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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코드 Sep 02. 2024

6번째 회사, 5번의 이직, 수십 번의 면접

8년 차의 흔하지 않은 이력 (1) 물류센터- 중소기업

단 한마디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근무하는 회사가 6번째 회사입니다."


경력이 적진 않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8년 차가 5번의 이직을 했다는 데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선입견을 갖게 할 만한, 눈 동그래질 만한 이력입니다. 보통의 사람은 저를 아래와 같이 생각합니다.


1. 사회 부적응자인가?

 아닙니다. 요즘 좋아하는 MBTI 검사에서 ISTP라는 약간의 내향적 성향을 가지고는 있으나 놀랍게도 영업직에 근무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또, 오래 연락하는 이전 회사 동료들도 있습니다.라고 부적응자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엄청난 능력자인가?

 이직을 하는 만큼 연봉을 띄워 억대 연봉에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전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직을 많이 했고 왜 이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저는 이직의 가장 큰 기인(起因)은 '돈'이 1번입니다. 너무 솔직하게도 돈을 많이 받고 싶어 이직을 했지만, 아직도 그러지 못했네요. 언제쯤 만족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돈에 기인한 이직이 있었지만, 직무의 흐름을 타고 이직한 게 많은 이직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물류업에 종사하면서 여러 기업형태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중소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대기업에 모두 종사해봤고 물류센터 운영 직원부터 영업, 기획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각 조직형태의 특징을 몸으로 느꼈고 내가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은 '보세창고'라는 이름도 낯선 곳에서 센터 운영 근무를 했습니다. 동대문 보세 옷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수입화물들이 통관하기 전에 보관하는 창고를 보세구역이라고 합니다.

 취업준비시절 큰 대기업부터 작은 회사들의 최종면접의 고배를 여러차례 마셨습니다. 서류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질 떄의 실망감과 에너지, 감정소모가 커 맨탈이 마구 흔들렸습니다.  그렇게 취직을 못하고 있는 저를 지인이 추천해 경기도 교외의 보세창고라는 물류센터의 운영직원으로 추천을 해줬고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수입맥주 4개 만원이 유행하던 시절에 근무를 했고 수많은 야근과 주말출근을 하며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주임이지만, 퇴사 전에는 파트장을 달았고 사무직으로 입사했지만, 지게차를 타고 물건을 나르고 컨테이너도 하차하고 흔히 '까대기'라는 박스를 들고 나르는 일을 수도 없이 해오면서 나름 밝았단 성격이 조용해지고 음울해진 졌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했고 경기도 백암의 교외에서 일하다 보니 회사 안팎으로 고립되었다는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연하게 나도 영업을 해보고 싶고 국제화물을 다루는 물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수입화물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고 영업이란 직무가 힘이 넘치고 밝은 이미지로 보였습니다. 또한, 센터에서 지게차를 타며 박스를 들고 나르는 일을 하기 위해 4년의 대학과정과 죽기살기로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이라는 수고로움까지 하지 않았을 거다 라는 악에 받쳐 이직을 준비했습니다. 물론 지나와서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 몸으로 배운 일들이 아직까지 도움이 되는 뼈와 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이직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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