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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궁무진화 Jul 06. 2024

'나'가 있기에 비로소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사유의 도시 파리에서 발견한 낭만, 그리고 한국

모르던 도시에서 모르던 생각을 남모르게 펼쳐본다.
비로소 파리는 나에게 생각의 장을 열어준 도시로 명명된다.


해가 꺼지지 않는 무더운 6시 40분의 저녁 파리.

느끼함에 질려버린 디저트에서 입을 떼고 거리를 본다.


모르는 사람들 속, 모르는 그들의 문화로 이루어진 그들의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새롭고도 두렵다.

그렇기에 여행이란 새롭고 차가운 공간에 자신을 내던지는 도전으로 느껴진다.


니스는 갈구하던 자유에 가까웠다.

칸은 마음대로, 치열하게도 저질러본 시간에 가까웠다.

파리는 여느 서울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칸과 니스에 적응이 된 걸까

파리는 다소 무감정의 무채색 칸막이와 같다.


아마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오를리공항과 지하철 개찰구의 첫 만남은 매우 진이 빠진다.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의 스타일을 신경 쓰고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고도 능숙해 보인다.

하얗게 센 머리에 능숙함이 느껴지는 웨이터를 보며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 느껴지고 쌓은 품격이 보인다.

그런 작은 디테일함에서 우린 '낭만'을 느낀다.


당이 떨어져 디저트를 해치우곤 노트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파리사람들은 흥미롭게 생각했는지 나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하고도 붙임성 좋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낭만은 개인의 작은 욕구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표출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이를 삶에 녹여 사는 것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처음엔 그런 낭만을 합리적 시선으로 뜯어보았다.

- 창을 열고 지하를 달리는 지하철을 보며 먼지가 많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 아이의 손을 잡고 담배를 피우는 어머니들을 보며 아이보다 자신을 더 생각한다고 바라봤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건강이, 사회의 포용성이 우리보다 나아 보인다.


희생과 승부, 투자, 승자와 패자로 갈라지는 싸움이 발생하는 장보다

'자신'이 먼저 존재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격식이 된 곳이 더 건강해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파리의 거리에서 수많은 유모차를 보았다. 거기엔 숱한 가족들의 여행이 수반된다.

비행기에선 목청이 찢어질 듯 숨이 넘어갈 듯 죽음을 앞둔 것처럼 울부짖는 갓난아이들의 목소리도 많이 들었다.

다들 불편한 상황 속 도가 넘는 언행이나 상처를 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 지점에서 관용과 배려가 느껴졌다. 공감 내지 관용이었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임을 자각했다.

어느 순간 사라져 간 한국의 아이들과 어머니의 모습들.

그들이 거리에 나왔을 때 느끼는 실례의 두려움과 압박감은 그들을 위축되게 만들고

이를 보며 우리 스스로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든것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함과 긴장감으로 흐르던 파리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사유의 도시로 나에게 명명됐다.

먼 타지 프랑스에서 전에 할 수 없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인연들을 한가득 실어간다.

디저트와 커피로 새로운 사유를 열어준 파리 디저트 가게 앞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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