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낭만어부》에게
열광할까?

낭만어부가 보여준 <삶의 진정성>과 <캐릭터>에 열광하는 대중

by 무궁무진화


선장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다큐 3일 PD는 선장에게 꽤나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고석길 선장의 얼굴은 지난 세월의 아픔으로 가득해 보였다.



왜 또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십니까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있잖아요,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던, 아픈 꿈을 가진 낭만어부는

<낙화>와 <사모> 의 시구절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이형기 <낙화 > 中 -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 조지훈 <사모> 中 -




1. 《낭만어부》 의 폭발적인 인기 : 캐릭터와 밈의 탄생


수없이 바다에서 되새기지 않았다면 읊지 못할 고석길 선장의 시구절 클립은 무려 1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수천 개의 댓글은 선장의 낭만에 존경을 표했고 누군가는 클립에 음악을 덧입혀 노래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노래'로 전파된 낭만어부는 연령에 상관없이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비트와 믹스된 낭만어부 클립들은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백만 조회수와 댓글 수를 자랑한다


순식간에 고석길 선장은 《낭만어부》 라는 캐릭터로 통용되었고 유튜브 상의 유저들은 낭만어부를 패러디하는 영상을 제작하였다. 이후 SNL코리아는 《낭만기자》로, 서브웨이 광고는 《새우어부》로 낭만어부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즉, 미디어는 낭만어부를 향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니즈를 캐치하여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니즈에 민감한 미디어와 광고계는 낭만어부 캐릭터에 관심을 가지고 상업적 활용을 시작했다




2. 우리는 왜 《낭만어부》 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왜 《낭만어부》 고석길 선장에서 열광하는 것일까?

구체적으로, 우리는 《낭만어부》 캐릭터를 통해 어떤 감동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이러한 요인을 콘텐츠의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1) 세상살이에 꿈을 잃지 않은 '어부시인' 고석길 : 주체적 삶의 태도에서 오는 진정성


대중은 고석길 선장이 몸소 보여준 주체적 삶의 태도에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던 소년은 수십 년을 바다 위에서 오징어도 잡고 문어도 잡다가 어느덧 나이 든 중년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행적에 대중은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 품었던 자신만의 꿈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세상을 알아가고 현실과 타협하며 결국 생업을 위해 원치 않은 일을 하며 어릴 적 꿈을 잃은 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게 기대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고석길 선장은 풍랑에 시를 향한 마음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늙은 육체를 지닌 소년은 한평생 바다 위에서 온몸으로 시를 되새겼다. 얼마나 숱한 세월 동안 시를 되새겨 냈을까, 고석길 선장은 3분 남짓한 영상 클립 속에서 한 자의 틀림없이 정확하게 두 개의 전혀 다른 시 구절들을 읊어냈다. 비록 그의 발이 딛고 있는 곳이 바다 한가운데 일지언정, 고석길 선장은 자신이 꿈꿔온 시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인생은 시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비록 그는 자신을 초라하다고 느끼지만 보는이는 그에게서 낭만을 읽어낸다


대중들은 이러한 고석길 선장의 삶에서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누구나 꿈은 꿀 수 있지만 모두가 그 꿈을 이루긴 어려우니까'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기엔 고석길 선장의 삶은 너무나도 명징했다. 육체적으로 그보다 상대적으로 덜 힘든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고석길 선장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원치 않았던 가혹한 현실일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무언갈 놓지 않고 평생을 함께 가져간다면 어느덧 꿈꿔왔던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가슴벅찬 뭉클함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고석길 선장은 '발 딛는 장소와 상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우. 평생을 놓지 않고 함께 가겠다는 그 마음만 확고하다면, 낭만 가득한 멋진 삶이 될거우.'라고 우리에게 전하는 것만 같다.

현실에 아랑곳 않고 진정성으로 가득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낭만어부》 고석길 선장은 '모든게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는' 현대사회 속에서 무력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고석길 선장에게 무수한 '좋아요'와 '댓글' 찬사를 보낸 것이다.



2) 《낭만어부》 캐릭터의 성립과 패러디콘텐츠의 파생 : 확장된 캐릭터성과 파급력


사실 고석길 선장은 처음부터 낭만어부로 불리지 않았다. 그가 유튜브에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낸건 KBS 유튜브 채널의 다큐 3일 묵호항 편이었다. 20분 남짓한 영상 속 그는 단지 3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이 시청자들에게 닿았던 것일까, 누군가가 고석길 선장의 영상부분을 클립으로 딴 다음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던 어부〉 라는 이름으로 업로드하였다. 그리고 이 클립은 순식간에 조회수 22만회를 기록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던 어부〉 영상은 비트가 추가된 힙합콘텐츠로 파생되었고 그 결과 수백만 조회수에 이르는 콘텐츠로 변모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 고석길 선장은 바다위 음유시인, 잃어버린 낭만을 노래하는 어부시인이라는 《낭만어부》 캐릭터가 되었다.


다큐 3일 묵호항 편 →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던 어부 → 음악 콘텐츠로 파생 → 낭만어부


https://youtu.be/flDgmUiTJcY

유튜브 채널 믹스봉 <한잔의 떠나간 너를 위하여 - 힙합리믹스> 콘텐츠는 252만 조회수를 자랑한다


콘텐츠 소비자들은 고석길 선장의 영상을 단순히 '시청'하지 않았다. 프로슈머(prosumer)답게 유저들은 고석길 선장에게 '잃어버린 낭만을 노래하는 어부'라는 새로운 캐릭터성을 부여했고 음악과 그를 융합시켜 새로운 콘텐츠로 파생시킨 것이다.


이러한 대중성 있는 캐릭터성 획득에는 패러디 콘텐츠들의 영향이 매우 커보인다. 다큐 3일의 묵호항 편 댓글들의 어투로 미루어보면 꽤 나이가 있는 연령층이 주된 콘텐츠 소비자층으로 짐작 가능한데, 힙합콘텐츠로 파생된 음유시인 낭만어부 콘텐츠들의 댓글 연령층은 10대에서 20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즉 다양하게 파생된 콘텐츠로 낭만어부 캐릭터는 전연령을 가로지르는 밈으로서 자리잡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3. 진정성을 지닌 우리 주변이야기의 힘


사실 우리는 고석길 선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3분 남짓한 영상클립 속 모습으로 우리는 고석길 선장을 《낭만어부》 로 기억할 뿐이다. 그가 어떤 삶의 행적을 밟아왔고 과거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사생활을 가지고 있는지 완벽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석길 선장은 그 3분이란 시간안에 그가 견뎌온 삶을 보여주었다. 문어를 향해 "아이구 야야 오래 기다렸어. 너희는 나와함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거야."라고 말을 거는 고석길 선장은 단순히 생업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물이 아님을 판단할 수 있다. 사람은 본인이 사용하는 말을 통해 살아가는 세계를 알 수 있듯, 고석길 선장은 본인의 일상 속에 시를 녹여낸 채 세상의 모든 걸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이다.


송승환 시인은 시인이란 직업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저 시를 쓰는 '사람'일뿐이라 말했다. 그렇기에 세상에 떠밀려 바다에 나가 시집 한권조차 내지 않았지만, 몸소 인생을 통해 시를 노래하는 고석길 선장은 '시인'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릴적 꿈을 수십년에 걸쳐 이루어낸 고석길 선장을 보며 대중들은 경외감 내지 대리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문어에게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가는거야"라고 말을 건낼 줄 아는 고석길 선장은 시인이다.


필자는 《낭만어부》 열광현상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되는 캐릭터는 무엇인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고 진정성에서 파생된 콘텐츠들의 파급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와 우리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필자는 문학과 콘텐츠에 대한 영감을 받아왔는데,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맨 얼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쌓아온 삶의 진정성에 감동을 받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경험은 창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게 만든다.


최근 디지털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져가고 콘텐츠 기업들은 다양한 원천에서 IP를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웹툰과 웹소설의 영상화 작업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허구적 캐릭터를 구축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건 그 인물이 가진 〈진정성〉 의 힘일 것이다. 장르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우리가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열광하는 건 그 인물로부터 〈인간 본연의 감정이 얼만큼 우리에게 전달되느냐〉 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릴적 꿈을 회한의 감정으로 흩뿌리지 않고 몸소 인생으로 구현시킨 《낭만어부》 에게 대중들이 열광하는 현상은 이를 뒷받침하는 아주 좋은 예시다.


시인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고, 진정성이 새로운 콘텐츠로 파생되어 남녀노소 모두의 마음에 밈으로 젖어든 《낭만어부》 고석길 선장에게 끝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마지막 한잔은 이미 모든이의 마음에 젖어든 낭만어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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