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메고 정상을 올라가는 산행과 인생은 유사한 점이 꽤 많다. 경험이나 능력은 없으면서 의욕만으로 배낭에 온갖 걸 다 집어넣다 보면 고생만 할 뿐 제대로 된 산행을 하기 어렵다. 가방을 가볍게 하고 체력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하며 정상까지 별 무리 없이 올라갔다 하산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욕심만 부린다면 고생만 진탕하고 몸이 따라주지 못하면 결국 중도에 산행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등산이든 삶이든 목표나 성과에 모든 걸 걸기보다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 현명하리라 보인다. 즐겁게 일을 한다면 일도 무리 없이 진행되고 결과도 좋을 수 있기에 그러하다. 산행도 결국 정상을 향하는 거지만 정상 정복만이 다는 아니다. 계곡의 물소리나 새소리도 듣고 단풍 든 산의 아름다운 경치까지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인데 오로지 정상만 머리에 둘 경우 등산이란 게 헬스장을 산에 옮겨놓고 운동을 한 것에 불과하다. 하산해서 함께 산행한 이들과 막걸리를 한잔 하는 것도 산행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삶은 산행과 비슷하지만 삶을 즐기는 일이란 게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 대개 정상이라 할 수 있는 40대 중후반까지 앞만 보고 달리다 때가 되면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모든 걸 내려놓을 때가 되면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다. 아직 자녀들이 완전히 독립하지 않은 상태이고 노후준비도 제대로 해놓지 못했다면 마음이 불안해 몇 푼이라도 벌고자 밤낮을 가릴 여유조차 없다. 환갑 나이가 되어 주변을 둘러보면 큰 회사의 대표와 대학교수를 비롯해 개인 사업자 정도만 현업에 있을 뿐 나머지는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다.
어차피 삶의 행로는 정상까지 갔다가 하산하는 산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이토록 마음의 여유라고는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주머니에 돈이라도 넉넉하다면 한평생 편안할지 모르지만 돈 이외에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일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한평생 살다 떠나는 삶이란 여정에서 큰 과오없이 살다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주변사람들로부터 박수받을 정도는 될 것이다.
살면서 앞만 보지 않고 옆이나 뒤까지 보면 나 자신이 진정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은 가정환경과 성격에 기질까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보면 과연 어떤 요리가 가능할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두뇌가 뛰어나고 혼자 하는 일에 충실한 이라면 학문의 길이 또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개인사업이나 직장생활 등 자신에게 맞는 삶의 대안들이 있다. 만일 자질과 포용력 그리고 배포와 스케일까지 갖춘 이라면 정치나 사업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두뇌는 좋지만 게으르거나 노력하기 싫어하는 이가 학자가 된다면 자신이나 제자 모두 불행해진다. 또한 자질이 떨어지면서 노력만으로 학자의 길을 가려해도 한계가 있기에 이 경우는 눈높이를 낮춰 자신에게 알맞은 일을 찾는 게 맞을 것이다. 자질과 포용력뿐 아니라 정의감을 바탕으로 반대 입장의 이들과도 의사소통과 타협을 통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이라면 정치가가 될 자격이 있다. 하지만 학벌이나 집안배경을 등에 업고 독선과 아집으로 목소리만 높이는 이가 금배지를 가슴에 달 경우 결국 지탄만 받게 된다. 머리만 좋고 정의감이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또 하나의 이완용이 탄생할 수 있다. 자기와 자기 자식만 배 터지게 먹고 남들은 굶기면서 결국 자자손손 손가락질까지 받게 된다.
이렇게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와 어깨를 누르는 배낭을 내려놓으면 나름 삶에 대해 한마디를 할 정도는 되리라 보인다. 고뇌 속에서 결코 짐을 내려놓지 않은 채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할 때 바라보는 일몰의 모습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모습만큼 아름답다. 누가 비록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는 나의 삶에 감히 침을 뱉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