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2일 개봉되어 1,3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서울의 봄을' 지난 추석 연휴 동안 TV를 통해 뒤늦게 감상하게 되었다. 내용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영화 속 인물들이 상당수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막상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화면으로 펼쳐지자 정의가 추락하며 대신 그 자리를 불의와 권모술수가 자리 잡는 걸 보며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18년간 강압통치를 하던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자 권력 순위에 들어가지도 못하던 극중 인물 '전두광'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으며 갑자기 실권자로 부상한다. 그는 군내 비공식 조직 '하나회'를 등에 업고 갖은 방법을 총동원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당시 계엄사령관은 군인이라기보다 마치 정치인과도 같이 월권을 일삼던 전두광을 좌천시키려 하다 도리어 역습을 당한다.
전두광과는 달리 투철한 국가관과 정의감으로 참군인의 길을 걷는 극중 인물 '이태신'은 수도경비사령관직을 맡아달라는 총장의 권유를 고사하지만 하나회로 인해 무너지는 군내부의 질서 재확립을 호소하는 총장의 청을 결국 받아들인다.
그 후 스토리는 총장 납치를 필두로 쿠데타를 기도하는 전두광 측과 이에 맞서는 이태신측간의 총격전이 벌어지지만 최전방을 지키는 병력까지 동원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전두광 측에 겁을 먹은 군수뇌부의 우유부단함과 무능함으로 인해 판세는 전두광 쪽으로 기울고 전두광은 권력을 드디어 손에 넣게 된다.
이상의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12.12사태의 스토리이다. 나는 그 정변은 권력의 찬탈로 이어졌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무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새 시대'란 말과 "성실한 사람만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구호하에 각종 사회개혁에 착수한다. 하지만 당시 80년 초 대학을 다니던 이들은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까지 학살했던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하며 화형식까지 거행하였다. 당시 5공 정치권은 운동권 학생들을 좌경분자라 몰아붙이며 강제징집에 나섰다. 이렇게 징집된 이들은 군에서 동료들이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훈련은 기본으로 받으면서 구타까지 동원된 보안사 조사와 더불어 심지어 노동현장 및 학내 관련 동향보고의 책임을 떠맡으며 프락치활동까지 강요받게 됨에 따라 그중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러한 살벌한 세상이다 보니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권력자와 주변 정치인들을 '독재자'와 '추종자'로 받아들이며 민중혁명을 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야학과 위장취업 등을 통해 노동운동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과는 달리 억압과 강요로 유지되던 독재정권을 대다수가 싫어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참고 지냈지만 당시 운동권은 뭔가 자신들만의 해답을 다른 어디선가에서 찾으려 했던 건 같다. 그게 어디였을까? 노동계에서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김영환을 비롯한 몇몇이 문을 두드린 곳이 휴전선 너머 북한이었다. 우연히 이들이 탐독하던 서적을 보게 된 누군가는 표현이 남한의 서적과는 달랐기에 물 건너 일본의 조총련에서 나온 것인가 했지만 실제로는 북한에서 내려온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반정부적인 활동을 했던 이들이 5공보다 더한 북한의 1인독재 정치를 찬양하기만 하는 '주사파'들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 하지만 3공이 끝나고
가짜가 아닌 진짜 서울의 봄이 왔다면 현재와 같은 일부 정치인들의 북한 찬양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최악의 인권 탄압국 북한에 대해 비판 한마디 없이 찬양일색인 주사파출신 일부 정치인들을 보며 이들이 어쩌다 저렇게까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나마 찾게 된 것 같다. 반세기도 지난 정변은 정권찬탈뿐 아니라 당시의 주역들이 고인이 된 현재에도 치유가 불가할 정도의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한번 더 경악을 금지 못한다. 그래서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