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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Nov 08. 2023

2. 죽음이라는 기이함을 위한 처방

죽음이 거대한 축제의 폐막식이 되기를

루님에게,


꿈을 자주 꾸시나요? 저는 종종 꾸는 편입니다. 그러나 꿈의 내용을 기억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방금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급 반장이었던 친구의 죽음에 관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 역시 스쳐 지나가듯 금세 잊힐 꿈이었는데, 왜인지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잊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명상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꿈속에 나온 친구와는 별다른 인연도 없었을뿐더러 대화를 나누어 본 기억조차 흐릿한데, 어찌하여 제 무의식의 공간에 출연하게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또 다른 특이했던 점은, 저는 그녀의 죽음의 순간을 목도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녀와 그녀가 가졌던 관계의 대상들이 그녀의 죽음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은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었고, 무슨 까닭에서인지 그녀는 관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죽는 날 오전,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하고자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극장 같기도, 커다란 교회의 예배당 같기도 한 조명이 꺼진 공간에 그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 관한 영상을 1시간가량 함께 보았고,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영상이 끝난 후,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양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후엔 점심시간이 있었습니다. 각자 싸 오거나, 어디선가 사 온 음식들로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그녀의 친구 몇 명은 매점 같은 곳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기로 했습니다. 매점은 사장을 포함해 3명이면 꽉 차고, 5명은 겨우 들어가 옴짝달싹 못 하는 정도의 크기였고, 여기저기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제 왼편에 서 있던 친구는 짙은 녹색 병에 담긴 맥주를 마시고자 했는데, 시원한 맥주가 없다고 하여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약간의 허기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런 의사를 내비치자, 오른쪽에 서 있던 누군가가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나무 문을 열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전구 하나가 거울 앞 위쪽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어두컴컴하고 습한 화장실 내부를 뿌옇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사람은 좁은 화장실 세면대와 그 위의 더 좁은 선반에 나란히, 위태로이 올려져 있던 접시 두 개를 가리켰습니다. 진한 갈색빛의 진득한 소스가 올라간 고기 요리였습니다. 허기가 참을 수 없어짐과 동시에 식욕이 떨어졌습니다. 허기짐만 가라앉혀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계산대 밑 투명 아크릴로 어설프게 생성해 놓은 공간에 몇 가지 과자류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동그란 은박 접시 위에 갈레트 브루통과 황금 풍뎅이 중간쯤으로 생긴 과자 하나와 검정 병에 담긴 맥주를 구매했습니다. 왼쪽의 친구는 주인이 어딘가에 감춰놨던 시원한 맥주를 성가신 얼굴과 함께 내어준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매점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매점 옆 공간에서 그녀의 입관이 치러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매점과 그 공간은 2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독특한 구조와 분위기를 지닌 공간이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공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게 됩니다. 큼지막한 계단들이 아래로 향하며 놓여 지상층에서 끝이 나고, 계단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통창을 통해 보이는 목가적인 자연 풍광입니다.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어 미술관 내 전시장이나 강연실 같은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그녀의 관은 통창 너머 다양한 종류의 꽃들을 둘러싸고 있는 연고동색 갈대와 바람 속에 고요히 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공간에서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을 맞이할 터였습니다. 저는 또 다른 그녀의 친구에게 입관이 몇 시냐고 물었고, 친구는 4시라 답했습니다. 이에 “그때까지 기다려야겠지?”라고 재차 물었고, 친구는 그녀의 마지막임을 강조하며 조금 꾸짖는 듯한 어조로 대꾸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서둘러 덧붙였습니다. 그녀가 곧 죽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그렇다고. 여전히 저기에 살아 있으니까.


그러고는 돌연, 마치 제가 그녀가 된 듯한 시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반려견과 함께 계단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베리아허스키와 골든레트리버가 섞인 듯한 종이었는데, 긴 털의 보드라움이며 언제나 인간의 것보다 따스한 온기며 그런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느껴졌습니다. 일순간 온 감각이 평온해졌습니다. 그러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옆집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며, 의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잠에서 깬 후에도 그대로 누워 무의식이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고, 그녀에게 제 바람을 투영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죽음이 삶이라는 거대한 축제의 폐막식이 되기를. 삶의 마지막 장면이 고통과 울음이 아닌 고요와 온기를 담은 예술 작품이 되기를.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고통과 함께 오랫동안 나를 기억해 주기를.


제 꿈이 제게 보내온 메시지는 이러했습니다. 루님은 어떤 죽음을 꿈꾸시나요. 기꺼이 제게 나눠주시면 루님에 대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청량한 하늘빛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들을 면면이 떠올리며 헤이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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