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잘났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법정스님(1932~2010)의 '무소유'란 책에는 인도철학에 나오는 두 가지의 단어가 소개된다. 하나는 우리말로 '지식'에 가까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에 가깝다. 논리적으로 비교해서 어떤 게 나은지 등을 따지는 건 무척 하찮은 단계라는 것이다. 그러한 범주를 넘어서면 각기 상이한 것들도 포용되고 하나로 통일되는 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얄퍅한 두뇌에만 의존하며 손해보지 않는 길로만 간다면 제자리걸음 혹은 퇴보할지도 모르지만 포용과 통일이란 변화를 가져오는 지혜가 있다면 더 훌륭해질 수 있을 것이다.
'소수 자본가에 의한 부의 집중'과 '노동력 착취'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노동자들의 혁명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공산주의'이다. 하지만 원 취지와 달리 혁명을 위해 폭력이 정당화될 뿐 아니라 개인소유가 없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져 결국 몰락하는 게 공산주의였다. 이 두 가지 체제는 둘 다 문제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과 이상적인 측면을 나름 조화시킨 새로운 체제가 탄생 날이 오리라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단절보다는 포용 또한 하나가 되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를 지혜라 불러야 하지 않나 싶다.
학창 시절 성적이 우수하여 명문대학에 진학했던 친구들 중에는 문제아 취급을 받는 친구들과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대개 모범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는 '태수'라는 속칭 문제아의 친구로 '우석'이란 모범생이 등장한다. 우석은 공부를 잘했지만 늘 태수랑 함께 공부하며 명문대 법학과에 진학한 반면 태수는 일찍 모친을 여의고 학교도 중퇴한 채 건달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둘은 계속 쉽지만은 않은 우정을 이어간다. 그러다 둘은 검사와 범인으로 만나게 되고 우석은 태수에게 결국 사형을 구형한다. 무척 비극적인 스토리이긴 하지만 둘은 학창 시절 때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비록 상반된 길을 갔는지 모르지만 서로를 이해하며 지냈고 때로는 질책까지 하면서도 서로를 품어주는 초현실적인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 독선이 아닌 포용을 통해 하나로 합치되는 인간의 모습이기에 아름답고 향기롭기만 하다. 이들은 감히 지혜로웠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으리라 보인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끝없이 학문에 매진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인간은 지식을 습득할수록 지식의 벽에 갇혀 현명하기보다는 배타적이거나 심지어는 독선적이게 되는지도 모른다. 학문 분야별로 가장 높은 경지라는 '博士' 란 말의 '博'은 넓다는 의미이지만 학문이 고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지식의 영역은 오히려 좁아지기에 박사가 아닌 '狹士'가 되는 것이다. 또한 학문적 경지가 올라갈수록 인간은 성숙하기보다 권위적이거나 오만해지기도 한다. 밤잠 자지 않고 이룬 학문의 경지이기에 자기 정도가 되지 않는 사람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각종 정보와 전문 서적이 흘러넘치는 현재이지만,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과거 못 살고 지적 수준도 떨어지던 때보다 과연 나은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생활수준은 올라갔다고 하지만 고상하기보다 파렴치하거나 지저분한 일들이 마구 벌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리된 이유는 과연 뭘까? 물질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향락주의가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현금이 통장에 가득 차 있으면 누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희한한 세상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로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 비록 자신의 일은 아닐지언정 슬퍼하며 마음속으로 뜨거운 눈물조차 흘리는 이가 없다면 이를 어찌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 모름지기 돈맛에 푹 빠지다 보면 그런 일에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돈이 있고 생활이 안락해질수록 인간은 오만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게 있다면 돈이나 향락보다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혜롭기 위해 우리는 과연 뭘 해야 하는 걸까? 첫째,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하리라 보인다. 이렇게 혼탁하고 물질적인 세상에서 진정한 기쁨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 보면 저마다 해답이 나오리라 보인다.
둘째, 더 크고 높은 곳을 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만을 앞세울 경우 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너 따로 나 따로가 아닌 우리라면 1+1이 2 이상의 시너지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남에 대한 배려심이다. 자기를 자꾸 우선하다 보면 남들과의 관계가 적대적일 수 있다. 자신이 남을 배려하고 그 답례로 남까지 자신을 진정 배려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눈에 보이는 천국도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