절망이 크게 들고 그동안 나의 마음과 행동, 표현들이 갑자기 후회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작은 하나의 사실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고 기뻐하고 좌절하는 그런 나의 모습이 너무 맘에 안 들었지만 나의 가슴이 평온하고 안정되게 유지되기에는 지나온 시간에 담긴 소심하고 움츠러드는 일이 계속 쌓여왔기에 쉬이 바뀌기는 어려웠다. 그날 밤 다시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오빠, 당일날 말고 그전날 이브에 볼까? 우리.."
오빠라는 부름이 평소와 다르게 더욱 다정하게 느껴진 것은, 그래 당일날은 교회도 가야 하고 가족도 만나야 하는데 내가 너무 무리한 제안을 했던 거지라고 생각이 들은 것도, 이브에 만나자고 한 것도 - 나의 제안에 대한 다른 선택이 아닌, 그냥 이브에 데이트를 신청한 것으로 느껴진 것도, 우리..라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쿵하고 크게 뛴 것도, 나는 짧은 한 마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혼자서 벅차 가슴이 뛰었을 뿐이다. 다소 시끄러운 장소였지만, 그래서 약간 상기된 모습으로 보이는 그녀였지만 나는 쿵쿵 뛰는 심장이, 그 장소에서 틀어준 음악의 비트 때문으로 생각하고 숨을 한 숨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준비해 온 걸 내밀었다. 이제는 나의 마음도 조금은 단단해진 걸까, 아니면 진심이 크기에 그랬던 걸까, 나의 용기에 큰 힘을 스스로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 눈가에 살짝 맺힌 핑 도는 촉촉함을, 다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조금 더 확인이 필요했다. 감동인지 기쁨인지 아니면 다른 복잡함일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그녀에게 나는 선물로 건네준 목걸이를 손에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쿵쿵.. 뛰는 심장이 가슴과 어깨와 팔을 거쳐 손끝에서 가느다른 목걸이 줄에 전달되었고 가녀린 그녀의 하얀 뒷 목덜미에 고리를 채워주는 순간 나는 참고 있었던 숨을 겨우 조그맣게 내쉴 수 있었다. 그녀는 확실히 미소를 보내주었다. 눈가와 입가에 촉촉한 마음이 맺혀 있었다.
"오빠, 잠깐 나올 수 있어?" 뭔가 잘못된 걸까? 그 촉촉한 눈빛은 다른 걸 의미하고 있던 걸까? 역시 예상대로 그녀는 나에게 너무나 괴롭고 힘든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얘기했다. 미안함, 내가 너무도 수없이 들어왔고 더 이상 상대에게 주고 싶지 않은, 듣고 싶지 않은 마음 인다. 미안함은 감정이 아닌 이성적인 마음이다. 그녀의 마음이 아닌데 나의 마음을 알고 거절하기에 앞서 드는 마음이기에 나는 수많은 미안함을 이제 더 이상 듣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미안해했던 많은 사람들. 나에게 말하는 그녀의 얘기의 중심은, 나는 조건이 좋았던 쪽이었다는 거다. 아, 내가 잘못 말해준 걸까, 이제는 조건을 생각해야 하는 거라고 말해줬어야 했던 걸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 그녀는 그 사이에 번지점프를 하다는 영화를 봤고 영화 보는 내내 펑펑 울다가 마음을 정했고 나에게 털어놓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지만 다시는 그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나에게로 마음을 돌리게 하는 영화는 없었던 걸까.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 나는 나의 다짐과 달리 일 년 만에 그 영화를 다시 틀어봤다. 절실한 마음의 주인공들에서 떨어져서 따로 또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그 영화나 극 속에서 드러나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도 주인공으로 또 다른 아픔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저 나의 마음을 읽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