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IN Oct 28. 2022

주의력 강화훈련 - 바이올린 연주회

몰입할 수 있는 권리

방글이에게 1:1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구구단을 잘 못하는 3학년 때였다.

또래 아이들보다 똘똘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아이라 어련히 잘하겠지 싶었는데 조금 심각하게 구구단을 못했다. 처음엔 내가 연산 공부에 좀 무심했나 싶어 넘어갔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늘어나는 발표수업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많이 느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그룹 활동 중에도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해 늘 소외당했다. 그래서 ADHD 증상에 대한 자료들을 찾게 된 것이고 그중 전두엽의 작업기억능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작업기억능력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목적에 맞게 처리하고 관리하는 능력으로 주의 집중력과 조절 능력이 수반되어야 input 된 기억들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output 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글이는 주의력 결핍으로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들을 조직화시키기 어려웠고 외부 자극이나 생각들로 해야 할 목적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결과물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목적을 잊지 않는 것! 

이번 홈스쿨링에서 방글이가 반드시 훈련되어야 할 미션이다.


목적을 잊지 않으려면 주의집중력을 키워야 하는데 자꾸 딴 길로 새어버리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본인 스스로 각성하고 노력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찾은 방법이 바이올린 연주회였다.


방글이는 원래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손가락 힘이 약해 글씨도 잘 못쓰고 피아노도 싫어해서 그냥 억지로 내가 시켰다. 자진해서 바이올린을 연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설령 한다고 하더라도 10분 겨우 할까 말까였다.

연주회를 신청하고 한 달 동안은 똑같았다. 사실 그 당시 하루 루틴을 잡아 꾸준히 훈련시키고 있던 터라 다른 공부 때문에 바이올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한 달 남겨놓고 바이올린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방글이의 실력이 연주회 나가기엔 많이 부족하니 레슨을 2회로 올리면 안 되겠냐고 말이다. 예전에 얼핏 듣기론 한 곡을 무난하게 치기에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 심각한가 싶어 아이에게 연주해 보라하고 진지하게 들었다가


어머나 세상에…


원래 바이올린에서 쇠 긁는 소리가 나던가?

그 잡다한 소리는 그렇다 쳐도 뭔가 모르게 곡을 듣는 동안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저 거슬리는 소리의 정체가 무언인지 한참을 찾아보니 아이의 바이올린은 제대로 조율도 안 되어 있었고 허연 먼지가 잔뜩 가라앉아 지저분했으며 최근 며칠 동안 송진도 제대로 바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냥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했는데… 빠득!

예전 같으면 난 소리를 질렀다.  


“대체 네 문제가 뭐야!!!!”


하지만 이젠 알지 않은가. 우리 집안의 ADHD끼를…

나도 전두엽이 못생겨서 충동성이 부족한 걸 인지하고 있고 아이의 뇌도 아직 피가 덜 말라서 그런 거니 괜히 혈압 높이지 말자.


우선 아이의 곡을 녹음을 해서 재생을 시켰다.

처음엔 틀지 말라고 완강히 거부하던 아이는 내 설득에 마지못해 듣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이렇게 친다고요?”


본인도 놀랐나 보다. 그때의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 놨어야 했는데… 아쉽네.


똑같은 것끼리 잘해보겠다고 머리를 맞대 봤자 뭐가 문제인지 어찌 알겠는가.

우린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수십 번 반복하면서 문제점을 찾아 나섰다.


우선 뼈아픈 진실은 온갖 기교로 허울 좋게 곡을 완성시킬 뿐이지 박자가 뒤죽박죽이고 음정도 미세하게 틀렸다. 빠르게 쳐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현란한 기교만 잔뜩 들어가서 치니 곡 자체가 무척 거슬렸던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제일 먼저 시킨 건 바이올린을 깨끗이 닦게 하고 송진도 정성껏 칠하라고 했다. 바이올린도 조율하면서 네 몸처럼 깔끔하게 관리하라고 백만 번 잔소리를 해댔다.


그리고는 메트로놈을 꺼내서 앞으로 이거 없이 연습하면 메트로놈 대신 분노의 엄마를 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규칙적인 것을 참 싫어했다. 구구단 암기라든지 학교 규칙이라든지.

역시나 메트로놈의 감옥에 갇혀 악기를 연주하려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온갖 짜증을 내더라. 내가 없으면 은근슬쩍 메트로놈을 끄고 연습하길래 처음 며칠 동안은 내가 붙들고 아이의 연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박자만을 엄격하게 지키자 정말 신기하게도 연주가 듣기 편해졌다.

아이도 그대로이고 바이올린도, 곡도 그대로인데 박자 하나 지킨 것만으로도 수준이 훨씬 좋아진 것이다. 곡의 원박자보다 느리게 치는 대신 박자를 정확하게 지켰더니 음정 틀리는 것도 줄어들었고 이상한 쇳소리도 사라졌다.

그렇게 잘하다가도 어느 순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불규칙적인 박자로 쓸데없는 곳에 집착하며 연습해댄다. 그러면 내가 과감하게 개입해서 다시 우리의 목적을 일러주며 박자 감각을 익히게 했다.


본인도 스스로의 변화를 느꼈나 보다.

메트로놈 없이 연습하지 않는 날이 점차 줄어들었고 스스로 녹음해서 듣는 시간도 많아졌다. 본인의 문제점을 못 찾겠으면 조언을 구했고 안 되는 부분은 반복하기도 했다. 그래도 잘 안되는지 본인을 자학하며 우는 소리를 내자 연습이 부족한 거라고 단칼에 현실 파악을 시켰다. 네가 뭘 얼마나 연습했다고 엄청난 실력 향상을 기대한 거냐고 묻자 아이가 좀 서운해하더라.

그래서 난 아이가 좋아하는 김연아 선수의 훈련 영상을 보여주면서 국가대표도 너처럼 좌절하고 힘들어한다고 공감해주면서도 연습만이 부족함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아이를 고취시켰다.


그런 혹독한 시간을 반복하자 아이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싶어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바이올린 연습을 계획표에 넣었고 스스로 녹음하여 듣고 연주하고를 반복하더니 30분, 1시간, 2시간 연습시간을 늘려갔다. 잘 안 되는 부분은 레슨시간에 선생님께 여쭈어 보겠다고 형광펜으로 짝짝 표시를 해댔고 잘한 부분은 녹음을 해서 나에게 자랑했다.

‘몇 번 더 연습해.’ ‘이 부분이 이상해’ ‘이런 방법으로 연습해봐’ 등 나나 선생님이 하라는 것만 기계적으로 연습하던 아이가 자율적으로 시간을 이끌어갔고 연습을 하면 할수록 왜 이렇게 더 못해지는 거 같냐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곡에 심취하여 몰입을 하더라.


한 번은 2시간을 내리 연습을 하고 나오는 아이가 심각하게 말했다.

“엄마. 바이올린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뭐가 이상한데?”

“소리가 이상해요. 뭔가 이상한 잡음이 섞여 있어요. 이건 분명히 내 잘못이 아니야.” 라며 확신을 갖고 활에 송진을 벅벅 발라 댔다. 인상을 쓴 아이를 바라보며 뜨끔한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로켓 배송을 시켰다.


그렇다. 나는 몇 달 전 아이의 활이 망가져서 앱에서 제일 가장 최고로 저렴한 활을 샀었…. 아이가 이젠 음의 미세한 차이도 느끼나 보다. (그래도 현은 제일 좋은 거라고 말하는 건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

미안한 마음에 활과 싸구려 송진도 교체하고 어깨 받침대도 사주며 장비를 업그레이드를 시켜주었더니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엄마! 확실히 달라요!”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정말 후회 없이 연습했어요. 나 좀 잘한 거 같아.”


처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빨개졌다.


더 놀라운 변화는 연주회 이후이다.

이젠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꼭 30분씩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악보를 분석하며 피아노도 쳐본다. 피아노를 쳐야 정확한 음을 알 수가 있다나 뭐라나.

그리고는 자신의 진도가 너무 느린 거 같다고 레슨을 늘려 달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는데 더 이상 이 아이에게서 ADD증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가 변해서 일까 아이가 변한 걸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유의미한 경험 하나가 인생을 통틀어 뒤집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