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Nov 30. 2024

그림의 역사(마지막)

종이와 물감, 그리고 복제

화가나 예술가들은 항상 새로운 테크놀로지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종이나 캔버스 혹은 디스플레이 위에 수채화 물감이나 유화 물감 혹은 그래픽 이미지들을 합성하거나, 어떤 사진의 일부를 복제하여 다시 사용하기도 한다. 요즘 대중음악 콘서트에는 배경에 큰 디스플레이 화면이 등장하고, 그곳에 이미 만들어진 환상적 이미지의 4K  영상으로 수를 놓는다.


호크니 역시 픽처를 만드는 데 쓰이는 테크놀로지라면 무엇이든 관심을 가졌다. 아마 창작자라면 누구라도 표현의 수단으로써 새로운 기술이나 기예 혹은 기법을 받아들일 것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독창적 작품으로 거장에 반열에 오른 것은 그가 사용한 테크놀로지에 있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 안에 불상의 모습을 전기를 연결해 항상 나타나게 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인 일종의 <발상의 전환>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6세기의 베니스에는 캔버스 유화가 표준이 되었는데, 베니스는 당시 무역의 중심이었고, 그것의 소재가 되는 재료들이 풍부하게 많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티치아노의 <다이나와 악타이온>란 작품은 가장자리를 매우 부드럽게 처리한 최초의 회화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 인물들의 피부가 매우 부드럽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이퍼드는 '유화 물감이 발명된 이유가 <살결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는  월렘 데쿠닝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 당시 베니스의 화가들은 붓 스트로그의 힘을 빼고 그 빈도수를 늘림으로써, 인간의 얼굴과 몸을 새롭고 관능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림의 인물에 생생한 살의 온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그러려면 맨 살을 많이 노출시켜야 하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일종의 누드화를 즐겨 그렸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런 기법과 화풍은 중세 가톨릭 사회의 엄격한 윤리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풍조와 개방된 사회가 서구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런 회화도 등장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중세에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회화나 조각 그리고 도상이 성당이나 도시의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르네상스 이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실적 질감을 표현하는 화풍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인류의 미술사나 그림의 역사 역시 추상과 구상, 상징과 실재라는 표현 양식이 반복되면서 변증법적으로 상승곡선을 타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사상가들은 이것이 문화의 상승, 고양이 아니라 일종의 정해진 패턴이 <차이와 반복>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든지 추상과 구상의 구별은 현대에 와서 점점 그 기준을 상실해 가는데, 그것은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는 <제3의 디지털 공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이퍼드는 마샬 맥루한의 유명한 명제 즉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빌딩 위의 거대한 화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아이의 상처 난 얼굴>을 본다면, 이런 잔혹한 전쟁은 한반도에서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읽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은 네이팜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알몸으로 뛰어나오는 벌거벗은 소녀의 사진이다.

사실 현대에서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의 구분 역시 희미하다. 테크놀로지 혁명과 동시에 어떤 종류의 경제 혁명은 모든 종류의 예술적 표현 혹은 미디어의 메시지 전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필사의 형태로 존재하던 책은 인쇄술이 등장하자 자리를 감추었고, 유명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은 정교한 복제기를 통해 다시 천이나 캔버스에 복제예술로 등장한다.


예술가들은 진품에만 아우라(aura: 어느 인물이나 물체가 발하는 독특한 영적 분위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의 발명품을 가져다 쓰고, 빌 게이츠가 애플의 소프트웨어를 베껴서 윈도우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대에 과연 초기의 모델들이 가지는 아우라가 디지털 시대에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고유한 이미지들은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을 모방하여, 새로 생성된 AI 이미지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지브리 스튜디오 스타일의 그림을 AI 어플에 좀 더 정교한 명령어를 넣어서 만들어보아라. 그것 역시 일종의 창작이다. 원본과 복제본의 차이 역시 애매해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그림이란 묘사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만약 당신이 백남준처럼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당신 역시 새로운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이 없어도 당신은 화가가 될 수 있다. 물론 창의적 아이디어가 중요하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