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나에게 남긴 메모
어쨌든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돌아간다는 것
그래서 속절없이 허무하면서도,
생각보다 편히 살아도 된다는 것
과감히 나를 바꿔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마음껏 변화를 주어도 꽤나 괜찮다는 것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그 모습이 새로운 활기를 실어준다는 것
보다 넓은 삶의 테두리를 보게 된다는 것
삶에 던져진 파동의 끝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
어디에 서있는지 순간을 조망하게 된다는 것
아픈 날을 마주해야 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
그걸 딛고 다시 일어서는 신비한 생명이기도 하다는 것
외로운 개인에 불과한 걸 상기시키는 것
그 외로움을 못이겨 결국 모두를 내친 것일뿐이라는 것
모든 결과는 내면에서 시작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만 된다는 것
'숨만 잘 쉬면 돼' 가 아직도 유효한 생존지침이라는 것
문제는 왜가 아닌 어떻게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과거는 지난 확신들이 쌓인 판축임을 발견한 것
이를 딛어야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는 것
그때 비로소 웃음이 핀다는 것
생각보다 나는 꽤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사랑에 진심이라는 것
채우는 재미를 꽤나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몇달이 지난 뒤 머리에 남은 건,
삶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상실이 끊어트린 정점에서 벗어난 그곳은
허공이 아니라 모두 삶이라는 것
그저 최선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
마치 봄을 기다리는 졸린 눈의 겨울개구리처럼
계절이 도래함을 아는 모닥불 앞 선구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