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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규 Nov 06. 2023

시작과 끝에 관한 사색 10

무에 관하여 2

놀랍게도 '진공'의 활동적인 특성이 처음 관찰된 곳은 실험실이었다. 1920년대에 물리학자들은 전자가 작은 팽이처럼 계속해서 회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그러나 일반 팽이와 달리 모든 전자는 똑같은 회전량을 가지고 있었다. 전하가 회전하면 자기력을 생성하기 때문에, 모든 전자는 작은 팽이일 뿐 아니라 동일한 자기력을 지닌 자석이기도 하다.


회전하는 팽이의 회전축이 중력 방향에 대해 기울어졌 을 때 수직을 중심으로 세차운동(느리게 회전)하는 것처럼, 전자도 자기장의 방향에 대해 회전축이 기울어졌을 때 세차운동(歲差運動 Precession)을 한다. 세차 속도는 높은 정확도로 측정될 수 있는데, 이 속도는 결국 전하들의 자기력에 따라 결정된다. 이때 양자 진공(quntum vacuum)의 역할이 생긴다. 양자물리 이론은 진공 내 전기장에서 광자(photon)라는 질량이 없는 입자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광자는 전하를 띤 모든 입자와 상호착용하며 그들의 성질을 바꿔버린다. 유령과 같은 이 광자들은 진공에서 갑자 키 나타났다가, 10억 분의 10억 분의 1초쯤 되는 생애를 즐기다 다시 사라진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전자들과 부딪혀 전자들의 자기력을 살짝 바꿔버린다. 실험실에서 측정한 바에 따르면, 그 자기력은 1:00115965221이 되었다.


한편, 양자 진공 이론에 따른 고도로 복잡한 수학 방정식으 로 예속한 전하의 자기력은 1.00115965246이었다. 양자이론의 놀라운 검증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비어 있는 공간에 대해 이토록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은 인간의 정신이 거둔 승리다.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 그리고  무는 우리가 양자 진공을 몰랐을 때조차 현대물리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19세기 중엽, 빛은 이동하는 전자기 에너지의 파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에는 음파와 수면파 등 모든 파동은 매질을 필요로 한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여러분이 있는 방에 공기가 없다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따라, 빛을 전달하는 매질이라고 가정하여 탄생한 섬세한 물질이 바로 '에테르‘이다. 우리가 먼 거리에 있는 별에서 방출된 빛을 볼 수 있으므로, 에테르는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우는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비어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주가 에테르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62-64쪽)

비어있는 공간으로서 진공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이 만든 개념이었다. 그러나 무라는 것은 사유의 대상이 될 수도 없기에 단지 운동, 변화, 생성이 가능한 조건으로서 요청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오래전부터 철학자는 무 혹은 죽음에 대하여 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양에서는 고대의 에피큐로스애서부터 현대의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죽음은 경험할 수도, 나아가 나의 한계 너머에 있기에 ‘내가 있는 한 죽음이 없고, 죽는 순간 내가 없기에 나는 나로 사는 한 영원하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명제는 철학적 추론의 결론이지 과학적 실험의 결과가 아니다. 물리학자들은 전자의 회전 운동을 통해 양자진공을 발견했으며, 아인슈타인이 에테르라는 빛의 매질을 부정했음에도 여전히 절대 정지와 절대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1887년, 현재 클리블랜드에 있는 케이스위 스턴리저브대학교의 미국 물리학자 두 명이 물리학 역사상 가장 중요하게 손꼽히는 실험을 진행했다. 바로 에테르 속을 통과하는 지구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이 실험은 실패했다. 아니, 실패했다기보다는, 에테르로 인한 어떤 효과도 측정하지 못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의 26세 특허청 직원은 이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빛은 다른 파동과 달리 완전히 비어 있는 공간을 이동할 거라는 가설을 제안했다. 모두 양자물리학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고, 따라서 진정한 공허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 젊은 아인슈타인의 심오한 가설에 따른 결과였다. 그는 우주에 절대정지 상태는 없다고 했다. 절대적인 정지가 없으면, 절대적인 움직임도 없다. 오직 두 물체 사이의 상대적인 움직임만이 그 의미를 지닌다.


아인슈타인이 에테르의 존재를 없애버린 이유는 에테르가 우주의 절대 정지라는 기준틀을 세울 수 있어서다. 만약 우주에 에테르가 가득 차있다면, 우리는 어떤 물체가 정지했는지 아닌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면의 흐름과 비교했을 때 호수 위의 배가 멈춰 있는지 움 직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연구 작업을 통해 물질이 없는 상태 또는 무에 관한 개념을 우주에 절대적인 정지 상태가 없다는 개념과 연결하게 되었다. 그렇게 에테르의 존재를 없애버린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텅 비어 있는 공간으로 남겨놓았다.


이후에 다른 물리학자들이 다시 그곳을 양자 에너지장으로 채워 넣었다. 하지만 양자 에너지장은 정적인 물질이 아니므로, 절대정지의  기준들이 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살아남은 것이다.


양자장론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전설적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의 교수였다. 1940년대 말, 파인만을 비롯한 다른 학자들은 전자가 어떻게 저 진공 속의 유령 같은 광자와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1970년대 초반, 내가 그를 알게 되었을 무렵의 파인만은 철학을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했다. 매우 재치 있는 사람이었으나, 물질적인 세상에 대한 관점이 무척 명확해서 완전히 가정뿐이거나 주관적인 생각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파인만은 양자 진공에 관해서는 몇 시간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정말 그렇게 하기도 했지만, 무에 관한 철학적 혹은 신학적인 고찰에는 단 1분도 낭비하지 않았다.


내가 그와 함께하며 배운 것은,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도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파인만은 인간의 정신이 그만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파인만은 우리에게 매번 과학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틀렸을 만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64-67 쪽)

아인슈타인에 이어서 양자장이론으로 새로운 양자 물리학의 세계를 연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의 최소 작용 원리(The Principle of Least Action in Quantum Mechanics) (1942)’란 논문으로 학위를 따고, 본격적으로 양자장 즉 양자가 작동하는 필드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유럽의 막스 프랑크,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나 닐스 보어가 양자역학의 새로운 문을 열었자만 본격적인 양자물리학의 부흥은 미국 서부의 칼텍이나 동부의 프린스턴이나 코넬을 중심으로 실험물리학과 더불어 다양한 이론들과 법칙이 발견되었다.


양자역학은 원자폭탄이나 반도체와 같은 새로운 에네지 발현 기구와 정보 저장 및 전송 시스템을 발명하게 함으로써 인류의 문명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였다. 이제 지구상의 인간은 어떤 경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한 항상 대멸종의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파인만의 말은 과학적 발견을 넘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록 그는 신학이나 철학적 담론은 거부했지만 다른 현대 과학자들은 과학자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한계성과 가치중립성이란 전제를 거부하는 운동을 추진하기도 한다.


오펜하이머처럼 원자폭탄의 개발에 참여했지만 그것의 사용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가? 이것은 AI나 로봇 나아가 다룬 첨단 기술이나 의술을 발견해도 이를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집단 지성의 도움에 의해 가능하였기에, 인류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것을 활용의 기준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교훈을 남겨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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