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접도(猫蝶圖)>
첫 그림 의뢰가 들어왔다. 미국에서 어렵게 박사를 따고 그곳에서 교수 임용까지 성공한 지인의 의뢰였다. 요즘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고 하니 고양이를 그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은인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그 은인은 고양이를 5마리나 키우는 애묘인이란다.
나 미국 가려고 해. 성준이 데리고.
코로나가 터지기 전, 나의 게으르고 더딘 영어공부를 봐주던 언니가 갑자기 생업을 접고 초등생 아이와 함께 미국 유학을 간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언니에게 멋지다, 잘 될 거야 응원해 주었지만 당시엔 내심 걱정이 더 컸다. 20여 년 해오던 일을 접고 40대 중반에 박사라니! 오랜 세월 손 놓았던 전공도 낯설고 어렵지 않을까? 우리 나이에 낯선 곳에 가서 애 데리고 고생스러울 텐데… 왜 저렇게 불투명한 일에 뛰어드는 거지?? 나의 이런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착착 유학 준비를 해나갔다. 전공 공부도 시작하고, 학교에 지원도 하고 인터뷰도 봤다. 그렇게 어느 날 훌쩍 언니는 정말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의 다사다난한 시간만큼 미국에서의 시간도 흐르고 흘렀다. 언니는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프로젝트로 바쁠 때는 교수님 댁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5년을 갈아 넣은 박사과정이 드디어 끝나는구나 했던 바로 그때, 뜻밖에도 논문 심사에서 지도교수가 딴지를 걸고 나섰다. 연세 드신 교수님께서 일 잘하는 언니를 쉬이 놓아주기가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언니는 이의를 제기했고 급기야 학교에서 중재위원회까지 열렸는데 그 위원회의 의장이 바로 언니의 은인이었다. 의장은 교수의 트집과 갑질에 가까운 문제 제기와 무리한 요구를 들여다보고 언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언니와는 아무 관계도 없던 외국인이었지만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준 그분께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자칫 학위도 취직도 물거품이 될지도 몰랐던 그 시간 동안 언니가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을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잘 알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첫 그림 의뢰를 수락했다.
먼저 사진을 요청했다. 그분이 가장 사랑하는 고양이를 가장 사랑스럽게 그려주고 싶었다. 세상에, 미국에서 날아온 고양이 사진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러워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하나같이 눈을 감고 있는게 아닌가. 이 아이들이 눈을 떴을 때 어떤 모습인지 상상에 맡겨야 하다니. 핀터레스트를 뒤지고 또 뒤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얼굴을 한 고양이를 찾아서 반짝 눈을 뜬 고양이로 만들어주는 작업. 얘들아, 제발 눈 좀 떠보렴.
고양이는 요물이라더니, 딱 그랬다. 최대한 비슷한 모습의 고양이를 찾아 헤매며 모니터 속 수백장의 고양이 사진을 클릭하는 사이, 난 이미 고양이라는 생명체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도도했다가, 천진해보이기도 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이었다가, 이내 또 세상 일에 아무 관심 없는 무심한 얼굴이기도. 고양이를 찬양하는 이들의 심정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 차려야 한다. 고양이 사진을 찾아보며 힐링하는 여유는 천천히 누리도록 하자. 지금 나는 의뢰 받은 그림을 기한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작업자니까. 정신차리고 한 녀석을 골라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 초보라 털이 있는 동물은 처음이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 속 고양이를 화폭에 옮겼다. 고양이와 함께 복숭아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도 두 마리 그려 넣었다. 민화에서 고양이와 나비가 함께 노닐고 있는 그림을 고양이 묘(猫), 나비 접(蝶) 자를 써서 묘접도(猫蝶圖)라 한다. 고양이의 ‘묘’와 나비의 ‘접’이 각각 중국의 70 노인을 뜻하는 한자 ‘모(耄)’와 80 노인을 뜻하는 ‘질(耋)’과 발음이 유사해서 장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민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주로 사람을 지켜주는 영물로 액운을 쫓고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네 삶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 잘 나가던 커리어에 위기가 오거나 사고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와 싸워야 하기도 한다. 오랜 실패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를, 아픔으로부터 지키고 싶다. 그저 평안히,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두려움과 간절한 소망이 붓질 하나하나에 담긴다. 담담한 황토색으로 몸을 칠해주고 털을 치기 시작한다. 갈색 줄무늬와 흰털, 수염이 점차 드러난다. 야무지게 앙다문 입과 쫑긋 세운 귀도 핑크빛으로 물들여준다. 먹음직스러운 복숭아와 향기를 머금은 복숭아꽃, 나풀나풀 춤을 추는 나비와 함께 붓도 춤을 춘다. 한껏 흥이 난 춤사위 끝에 어느새 두 눈을 반짝 뜬 위풍당당한 고양이를 마주했다. 그림을 앞에 두고 한참을 바라보다 왠지 모르게 울컥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그런 나를 말없이 그 강렬한 두 눈으로 응시할 뿐이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고양이가 된 그림은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에필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