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정치서는 어떻게 대필작가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문홍주 한국대필작가협회 이사 sunmoonbooks@naver.com
궁핍하지만 약간의 보험을 들고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에서 비롯된 글이다. 모든 대필작가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글은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나는 내 입으로 나를 ‘고스트라이터’라고 소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대필작가’를 ‘고스트라이터’로 부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짧게 대필작가라고 말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 생각한다. 둘째, 대필의 본질을 왜곡하고 유령처럼 숨는 것 같아서다. 그렇다면 대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한 나의 견해를 먼저 밝히고 싶다.
대필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대필 일을 처음 경험한 것은 군대에서였는데, 신임 중대장이 중대 병사들의 부모님에게 보낼 서한을 쓰는 것이었다. 중대장 나름대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문예 계간지에서 소설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던 경력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중대장은 당시 상병이었던 나를 불러 글의 취지를 설명했고 쓸 수 있겠냐고 했다.
나에겐 어려운 글이 아니었고, 알겠다고 했다. 중대장은 그날 나와 함께 밤샘 근무를 서야 했던 중위에게 ‘중요한 글을 쓰게 하고 있으니 웬만한 건 네가 하고 시키지 말라’며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두세 시간 정도 나름 공을 들여가며 A4 한 장의 편지글을 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중대장은 내 글을 보고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이 글은 내 부모님에게도 우편으로 전달되었는데 어머니는 그 글을 보고 눈물이 날 뻔하셨다고 했다. 그 글이 내가 쓴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어머니는 폭소하셨다. 아버지는 스물다섯 살 무렵에 내가 쓴 그 편지를 여전히 가지고 계신다.
그때의 경험 때문일까. 아마추어 대필작가로 시작해 대필작가협회 이사 직함을 걸고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대필작가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글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세상에는 대신해줘도 되는 문제가 있고, 대신해주면 안 될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논문, 취업 자기소개서, 신춘문예 등이 그런 영역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가가 필요로 하는 정치서를 대필작가가 대필해 준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보는 쪽이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제가 없다고? 방금 내가 한 말을 정확히 다시 봐주길 바란다. 나는 문제가 ‘없다’라고 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묘해 보이지만 두 문장은 전혀 다른 뜻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한가?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A시 시장 출마자에게 대필 의뢰를 받다
내가 전문 대필작가로서 활동하면서 정식으로 처음 정치인의 정치서 원고를 의뢰받은 것은 2018년도의 일이다. 경기도 내 A시에서 시장출마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W라는 남자였다. A시는 지하철이 직결되지 않은 곳이었기에 가장 가까운 P시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뒤,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가야만 했다. 따라서 약속 시간을 맞추려면 세 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했다. 지금도 나와 동업하고 있는 친구가 동행했다. 내가 처음으로 정치인 원고를 맡는 것이었기에 나를 지원해주겠다며 기꺼이 함께 간 것이다.
처음 도착한 A시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꺼진 신호등이었다. 말 그대로 모든 신호등이 꺼져있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이 의문은 당시 임시선거사무소로 쓰이고 있던 빌라에서 선거대책본부장쯤으로 추정되는(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의 역할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남자를 만나면서 쉽게 풀렸다. 미간과 왼쪽 눈썹 사이에 툭 튀어나온 큰 점이 있었는데, 편의상 그를 ‘점박이’라 부르겠다.
한 사람만 지나가도 건물 계단이 꽉 차버리는, 작은 빌라의 2층 201호에 임시 선거사무소가 차려져 있었다. 시장 출마자 측 관계자 두 명(오모 씨, 점박이), 대필작가 측 관계자 두 명(나, 동업자)이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점박이가 갑자기 “오다가 신호등이 꺼져있는 걸 보셨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등이 고장이 난 거냐고 물었다. “아뇨, 어차피 이 동네 토박이들은 길을 다 아니까. 알아서 피해 가요. 신호등이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그냥 꺼놓는 겁니다.” 여기 처음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묻자 그가 끼룩대듯 웃긴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죠. 처음 여기 와본 사람들은 운전하기 난감하죠.”
농담이라고 하는 건가? 그래, 웃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피식 웃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개그 코드인 듯했다. 아무튼 점박이는 후보자가 어렸을 때부터 돼지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왔다고 했다. 그들은 후보자가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훌륭한 사람이라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했다. 그러면서 ‘딱딱하지 않게, 재미있는 책을 만들면 좋겠다’라고 했다. 나는 대필 일을 하면서 이런 말을 내뱉는 의뢰인을 경계하는 편이다. 이런 일은 좋지 않게 돌아간다. 왜냐하면 딱딱함의 기준이나, 재미의 기준이라는 건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마침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당내 경선 후보였던 경쟁 후보자의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레퍼런스 삼아 책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쪽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일은 그렇게 진행되는 듯했다. 첫 번째 미팅에서는 출마 후보였던 W씨를 만나지 못했고, 두 번째 미팅 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에 문제가 생기다
한 번의 인터뷰 이후로는 W 후보자의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추가 인터뷰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일이 잘되지 않을 거란 직업적 감이 왔다. 일단 A시의 현안들을 최대한 조사해 문제가 될 내용이 없는 무난한 글을 써서 보내줬다. 당시에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계약서를 쓰지 않았는데, 후보자를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고 뭐 하나 확정된 것이 없었기에 나도 계약서를 쓰는 것을 일부러 미루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점박이’는 내가 보내준 원고가 ‘하드보일드하다’라며 원고 내용을 문제 삼았다. 그는 하드보일드의 뜻을 제대로 알고나 있던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한 번밖에 인터뷰를 안 했는데 더 인터뷰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된 원고, 출장비 등과 관련된 비용에 대해 이제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그쪽’에서 지불해 주셔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어디다 대고 그쪽이냐!”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 싸우지 않는다. 친절한 목소리로 “그쪽이란 말이 기분이 나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럼 뭐라고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점박이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선 다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돈을 떼어먹히게 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직업적인 경험이 여러 번 있던 나는 분노하기보다는 하드보일드하게 이메일을 보내 지금까지 쓴 원고를 무단 사용하거나 표절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를 보냈다.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며 인터넷에서 잠복했다. 얼마 후 W 후보가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기사가 지방 인터넷 신문 기사에 떴다. 내가 원고를 못 썼는데 어떻게 원고가 나온 거냐고? 내가 쓴 글을 그대로 가져다가 표절을 했든지 아니면 다른 작가를 투입해 완성시켰을 것이다. 이쪽에선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걸 주변의 대필작가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P시에서 살고 있는 내 친구 S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A시 시장 후보가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하는데 A시에 축협과 관련된 친척(당시 W 후보는 축협 조합장이었다)이 있냐고 물어봤다. 마침 S에겐 축협 조합원 친척이 있었다. 나는 그 책자를 친척을 통해 구해달라고 했다. 왜 이렇게 했느냐고? 후보자의 책이 나오면 교보문고 등에 깔리지 않느냐고? 당신은 이 바닥의 현실에 대해 전혀 모르기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책들은 선거법에서 허락되는 기간 내에 출판기념회에서 전량 소진되고 사라지는, 정말 극단적으로 생명력이 짧은 책이다. 어느 서점에도 판매되지 않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정치인들의 정치서는 그중에도 제법 공을 들여 살아남은 것이다. 정치 바닥에는 이런 폐기물 같은 책들이 네스호의 괴수처럼 머리만 드러내곤 빠르게 사라진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댁 서가에 이런 정체불명의 책이 꽂혀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찾았다면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축하한다. 당신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쓰레기를 얻었다.
자, 본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어렵게 친구 S의 친척을 통해 얻어낸 W 후보자의 책 내용은 역시나 난장판 그 자체였다. 후보자를 알리기 위한 책인데 후보자의 이야기는 대략 50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고, 점박이의 관점에서 적어놓은 W 후보에 대한 인물평이 전부였다. 다행히 내가 쓴 글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W 후보는 어떻게 됐을까? 당선됐다. 그는 A시 시장으로 당선됐다. 씁쓸한 결말인가? 아직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다. W 후보는 시장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자신이 지고 있던 40억가량의 빚을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아 당선무효형이 확정됐다.
미리 말해두지만 W 후보에 대한 어떤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는 점박이와 나 사이에 어떤 분쟁이 있었는지 전혀 모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단면을 보게 됐다. 기묘하게도 정치는 순리에 따라 돌아간다. 당장은 기회주의자가 성공하는 것 같아도, 먼 길을 돌아가긴 해도,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 A시의 명물인 꺼진 신호등처럼, 언젠가는 제 역할을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나에게 시니컬하다고 말한다.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 회색인에 가깝다. 도대체 이 글의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주면 고맙겠다.
대필은 우리 세상이 굴러가는 하나의 모습
세상의 모든 글이 진실을 담보하는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우리도 알고 있다. 정치인의 정치서란 십중팔구 마케팅용이라는 걸 말이다. 많은 사람이 이제는 책이 가진 약효에 그렇게 쉽게 취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인의 책을 대필작가가 대필한다는 것에 대해 이런 글이 후보자의 능력을 과장하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서 진실을 호도하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 극단적인 예시긴 하지만 히틀러의 『나의 투쟁』처럼 악용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히틀러의 그 책은 히틀러가 구술하고, 그의 수하였던 루돌프 헤스가 쓴 일종의 대필로 만들어진 책이다. 우리는 흔히 이 책이 히틀러를 널리 알리게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히틀러 집권 이후 비로소 팔리기 시작했고, 당시로서는 잘 팔리지 않았던(첫해 판매량이 9473부 정도였다) 흔한 정치인 자서전이었다.
전시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전쟁 전에 히틀러에게 자기가 아직 『나의 투쟁』을 읽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자, 히틀러 본인이 “내용이 횡설수설하고 부끄러우니 절대 보지 말라”며 강하게 만류했을 정도다. 그의 목소리를 전 세계로 퍼 나른 가장 강력한 도구는 책이 아니었다. 라디오와 선전 영상이었다. 오늘날에는 이 역할을 인터넷의 가짜 뉴스들이 하고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책과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하다. 당신의 경향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런 걸 원하냐며, 원하는 것만 보게 해준다. 결국은 확증편향을 부추긴다. 평소 들어가지 않던 채널을 유튜브에서 기웃거리다 보면 알고리즘이 어느 순간 처음 보는 채널을 추천해주는 것을 다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일이 그래서인지 자주 유튜브가 나에게 소위 극우 방송 유튜브를 추천해주고, 나는 이를 차단하는 일을 빈번히 겪는다. 자,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대필작가에 의해 저술된 정치서인가?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돌아다니는 극우 방송인가? 인정해야 한다. 책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없다. 반면 글은 여전히 힘이 있다. 그렇기에 주목받지 못한 정치인, 중고 아이돌 같은 정치인, 아무도 모르는 잡초 같은 신인 정치인은 어쩔 수 없이 책을 쓰게 된다. 심지어 몇몇 정치인은 대필 일을 의뢰받아 찾아온 나를 앞에 두고 “요즘 누가 책을 보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놓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도 알고 있다. 요즘 말로 ‘넘나 하기 싫은 책쓰기’다. ‘당선되고 싶지만, 책쓰기는 죽고 싶은 것’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님, 저의 저질스러운 패러디를 용서하십시오.) 그리하여 정치서는 계속해서 누군가에 의해 대필되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희극이다. 이렇게 우리 세상의 한 축이 굴러간다.
- <기획회의> 2022년 553호 기고글
- 교보문고 : 기획회의(2022년 5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