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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IN Nov 12. 2022

목적 잃은 엄마는 오늘도 반성합니다


근데 예서야… 엄마는 네 인생 절대 포기 못해



벌써 스카이캐슬이 방영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이 대사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염정화 씨의 처절한 표정연기 때문인지 저 대사의 적나라한 표현 때문인지 방글이를 볼 때마다 저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에게서 겹쳐지는 내 어린 시절의 아쉬움 때문에 점점 요구사항이 많아지는 나를 보면서


‘이러지 말자 아이와 나는 별개의 존재다.’ ‘

'저 아이는 스스로 더 잘해 낼 거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되뇌고 동일시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만 문득문득 나타나는 아이의 어수선함과 비호감적인 행동들은 나를 또다시 집착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방글이가 악명 높기로 소문난 수학학원의 입학 테스트를 보고 왔다. 문제 난이도가 무척 높기로 유명한 학원이라 처음부터 기대하고 본 건 아니고 아이의 수준을 알고 싶어 신청했는데 결과가 참혹하다.

백 점 만점에 학원 입학 커트라인은 40점. 방글이의 점수는 17점!

우리나라 초등학생 수학 수준이 이렇다고? 나름 심화문제집도 잘 풀어내던 방글이라 가장 낮은 반은 합격할 줄 알았는데 17점?

물론 이 학원의 시험이 수학 실력의 척도가 될 순 없지만 이런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최상위 아이들이 의치 약대를 간다는 말이지.

푸하핫. 정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다음날 난 방글이와 회의를 시작했다.


"방글아. 네가 진짜 잘하고 싶은 게 뭐야?”

“수학이요.”

“왜?”

“엄마가 수학 잘하면 좋다고 했으니까요.”


역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수학 공부에 대해 강요를 했나 보다.


“수학은 그냥 복습만 하자. 대신에 네가 진짜 잘하고 싶은 거 하나만 골라봐. 뭐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만화요. 저 만화 캐릭터를 정말 잘 그리고 싶어요.”


그래서 우린 바이올린 연주회에 이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만화책 한 권 완성하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방글이가 제일 좋아하는 ‘수학 도둑’ 책 한 권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만화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의견을 나누었다.


어떤 스토리의 책을 만들고 싶은지,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지,

2월까지 완성하기 위해 월별 계획표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곤 우린 서점에 가서 SD캐릭터 그리기 책을 하나 사서 만화 그리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기회를 주고 그것을 실행하게끔 지도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난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다.

9시부터 3시까지 아이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기.


아이가 스스로 계획하고 알아서 행동한 후 나는 저녁에 피드백만을 남기기.

방글이가 잘하든 못하든 그건 그 아이의 몫이고 난 내 몫의 일을 하자라고 딱 선을 긋고는 난 서재에 가서 내 할 일에만 집중했다.


잠시 실수할 뻔했다.

아이의 주의력을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나도 모르게 대학입시란 틀 안에 아이를 가두려 했다.


수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은 국어 선행이 대세라는데.

어떤 학원을 보내지?

뭘 준비해야 하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가르쳐주려고 이것저것 찾다 보니 학습위주로만 알아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학원을 찾게 되더라.


그러려고 홈스쿨링 시작한  아니었는데


입학 테스트의 형편없는 점수가 목적 잃은 나를 다시 정신 차리게 만들어주었다. 아직 수학의 재미는커녕 싫어하기 직전의 아이를 그 험난한 학원 입학 테스트로 몰아세운 거부터가 잘못이었다.

아이에게 아직 맞지 않는 옷보다 제일 좋아하는 옷을 찾을 시기이다. 성급하지 말자.

아싸 답게 우리의 방식대로. 차근차근.


방글이는 홈스쿨링 초반엔 엉망이었던 거에 비해 생각보다 더 나를 찾지 않았다.

혼자서 그날 해야 할 과제를 여유롭게 다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마당에서 놀기도 하는 등 예전보단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목적을 잃고 아침에 늦잠을 자거나 밤 9시 취침시간을 어길 때가 늘었다.

그런 날은 제대로 못한 페널티로 다음날 줄넘기 2000번을 시켰다. 그리고 자꾸 프로젝트를 잊어버리기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권장해서 다음날 스케줄을 짜는데 도움이 되도록 조언을 해주었다.

얄짤없는 벌칙에 그날 밤엔 8시 58분에 침대로 뛰어들어가더라. 하. 귀여운 자식.


방글이 홈스쿨링의 목적. 아이가 독립하는 날까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이젠 아이를 믿고 스스로 해볼 기회를 줄 때가 왔다.

9시 계획표, 3시 운동, 9시 취침 이란 플레임만 짜주고 그 시간을 잘 활용해보라고 자유를 주니 아이는 여유 속에서 자신만의 규칙을 찾아간다.


“오늘 되게 여유로워 보이네.”

“응. 요즘 나 행복해.”


아이가 행복하다고 한다.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염정화 씨의 표정이 떠오르지 않게 된 걸 보니 내 마음도 편안한가 보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은 아이를 슬슬 놓아주자.  아이 스스로 자신을 정립해 나갈 수 있게 꼭 껴안고 있던 내 집착을 포기할 시간이다.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에요. 사랑하려고 낳는 거예요.”  

                                                                                        By 지나영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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