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바디유, 들뢰즈와 더불어 가장 도전적인 사상가로 주목받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이 책은 각 장당 2-3쪽 분량의 제목 없는 19개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제목은 <죽인 자와 죽임을 당한 자>이다.
1942년 기독교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예술철학과 현상학적 존재론의 새로운 장을 연 마르틴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으며 서구 지성사를 섭렵했다. 2003년부터 이탈리아 베네치아 IUAV 대학에서 주로 미학을 강의하면서, 유럽 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서양의 예술사, 철학사, 종교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구상을 시도하였다.
동아시아적으로 표현하면 유/불/도의 세 가지 전통을 섭렵한 현대 사상가가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를 도입하여 창작하는 것과 유사한 철학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비기독교인에게는 그렇게 도전적인 것이 아니지만 일반 기독교인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도발적인 작업으로 보일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영향사, Wirkungsgeschichte: 자신의 역사성을 함께 사고하는 역사적 사고)라는 해석의 지평을 벗어나 사고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아감벤의 이런 사유 역시 ‘일종의 시대적인 질문이자 동시에 자신의 역사성에 대한 물음’ 일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사고하는 것 자체는 실존적이자 동시에 역사적인 사유를 동반한다. 우리가 만일 근현대가 아니라 고중세에 태어났다면, 우리의 사고는 더 많은 시대적 제약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기독교 신앙을 압축하는 '사도신경'이라는 상징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정녀 마리아'라는 이름 외에 또 하나의 고유명이 등장하는 데, 이 이름은--적어도 표면상으로는--신학적 맥락에서 적절하지 않다... 325년 니케아에 모든 교부들이 작성한 사도신경에는 이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이름은 381년 콘스티노플 공의회에 이르러 추가되는데, 이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수난당하신 연대를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감벤은 기독교가 하나의 역사적 종교라는 점과 기독교가 말하는 신비(예를 들면 동정녀 탄생이나 성육신과 이적과 부활) 역시 다른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감벤의 이 말에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 기독교 신학계뿐만 아니라 성서고고학이나 근동역사학에서 예수의 역사적 실존성에 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1-3차 역사적 예수 논쟁 참고)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의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소유할 수도 점유할 수도 없는 무한한 유일성을 가진 역사적 사건이라면, 예수에 대한 재판은 인류 역사의 핵심적 계기로서 이곳에서는 영원성이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역사와 교차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영원과 순간(시간)이다.
첫 장의 마지막에서 그는 다시 이렇게 물음을 던진다. "시간적인 것과 영원적인 것,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교차는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어떤 위기의 형식, 그러니까 재판의 과정이라는 형식을 띠게 되었는가?" 저자는 단순히 예수의 역사성이 아니라 시간과 영원이 만나는 장소(십자가 사건) 이전 로마 총독 빌라도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재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예수 사건의 신비는 역사적으로 재현불가능한 유일회적 사건이지만, 부활을 배제한 십자가형은 여전히 유사한 형태(중세의 이단 처형이나 현대의 아우슈비츠 사건 등)는 세속사에서 반복되고 있다. 02(2장)에서 저자는 교부들이 사도신경에 당시의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가 아니라 빌라도란 이름을 끼워넣기로 결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예수) 사건의 연대를 확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빌라도라는 이름이 복음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빌라도의 우유부단함, 변덕스러움,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 그리고 가끔 그가 내뱉은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빌라도를 이토록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복음서의 저자들은 아마도 자신만의 고유한 심리에 그에 따른 특성을 지닌 한 인물을 최초로 창조하려 내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문장만 읽으면 빌라도가 마치 문학 작품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본디오 빌라도는 성경의 가공인물이 아니라, 요세푸스·필로·타키투스 등 여러 비기독교 사가들의 기록과 가이사랴 비문을 통해 역사적 실존이 확증된 로마 제국의 지방총독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감벤은 괴테에게 영향을 주었던 스위스의 관상학자이자 목사인 요하네스 라바터가 1781년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그(빌라도)에게 나는 모든 것을, 하늘과 땅과 지옥, 덕과 악, 지혜와 어리석음, 운명과 자유, 그야말로 모든 것의 상징을 찾았습니다." 이 인용문에 이어서 저자는 '어떤 의미에서 복음서에서 유일한 진짜 인물은 빌라도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복음서에 나오는 빌라도의 다양한 언행을 소개한다.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 하는지 듣지 못하냐 하되 (예수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마 27:14, 막 15:5)"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며(요 19:8)"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을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
그 후 빌라도의 반응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예수의 답을 듣고)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요 19:12)"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 19:21-22)"
빌라도의 아내 이야기가 복음서에 삽입된 것도 예수의 처형에 대한 빌라도의 갈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ㅇ니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마 27:19)"